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칼럼] 종묘는 재개발-정쟁 대상이 아닌, 지켜야 할 세계 문화유산

2025-11-17     김홍국 칼럼니스트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묘 앞 재개발 사업 논란과 관련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의 종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동시에 전통 왕실문화의 정수이며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종묘를 지나거나 방문할 때, 우리 민족 특유의 전통문화가 가진 미학적 감성과 역사적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특히 '종묘사직'(宗廟社稷)이란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조선왕조 당시 왕실과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통해 우리 역사의 상징성과 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배우게 된다.

종묘는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조선 왕실, 대한제국 황실의 유교 사당이다. 1963년 1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95년 12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온 국민이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은 우리 종묘에 대해 환호했고, 종묘광장공원은 탑골공원과 함께 서울시민들이 주말이면 찾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됐다.

문제는 최근 종묘를 둘러싼 재개발 논란이다. 서울시가 최근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에서 청계천변 건물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두배 가까이 확대하면서 '재개발 몸살'에 휩싸였다. 대법원이 서울시의 규제 완화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결한 직후부터 우려는 급속히 커졌고, 정부와 문화계가 잇따라 현장을 찾는 장면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유홍준 국립박물관장이 종묘를 방문한 것은 우리 문화유산의 상징성이 말살될 수 있다는 절박성이 서려 있다. 그만큼 종묘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총리가 "종묘 앞 개발은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세계유산 보존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제도 보완과 법령 개정이 필요함을 시사한 것이다. 이는 서울시의 초고층 개발 계획이 세계유산 보존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종묘 문제를 정치 행보나 지방선거 유불리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해석이다. 문화유산을 정치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유네스코가 이미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유네스코는 주변부의 고층 인허가가 종묘의 경관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또한 시야를 가리는 건축물 허가를 제한하라고 권고해왔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지난 4월 유네스코가 공식 요청한 '유산영향평가(HIA)'를 거부하고, 개발제한 조례를 일방적으로 변경해 재개발 계획을 밀어붙였다.

유산영향평가는 세계유산 주변 개발이 유산의 진정성·완전성·경관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하는 국제 기준이다. 이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세계유산 보존 체계 자체에 대한 도전이며, 최악의 경우 세계유산 지위 박탈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 영국 리버풀 해양상업도시처럼, 세계적으로도 도시 개발로 인한 주변부 공사로 인해 유네스코 등재가 취소된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18~19세기 낭만주의 문화·건축경관이 조성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대규모 4차선 교량이 들어선 뒤 2009년 등재 결정이 취소됐다. 18~19세기 근대 항구시설과 건축물로 세계유산이 된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도 주변 대규모 개발의 여파로 2021년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됐다.

종묘가 유사한 등재 취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심각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묘 앞 100m 녹지를 조성해 종묘를 돋보이게 하겠다"고 설명하지만, 녹지가 고층 건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경관과 공간의 관계는 단순한 조경 문제를 넘어 세계유산의 핵심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다. 녹지를 조성하면서 동시에 초고층 건물을 허용하겠다는 접근은 보존 철학과 개발 논리를 한꺼번에 안으려는 모순된 시도일 뿐이다. 당연히 모든 고려의 1순위는 종묘이다. 문화유산은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고, 관광·문화정책·국격까지 장기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종묘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조선 왕실의 예법, 의례, 공간 질서를 체계적으로 담아낸 세계적 유산이다. 그 상징성과 경관은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고, 후대가 누릴 문화적 가치이기도 하다. 반드시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서울시는 유네스코의 요구를 따르고, 유산영향평가를 즉시 실시해야 한다. 정부는 제도적 사각지대를 보완해, 지방정부가 세계유산 보존 의무를 회피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는 고층화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설계를 변경해 축선 보호와 스카이라인 조절을 전제로 한 입체적 개발을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유산영향평가에 부합하는 설계 변경과 함께 녹지 연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공디자인을 적용하면, 종묘는 도시를 빛내는 더욱 강력한 문화 허브가 될 수 있다. 세계유산인 종묘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가장 먼저 고려한 혁신적 개발 모델을 만들 경우, 서울은 도리어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미래도시이자 역사도시'라는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도시 계획은 단기적 개발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국제 기준과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장기적 가치에 근거해 재정립돼야 한다. 종묘 앞 초고층 개발 논란은 단순한 건물 높이 논쟁이 아니다. 도시의 미래, 국가의 품격, 후손에게 남길 문화유산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태도와 미적 감수성을 묻는 질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과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등 한류를 만든 한국인들의 세계유산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서울은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성장할 기회를 갖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반드시 보존과 공존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가 요구한 기본 조건조차 지키지 않는 도시가 세계의 문화수도로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묘는 재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역사적 중심지이다.

개발은 하면 된다. 그러나 기준은 달라져야 한다. 종묘의 고요함과 역사성, 선조의 위패가 모셔진 의례 공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도시의 미래를 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2025년 서울이 세계에 보여줄 도시계획의 품격이 될 것이다. 종묘를 지키는 일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도시의 기본을 세우는 일이다.

 

               김홍국 칼럼니스트

 

김 홍 국

국제정치학 박사
전 경기도 대변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한국정치경제리더십연구소 이사장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