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청년층 돌풍 일으킨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 더불어민주당에 던지는 메시지
뉴욕시장 선거, 정치 신인의 이변 청년층 표심 사로잡은 생활밀착형 공약 미국 민주당 내부 세력 재편의 신호탄 맘다니가 더불어민주당에 주는 세 가지 교훈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시에 34세 무슬림 사회주의자 시장이 탄생했다.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4일(현지시각) 뉴욕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임대료 동결과 무상 보육 등 서민 경제 해법을 앞세워 청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맘다니의 승리는, 사법개혁 등 정치 이슈에 집중하며 청년층 지지를 잃어가는 한국의 더불어민주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욕시장 선거, 정치 신인의 이변
AP통신과 NBC 뉴스, CNN,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은 4일 밤 9시 38분(현지시각) 일제히 맘다니 후보의 당선을 보도했다. 투표 종료와 동시에 당선이 확정될 만큼 압도적인 승리였다.
맘다니 후보는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와 커티스 슬리와(71) 공화당 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퀴니피액대학교 여론조사에서 맘다니는 43%, 쿠오모는 33%, 슬리와는 14%의 지지를 받았다. 메리스트대학교와 비컨리서치의 10월 말 조사에서도 맘다니는 47∼48%로 쿠오모(31∼32%)를 16%포인트 앞섰다.
무명에 가까웠던 정치 4년 차 신인 맘다니가 이처럼 압승을 거둔 배경에는 지난 6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의 이변이 있었다. 당시 맘다니는 56%의 득표율로 뉴욕주지사를 3선 역임한 거물 쿠오모를 꺾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이는 미국 정치권에 충격을 안겼고, 진보 진영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맘다니의 당선으로 뉴욕시는 역사상 첫 무슬림·남아시아계·밀레니얼 세대 시장을 맞이하게 됐다. 인도계 무슬림인 그는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월가와 부유층을 겨냥한 과감한 정책을 내세워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사회주의 바람을 일으켰다.
청년층 표심 사로잡은 생활밀착형 공약
맘다니의 승리 공식은 단순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층, 특히 청년층의 생활고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그의 핵심 공약은 "렌트, 프리즈(Rent, Freeze·임대료 동결)"로 상징된다.
맘다니는 임대료 동결, 무상 보육, 무료 버스, 시간당 최저임금 30달러 인상, 시영 식료품점 설립 등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뉴욕의 높은 생활비로 고통받는 200만 명의 세입자들과 자녀 양육 부담에 허덕이는 청년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은 것이다.
2012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캠프에서 디지털 전략가로 일했던 에드 밀리밴드는 영국 가디언에 "선거는 언제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집·교통·먹거리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맘다니는 바로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이러한 공약은 청년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조기투표에서 18∼29세 유권자 11만 7,042명이 투표했는데, 이는 전체 득표의 16%로 2021년 선거 대비 130.1% 증가한 수치다. 퀴니피액대학교 10월 여론조사에서 18∼34세 유권자의 64%가 맘다니를 지지했다.
청년층은 맘다니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뉴욕은 너무 비쌉니다. 조란은 비용을 낮추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캠페인 슬로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뉴욕타임스는 "젊은 유권자들이 부모 세대를 설득하며 맘다니 지지 운동을 벌였다"라고 보도했다.
웹스터대학교 정치학 교수 윌리엄 홀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맘다니의 비전통적이고 매우 진보적인 시장 후보 캠페인은 뉴욕시의 많은 유권자들, 특히 청년층과 진보 유권자들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큰 관심과 지지를 불러일으켰다"라고 분석했다.
