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주식회사 대한민국'..."내년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겠다"
국가 R&D 분야 적극 투자...기업중심의 경제성장 지향. AI 등 미래전략사업 아이템 베이스 인프라 투자 확대 향후 5년 그대로 두면 잠재성장률 1% 초반, 심지어 0%대로 하락 "적자가 나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국가 먹거리 직결 R&D와 AI 관련 투자 최대치 늘리겠다" "전공 무관하게 AI 활용해 자기 연구·업무 효율 극대화할 수 있게 하겠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13일 서울 더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동문 경제인 모임 강연에서 "지금 남은 5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2030년 한국경제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강한 위기의식을 토대로 한 경제 구상을 상세히 밝혔다.
취임 4개월 차에 불과하지만 "체감상 2년은 된 것 같다"고 말할 만큼 국내외 변수와 정책 과제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는 토로도 나왔다.
구 부총리는 먼저 글로벌·국내 경제 상황 진단부터 꺼냈다.
그는 세계 경제를 둘러싼 세 가지 구조 변화를 짚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이어진 미·중 갈등과 통상 갈등으로 합리적 시장·무역 질서가 아닌 '무기화된 글로벌 밸류체인'이 일상이 됐고, 중국 성장 둔화 충격이 한국 수출과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으며, 국내에선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구조적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반도체 일부를 제외하면 기존 주력 산업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며 자영업·청년층의 어려움과 소득·자산 양극화 심화를 거론했다.
특히 잠재성장률이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가장 무겁게 짚었다.
"향후 5년을 그대로 두면 잠재성장률은 1% 초반, 심지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 이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 경제 기초체력이 무너지는 문제"라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잠재성장률은 1% 후반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성장률은 0.9% 안팎으로 잠재성장률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단기 경기 대응과 관련해 그는 추경과 각종 소비 진작책, 자영업·소상공인 지원을 둘러싼 비판을 언급하면서도 "내버려두면 마이너스 성장 구간에 빠질 상황이었기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은 잡아 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 부총리는 최근 들어 반도체 시황 회복, 설비투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 주식시장 4,000선 돌파 등 지표상 '반전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추세적 회복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가 제시한 중장기 성장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AI 대전환'이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 언어모델(LLM) 기반 AI는 데이터 규모에서 한국이 따라가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현실 세계에 AI를 접목하는 'Physical AI' 영역에서는 한국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적자가 나더라도, 욕을 먹더라도" 국가 먹거리로 직결되는 R&D와 AI 관련 투자를 최대치로 늘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구 부총리는 '30대 선도 프로젝트'를 직접 구상했다고 소개했다.
여기에는 AI 자율운항 선박, 실시간 기상·파도·바람 데이터를 받아 최적 항로를 스스로 선택 , 연료를 약 30% 절감할 수 있는 구조를 목표로 하며 "이 배를 먼저 상용화하면 조선 강국인 한국이 전 세계 선박 시장을 다시 석권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I 로봇·드론, AI 자동차·선박 제어 기술, 전력 반도체, LNG·수소·우주용 화물창, 초전도체, 수소 제철, SMR(소형모듈원전) 등이 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구 부총리는 "아이템이 30개라면 10%인 3개만 성공해도 한국경제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세계 1등 제품 몇 개를 만드는 것이 '세계 10등짜리 제품 수천 개'보다 훨씬 중요해진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벤처 생태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초창기 연구·시제품 단계까지는 개인·가족·소규모 VC 자금이 들어오지만, 수백억 원이 필요한 양산·설비 단계에서 "아무도 돈을 안 내는 구조"를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소개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될 만한 곳에는 10년간 찔끔찔끔 주는 방식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확' 밀어주는 방식으로 바꾸겠다."
정부가 75조 원으로 '마중물'을 대고, 민간이 75조를 함께 조성해 "정부가 리스크를 테이킹 할 테니, 민간은 과감하게 기술·설비 투자를 하라"는 메시지다.
