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유네스코, 종묘 훼손 막을 조치 요구…유산청장 "재개발 조정회의 구성해 해법 찾자"
종묘 '세계유산지구' 지정에 세운4구역 재개발 '오락가락' 최휘영 장관 '종묘 사수' 천명 "현행법이 정한 조치 다 할 것" 서울시 "재개발→종묘 '경관훼손 없음' 시뮬레이션 검증 마쳐" 오세훈 "도시 정체돼선 안 돼…유산청, 도시재창조 막지 말라" 쟁점은 서울시의 조례삭제, 대법은 서울시에 유리한 판결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 세운상가 터에 초고층 건물을 짓는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도시 개발'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가치로 충돌하며 '종묘대전'을 벌이고 있다.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은 정치권의 쟁점으로도 부상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종묘를 찾아 "근시안적인 단견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오 시장을 직격했다.
김 국무총리는 당시 종묘를 둘러본 뒤 "높은 건물이 가린다면 숨이 막히겠다"며 "정부도 이 문제가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책도 마련하고 국민적 관심과 공론, 토론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장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오 시장이 "세운 재개발을 통해 종묘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이라고 반박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정치권 쟁점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지난 15일 밤 국가유산청에 세운4구역 고층건물에 의해 종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며 "종묘 앞 재개발로 인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혀 세운4구역 재개발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공식 문서를 통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며 "외교 문서 형태로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를 거쳐 15일 국가유산청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해당 문서에서 세운4구역의 고층 건물이 종묘 경관과 유산적 가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명시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반드시 실시할 것을 권고하며 평가가 끝날 때까지 서울시가 사업 승인을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가유산청은 17일 오전 이 내용을 서울시에 공식 공문으로 전달했다.
이번 조치는 종묘 맞은편 재개발을 둘러싸고 시민단체가 유네스코 본부에 긴급 문제 제기를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최근 유네스코에 서한을 보내 "종묘 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라며 현장 방문과 영향평가를 요청한 바 있다.
허 청장은 "유네스코는 제삼자 민원 접수 상황에서 정부 의견과 추가 자료를 한 달 내 회신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문서에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중 2구역과 4구역이 명시됐으며 다른 구역에 대한 추가 논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3일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는 안건도 가결시키면서 서울시에 세계유산법에 근거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강력하게 요청할 방침이다.
세계유산지구 안에서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해칠 우려가 있는 개발행위가 제한되며 건축 및 도로 건설과 토지 형질 변경을 하려면 국가유산청장의 허가 또는 협의가 필요하다. 세운4구역이 직접적인 협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허 청장은 "지난주 세계유산법에 따른 '종료 세계유산지구' 지정을 완료했다"며 "하위 법령 개정도 적극적으로 관련 부처와 협의하여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정전 상월대와 외대문 등 주요 공간에서 바라본 '145m 고층 건물' 가상 이미지를 공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시각적으로도 제시했다. 허 청장은 "종묘의 유산적 가치를 보존하고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현실적인 해법을 서울시가 국가유산청과 함께 도모해주시길 희망한다"며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조정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허 청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유산청은 보존을 우선으로 하는 행정기관이기에 도시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며 "여러 가치 중 한 가지에만 천착"한다고 한 것에도 반발하며 "(오 시장이)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산청은 유산을 보존하지만 활용하는 일도 해 왔다"며 "역사유적이 많이 있는 곳이 왜 빌딩 숲이 돼야 하나. 서울시가 시민에게 탄소를 물려줄 지 산소를 물려줄 지 미래를 위해 생각해보라"고 강조했다.
최휘영 장관 '종묘 사수' 천명 "현행법이 정한 조치 다 할 것"
최휘영 문체부 장관도 서울시의 종묘 앞 고층 빌딩 개발계획과 관련해 현행법이 허용한 모든 조치를 다 해 막겠다며 국가유산청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최 장관은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연합뉴스 인터뷰와 추가 서면 질의에서 "(지난 6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여전히 문화유산의 보호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국가유산청은 법에 정해진 대로 적법한 행정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 장관이 말한 대법원 판결은 서울시 의회가 문화유산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건설공사를 규제한 서울시 조례 규정을 삭제한 것이 적법하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이 판단과 함께 조례가 삭제돼도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법에 따라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여러 행정조치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문화유산법에는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에서 이뤄지는 건설공사라 해도 국가유산청이 여러 조치를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문화유산을 훼손할 우려가 있거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공사 시행사에 적합한 조치를 지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장관은 또 국가유산청이 지난 13일 종묘 일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한 것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른 행정조치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유산법에 따라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한 뒤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실시할 것을 공식 요청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조치"라고 전했다.