맘다니는 심지어 겨울 바다에 뛰어드는 퍼포먼스까지 펼치며 "임대료 동결"을 외쳤다. 매년 1월 1일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해변에서 열리는 이색 행사에 참여해 시민들과 호흡하며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 민주당 내부 세력 재편의 신호탄
맘다니의 당선은 미국 민주당 내부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뉴욕 시장 선거는 심각하게 분열된 민주당을 보여준다"며 "젊고 대졸 학력의 진보파와 나이 많은 온건파 사이의 분열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폴리티코는 맘다니의 승리가 "2026년 중간선거와 2028년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이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당의 미래를 정의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폴리티코에 "맘다니의 승리는 민주당 지도부가 유권자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은 환호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하원의원은 맘다니를 적극 지지했으며, 진보단체 '런 포 섬씽(Run for Something)'은 맘다니 당선 직후 청년 정치인 후보 지원 신청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공동 창립자 아만다 리트먼은 "이것은 기득권이 무적이 아니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반면 온건파 민주당원들은 우려를 표했다. 센터레프트 싱크탱크 '서드 웨이(Third Way)'의 매트 베넷은 "맘다니는 경제적 어려움에 집중한 점은 훌륭하지만 처방이 잘못됐다"며 "공화당이 이미 맘다니를 민주당 전체의 얼굴로 만들려 무기화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2028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의 참모들도 맘다니의 선거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한 민주당 선거 전략가는 "소셜미디어에 능통한 33세 후보가 경제적 어려움에 집중한 캠페인은 차기 세대를 자임하는 여러 후보자들에게 유망한 청사진"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청년층 지지율 위기
조란 맘다니의 승리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층 지지 급락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0월 30∼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49.3%, 민주당 지지율은 30.3%로 나타났다. 19%포인트 격차다.
시사인이 9월 실시한 '2025 신뢰도 조사'에서도 20·30대 남성의 이재명 대통령 신뢰도는 4.06점, 4.11점으로 전체 성·연령을 통틀어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60대, 70대 이상(4.96점, 4.84점)보다도 낮은 수치다.
신동아는 9월 "70대보다 20대가 이재명 정부에 더 부정적인 이유"라는 기사에서 "20대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최대 반대 세력으로 등장했다"며 "20대의 한미동맹 선호는 70대보다도 높았고, 주요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청년층이 민주당을 외면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이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보다 검찰 개혁, 사법개혁 등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의 정책은 청년층에게 일자리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9월 8일 "청년들은 왜 노란봉투법에 부정적일까"라는 기사에서 "이번 법 통과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교섭권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청년들은 이를 자신들의 고용 기회를 줄이는 요인으로 본다"라고 분석했다.
헤럴드경제는 "4050 세대가 민주당을 많이 지지하면 아무래도 그쪽 정책들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정책의 부작용이 보이면 반대쪽 정책을 지지하게 된다"라는 전문가 의견을 인용했다. 민주당이 주요 지지층인 중장년층을 위한 정책에 치중하면서 청년층의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사인 조사에서 청년 남성의 강한 반민주당 성향이 확인됐다. 20대 남성의 30.4%, 30대 남성의 47.3%가 자신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 답했다. 이는 검찰 개혁이나 사법개혁 같은 정치적 구호보다 당장의 취업과 생계, 그리고 공정한 경쟁 기회가 절실한 청년층의 현실을 민주당이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맘다니가 더불어민주당에 주는 세 가지 교훈
조란 맘다니의 당선은 더불어민주당에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청년층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생활밀착형 경제 해법이다. 맘다니는 임대료, 보육료, 교통비, 최저임금 등 청년들이 매일 직면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개혁과 사법개혁에 매진하는 동안, 청년들은 주거비 부담, 취업난,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권력기관 개혁이 아니라 집값 안정, 양질의 일자리, 생활비 부담 완화다.
둘째, 기성 정치인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신선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34세 정치 신인 맘다니가 3선 주지사 출신 거물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도전 때문이었다. 그는 "억만장자는 존재해선 안 된다"라며 부유층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를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중장년층 지지 기반에 안주하지 않고, 청년층의 관점에서 기존 정치 구조와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혁신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청년층을 능동적 정치 주체로 인식하고 이들의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맘다니 캠프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청년들이 부모 세대를 설득하도록 유도하는 등 청년층을 선거운동의 중심에 놓았다. 그 결과 뉴욕시 예비선거 투표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들을 단순한 표밭이 아닌 정책 결정 과정의 주체로 대우하고, 이들의 요구를 당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결국 맘다니의 승리는 진보 정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진보는 추상적인 정의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민생 문제 해결을 통해 서민과 청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청년층의 신뢰를 되찾고 진정한 진보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권력기관 개혁 일변도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리얼미터 조사는 지난달 30∼31일 전국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무선 전화 자동 응답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4.1%다. 시사인 조사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9월 14~16일 전국 18세 이상 1012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면접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7.9%다. 두 조사 모두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였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폴리뉴스 서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