[분석] '협치' 내세운 李대통령, 입법 속도 내는 與..."합의만이 협치는 아니다"

"양보·타협" 강조한 李, 식사 정치로 협치 시동 '온건' 정성호 지명·상법 합의...기자회견 계기 검찰개혁 가속·상법 '추가 개정' 시사 국힘 "기만적 이중플레이" 비판..."야당,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목소리 반영될 것" "여당, 공약 이행해 정치 효능감 보이려는 것" 지지율 상승, 입법 동력..."자신감 과잉 경계해야" 목소리도

2025-07-09     김민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 관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및 간사들과 만찬 회동을 했다. [사진=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박주민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을 국정 기조로 내세웠지만, 여당은 개혁·민생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기만적 이중플레이"라며 비판하지만, 협치를 야당과의 합의에만 한정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통합'과 '협치'를 국정 철학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지난달 4일 취임사에서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며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 국민통합을 동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공존과 통합의 가치 위에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며 야당과의 협치 의지도 강조했다.

실제로 취임 직후부터 야당과의 '식사 정치'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취임 당일에는 국회 사랑재에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 오찬을 했으며, 지난달 22일에는 교섭단체, 지난 3일에는 비교섭단체 지도부를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초청해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인선과 여당의 입법 행보에 대한 야당의 우려를 직접 들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건' 정성호 지명·상법 합의...기자회견 계기 검찰개혁 가속·상법 '추가 개정' 시사

장관 인선도 협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당내 강경파에 제동을 걸어왔던 정성호 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두고 검찰개혁을 속도전보다 야당과의 합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어 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되면서 협치의 분위기도 조성됐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국정과제의 추진 시점을 놓쳐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야당에 대한 양보나 협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목표는 똑같은데 오른쪽으로 갈 거냐 왼쪽으로 갈 거냐, 버스 타고 갈 거냐 비행기 타고 갈 거냐 기차 타고 갈 거냐는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고 버스를 타면 안 될 경우에는 버스를 타는 것으로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개혁에 대해 "추석 전까지 제도 자체의 얼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국회가 결단하기 나름"이라고 밝히면서, 여당의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가 붙었다. 민주당은 사흘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검찰개혁 4법'을 상정하고, 9일에 공청회를 열어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지난 7일에는 당내 검찰개혁 TF도 공식 출범시켰다.

정성호 후보자는 기자회견 다음 날인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검찰개혁 시기. 하려면 신속히 선제적으로 하자'는 문구를 적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흘 전인 1일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차분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던 신중한 입장과 대비되며 당의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지난 7일 여당 상임위 위원장 및 간사들과의 만찬에서 "아직 좀 부족하다"고 했다고 알려졌다. 여야 합의로 제외된 '집중투표제' 등을 추가 개정해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 등 민생 법안에도 신속 처리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 KBS라디오에서 이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 상임위 위원장·간사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민생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께 약속한 입법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방송법도 반드시 처리돼야 하고, 노란봉투법·양곡관리법 등 민생 법안들도 신속히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여당의 입법 속도전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강유정 대변인은 "정무수석이 상임위원장들에게 신임 장관과 당정 협의를 거치고, 재정이 수반되는 법안의 경우 재정 당국과 협의해 진행해달라고 당부하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국회 일정에 개입해선 안 된다.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다"라며 "'방송3법'에 공감한다는 것도 법안 내용을 말한 것으로, 속도와는 별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수진, 박성훈 원내대변인, 김은혜 원내정책수석, 유상범 원내운영수석부대표, 송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국힘 "기만적 이중플레이" 비판..."야당,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목소리 반영될 것"

국민의힘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집권 여당은 야당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의회 폭주에 시동을 걸었다"며 "핵심 상임위원장의 일방적인 독식에 이어 추가경정예산안 졸속 처리,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40여개 쟁점 법안, 방송 장악을 위한 방송 3법, 검찰 해체 법안 등 국가의 기본적인 체계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입법안의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입으로 협치를 외치고 있고 여당은 일방 폭주를 하고 있는 양두구육의 기만적 이중플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내부 쇄신 문제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협치를 야당과의 합의에만 국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여당이 정권 초반에 공약들을 신속히 처리해 '정치 효능감'을 보여주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지지 기반이 일부에 국한돼 있다. 야당이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목소리가 반영된다"며 "야당과의 합의만이 협치는 아니다.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은 오래전부터 논의된 사안으로 국민 공감대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여당은 정권 초기 가시적 성과, 정치 효능감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다"고 덧붙였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도 "민주당이 그동안 추진해 온 법안이라 처리는 시간 문제였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여당은 공약을 빠르게 이행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협치를 포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새 아젠다를 만들 때 독주인지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야권의 비판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았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직원식당에서 식사 후 매점에서 만난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지율 상승, 입법 동력..."자신감 과잉 경계해야" 목소리도

최근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 상승세도 여당의 입법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 조사(7월30일~8월4일, 전국 만 18세 이상 2,508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에서 이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62.1%로 4주 연속 상승세이며, 민주당 지지도는 53.8%로 국민의힘(28.8%)을 크게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따라 과도한 자신감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상임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보수 원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전날 CBS라디오에서 "자신감이 지나치면 실수하고 오판하기 쉽다. 지나치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며 "누군가 (이 대통령) 앞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야 하고 절대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소수 의견을 무시해선 안 된다"며 "야당 지도부와 만나 얘기를 듣는 데서 그치지 말고, 이를 실제 반영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협치' 기조와 여당의 강경한 입법 행보가 어떻게 조율될지가 향후 국정 운영의 주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