종묘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되면 세계유산영향평가의 공간적 범위 대상으로 설정되고,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장은 세계유산인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최 장관은 종묘 앞 개발을 두고 불거진 문체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정치 쟁점화되는 데에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서울시 의회의 조례안 개정을 무효로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임 유인촌 장관이었고, 서울시의 세운상가 고층 개발계획을 처음으로 막은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며 "종묘같이 소중하고 상징적인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정치적 논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종묘 앞 개발이 종묘를 위한 일이라는 서울시 주장에 대해선 "지키는 일과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개발계획이 진정 종묘를 위한 일이라면 서울시는 전문가들에게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며 "서울시는 진행하려던 계획을 잠시 멈추고 국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었으면 한다"고 협의 가능성도 열어 놨다.
서울시 "재개발→종묘 '경관훼손 없음' 시뮬레이션 검증 마쳐"
서울시는 오히려 허 청장이 종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민경 서울시 대변인은 17일 입장문에서 "국가유산청장이 세운 4구역 재정비촉진사업과 관련해 종묘 경관 훼손 가능성을 반복 제기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완충구역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에게만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을 반복 요구하는 것은 종묘 보존에 대한 국가유산청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유산청장은 서울시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고 협의하는 과정 없이 마치 종묘가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잃을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유산청장의 과도한 주장이 오히려 대외적으로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허 청장이 이번 사안으로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이 대변인은 "서울시는 대화를 통한 합리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지만 국가유산청장은 실무적 협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종묘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적 감정을 자극했다"고 짚었다.
이 대변인은 세운4구역 재개발이 종묘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운 4구역 재정비촉진사업은 단순한 재개발 사업이 아니라 서울을 녹지·생태 중심 도시로 재창조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며 "서울시는 정밀한 시뮬레이션과 종묘와 조화되는 건축 디자인 도입을 통해 경관 훼손이 없음을 이미 검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십 년간 개발 지연으로 피해를 겪어 온 종로 지역 주민 대표들도 함께 참여해 특정 기관의 일방적 입장이 아닌 민·관·전문가가 함께하는 균형 잡힌 논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오세훈 "도시 정체돼선 안 돼…유산청, 도시재창조 막지 말라"
오 시장은 도시는 정체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서울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진화해야 하며, 이를 국가유산청이 막지 말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도시는 정체를 허락하지 않는 생명체이고 서울 역시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야한다"며 "세운지구 사업은 단순히 고층빌딩을 짓는 재개발이 아닌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거대한 녹지축을 조성하고, 복합개발해 풍요로운 '직주락' 도시로 재탄생 하는 '강북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산청은 보존을 우선으로 하는 행정기관이기에 도시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과도하게 예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화를 이뤄야 하는 여러 가치 중 한 가지에만 천착할 수밖에 없는 국가유산청이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이 가고자 하는 '도시 재창조'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더 우려되는 것은 큰 틀에서 나라와 도시의 발전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무총리께서 특정 기관의 일방적인 입장에만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는 것"이라며 "국무총리께서는 무엇이 진정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미래를 향하는 길인지, 감성적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관계기간들이 협의해 나갈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는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종묘의 좌우축에 건축물의 높이가 다소 높아지더라도 통경축이 확보되고 경관이 훼손되지 않음을 확인했고 곧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며 "도시는 멈추면 쇠퇴한다. 반대만 반복하는 정치에서 변화와 혁신이 싹틀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때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쟁점은 서울시의 조례삭제, 대법은 서울시에 유리한 판결
최근 쟁점이 된 세운4구역은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재개발 논의가 본격화됐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2007년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자로 지정되고, 최고 122m 높이의 초고층 건물 개발 계획을 구상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바로 맞은 편에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초고층 건물을 지을 경우 종묘의 경관을 가리는 것이 쟁점이 됐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건물 높이를 최대 71.9m로 낮췄다. 이후 2018년에 사업시행계획 인가가 끝난 세운4구역은 2022년 철거를 시작했다.
문제는 서울시의회가 2023년 10월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 '국가지정유산 100m 이내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례를 삭제했다는 점이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이미 마친 후에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하면서 건물 높이를 종묘 방향은 기존 55m에서 98.7m, 청계천 방향은 71.9m에서 141.9m로 완화하는 내용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고시하면서 기존의 높이 제한이 백지화됐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즉각 반발하며 대법원에 서울시가 조례 개정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6일 문화재청장과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해도 법령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며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 이후 오 시장을 향한 정부 압박이 거세졌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대법원 판결 다음 날인 지난 7일 종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장관은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허 청장은 "종묘 앞에 세워질 높은 빌딩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역사 문화경관과 종합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흘 뒤인 지난 10일에는 김 국무총리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종묘를 찾았다. 당시 김 총리는 "종묘 앞 개발은 서울시가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번 문제를 다룰 제도 보완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하며 서울시의 종묘 주변 초고층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