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 칼럼] '대장동 항소 포기'에서 '조국 사태'가 떠오르는 이유

2025-11-17     차재원 칼럼니스트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8% 대 29%'.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한 여론이다. 지난 14일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부적절' 응답이 절반에 달했다. '적절'에 비해 19%가 더 많았다. 민심은 분명한 반대이다. 그래서 파장도 만만치 않다.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 대행이 물러났다. 둘의 사퇴에 적잖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 먼저 사안이 불거지자마자 사표를 던진 정진우 지검장.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전형이다. 원칙적으로 항소 제기 최종 결정권자는 해당 지검장이다. 관례상 주요 사건을 대검과 협의하긴 한다. 의견이 엇갈리면 대개 지검장 뜻대로 처리한다. 이후 자기 결정에 분란이 생기면 책임을 지고 직을 던지는 게 순서다.

이번은 달랐다. 대검의 "항소 포기" 의견에 힘 한번 못써보고 동의했다. 최종 결정권이란 본질을 아예 내팽개친 셈이었다. 후폭풍이 일자 그제야 곁가지인 사직서 한 장으로 면피에 급급한 꼴이 돼버렸다. 조직 내부에서조차 동정론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총장 대행을 맡았던 노만석 대검차장도 오십보백보다. 검찰 수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더 실망스럽다. "검사 노만석이 아닌 인간 노만석으로 살고 싶다." 안팎의 비난에 그가 초반에 내뱉은 말이다. 그 역시 사표를 방패 삼아 도망갈 마음뿐이었다. 물론 나름의 항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후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검찰) 조직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고 그래서 떳떳했다." 항소 포기를 스스로 결정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오락가락했다. "용산과 법무부 관계를 고려했다." "법무부 차관이 항소 포기 선택지를 제시했다." 이 말들은 나오기가 무섭게 정권 개입과 압력설로 보도됐다. 정작 퇴임할 땐 입을 닫았다. "(윗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건 내 생각이고 내 결정이 됐기 때문에 이제 와서 외압을 받았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이다." 이거야말로 자가당착(自家撞着). 정말 국민을 우습게 보는 말장난이다. '윗선의 생각' 정당성 여부를 도망치듯 물러나는 그가 판단할 게 아니다. 그래도 평생 검사를 했던 사람이 이 사안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제라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칠 수 있다.

앞으로 외양간을 수리해야 한다면 책임자는 법무부 장관이다. 검찰 사무를 지휘 감독하는 게 그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직 정성호 장관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번 사안이 알려진 뒤 그가 내보인 첫 반응은 "아는 바 없다"였다. 모두 뜨악했다. 대통령도 관련된 사건의 항소 여부를 몰랐다니…. 그 자신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출근길 문답을 자처했다. "대검에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신중히 판단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사안을 알고 챙겼다는 점을 인정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대검 보고가 왔을 때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게 있어 항소를 안 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름의 항소 포기 정당성을 주장한 셈. 다만 "지침"을 준 게 아니라 "의사 표현"이었음을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이를 재차 확인했다. 항소 포기 지시도, 수사지휘권 행사도 강력히 부인한 것. 법이 규정한 정식 지휘권 발동이 아닌 만큼 검찰이 알아서 판단했다는 논리였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실세 장관의 의견. 이를 검찰이 무시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6년 전 야당 의원 시절 했던 그가 했던 말이 소환됐다. "법무부 장관의 공식적 지시가 아닌 의견 표명만으로도 수사팀이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빗대 국민의힘은 그의 '의사 표현'을 외압으로 규정했다. 그는 "일상적으로 하는 얘기"라며 펄쩍 뛰었다. 여기서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란 말이 떠오른다. 자기 뜻에 따라 검찰이 항소 포기할 걸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짐짓 모른 척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 한 마디로, 속내가 빤히 보이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런 방식의 국정운영에선 대통령실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사안이 불거진 후 법무부 장관, 대통령 정무수석, 여당 대변인은 입을 모아 복창했다. "대통령실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한 마디로 대통령실의 오불관언(吾不關焉). 먼저 정 장관은 "사건과 관련해서 대통령실과 논의 자체를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항변은 그렇다 치자. 그러면 법무부 차관이나 검찰국장은 대통령실에 사전 협의나 보고하지 않았을까. 대검 차장을 지낸 민정수석에다 산하 4명 비서관 중 3명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 비서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상호 정무수석은 정치적 득실 논법으로 여론 설득에 나섰다. "모든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위에는 동기가 있는데 (항소 포기와 관련해) 우리가 그 사람들(대장동 일당)에 도움이 될 만한 정치 기획을 왜 하며, 재판 개입을 왜 하겠냐." 그의 말마따나 이들의 주장과 진술로 이재명 대통령이 어려운 곤경에 처한 건 맞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정반대의 정치적 셈법도 가능하다. 사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이들은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피고인들에 대한 형량·추징금 모두 1심보다 무겁게 선고할 수 없게 됐기 때문. 형량이 낮아질 가능성에다 7천억 원대의 검찰 구형 추징액은 이미 473억 원으로 확정됐다. 전혀 예상치 못했을 이득을 떠안은 대장동 일당. 어떻게든 보은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같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던 대통령. 그를 모시는 법무 참모들이 충분히 그려볼 만한 시나리오다. 이런 합리적 의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역시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삼가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연일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타깃이 항소 포기한 검찰 지도부가 아니다. 지도부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 전체에 맞춰져 있다. 우선 집단 항명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벼른다. 이를 위해 검사징계법 폐지를 들고 나왔다. 일반 공무원처럼 검사도 파면 가능케 하려는 발상이다. 항명에 앞장선 검사장들을 전부 평검사로 만들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있다. 아울러 검사들의 '선택적 분노'도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김건희 주가조작 무혐의 처분과 윤석열 구속 취소 항고 포기 때의 침묵을 콕 집어서 말이다. 그야말로 성동격서(聲東擊西). 이 전술이 먹혀든 탓인지 지지층은 적극 환호 중이다.

하지만 앞서 봤듯, 적어도 항소 포기에 관한 민심은 냉정하다. 물론 정부 여당은 여전히 '비빌 언덕'을 염두에 둘 것 같다. 60%에 육박한 대통령 지지율, 야당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민주당 지지율이 그것이다. 여기서 문재인 정권 때를 떠올려 보자. 집권 첫해 지지율은 줄곧 70%를 넘었다.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그래도 고비가 찾아왔다. '조국 사태'였다.

여러 논란에도 그를 법무부 장관에 앉힌 직후였던 2019년 9월 20일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 부적절 56% 대 적절 36%. 정확히 20% 차이로 부정 평가가 앞섰다. 그 2년 반 뒤 정권은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공교롭게도 이번 항소 포기 부정 여론도 비슷한 격차(19%)다. 조국 사태가 생각나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뒤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그 답변은 정부와 민주당 하기 나름에 달렸다. 적어도 현재 모습으론 반복 가능성이 커 보인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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