그는 "R&D만 하고 돈이 없어 중국에 기술이 넘어가는 악순환을 끊겠다"며, 정부·민간이 함께 리스크를 지는 구조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단순한 건설 경기·토목 위주의 지역정책에서 벗어나, 성공한 신산업 아이템을 수도권 밖에 직접 배치하는 방식의 지역균형발전 구상도 제시했다.
초전도체, 수소 제철, 신소재 등에서 세계 1등 제품이 나오면 그 생산 클러스터를 호남·영남·충청·강원·제주 등 비수도권에 나눠 배치, 그 안에서 좋은 일자리·교육·서비스가 연쇄적으로 형성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에 일자리와 산업이 없는데, '가라'고 해서 갈 사람은 없다"며, 산업 배치와 지역정책을 연동시키겠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인력 양성 문제를 한국경제의 최대 과제로 꼽았다.
초·중·고·대학 전 과정에서 AI 활용 교육을 강화하고, 군 복무 기간에도 청년들이 AI 기초를 익힐 수 있도록 국방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공계·자연과학·AI 관련 학과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전공이 철학이든 문과든, AI를 활용해 자기 연구·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에서 기술 인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보상·처우 체계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는 여러 차례 "기업 중심 경제정책"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정부 R&D와 기업 수요가 따로 놀았다. 앞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정부가 R&D로 뒷받침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했다.
배임죄·형벌 부담 등으로 공무원·기업인 모두 '결정 회피'를 하는 분위기를 지적하며, 합리적 위험 부담 범위 내에서 책임을 완화하는 제도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산다. 공무원은 뒤에서 밀어주는 조력자일 뿐"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또한 저평가된 한국 자본시장 구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언급하며, 정책·지배구조·규제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코리아 프리미엄'을 만들겠다고 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는 환율·에너지·저출산·건설 경기 등 현안에 대한 견해도 나왔다.
환율은 정부가 목표치를 제시하기보다는 시장 결정 원칙을 강조하면서, 대미 협상 등 불확실성이 정리되면 점차 안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에너지·원전에 대해서는 AI·데이터센터 시대에는 전력이 핵심 인프라라며, 원전(SMR 포함) + 재생에너지 + 수소가 결합된 '에너지 믹스' 전략을 제시했다.
또한 농촌 태양광, 수소에너지, SMR 조기 상용화 등을 예로 들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책도 내 놓았다.
저출산을 "가장 풀기 어려운 복합 문제"라고 규정하며, 돌봄·주거·일자리·교육·워킹맘 경력 단절 등 전방위 대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동시에 여성·고령 인력 활용과 노동생산성 향상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은 최근 물가 상승은 농축수산물·가공식품·여행·숙박 등 공급·기후 요인이 크다며, 단순히 "퍼주기식 재정"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했다.
민생·생활물가 안정이 거시정책 1순위라고 거듭 밝혔다.
건설·부동산은 지방은 공급 과잉·미분양, 수도권은 공급 부족이라는 '미스매치 구조'를 지적했다.
수도권은 규제 개선·부지 발굴로 공급을 확대하고, 지방은 수요 관리 및 신규 산업 배치를 통해 구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을 설명했다.
기후·NDC(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서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 범위를 언급하며, 수소 제철·SMR·재생에너지·태양광 유리 등 '감축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아이템'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부총리는 다시 한번 '생존'에 가까운 절박함을 드러냈다.
"이건 '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문제다. 30개의 초핵심 아이템 중 3개만 세계 1등으로 성공해도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각오로, 정부·기업이 함께 깃발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며 "내년부터는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관계부처·기업·전문가들과 매일같이 상의하며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1965년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를 받은 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위스콘신대 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를 거쳐 중앙대학교에서 무역물류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32회 출신이며 기재부에서 정책조정국장, 사회예산심의관 등을 지냈다. 2023년 경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특임 교수를 맡았다. 지난 7월엔 기획재정부 장관(경제 부총리)에 선임 됐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 행정관, 인사수석실 행정관 인사제도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미주개발은행(IDB) 선임 자문관을 지내기도 했다. 2018년부터는 예산을 총괄하는 2차관으로 임명된 뒤 2020년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국무조정실장 임기 후에는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를 지내왔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