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러시아서 상표 대거 등록… 공장 재매입 앞두고 '주목'
상표권 확보로 생산·판매 기반 복원 가능 현지 업계 "복귀 수순 아니냐" 관심 집중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던 현대자동차가 최근 러시아 지식재산 당국에 자사 로고와 주요 브랜드 상표를 잇따라 등록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다시 러시아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상표권을 다시 확보한 시점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바이백(재매입)' 기한을 약 한 달 앞둔 때와 겹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18일 러시아연방지식재산서비스인 로스파텐트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현대차는 11월 들어 자사 로고뿐 아니라 주요 차종 상표까지 대거 등록을 마쳤다. 등록 기간은 대부분 2034년까지로 정해졌다. 상표권을 등록하는 것은 러시아에서 자동차와 부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할 때 필요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절차라, 이를 두고 현지에서는 현대차가 전략을 바꾸는 데 신호탄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언론과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공장 운영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상표권을 미리 확보하려 한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2023년 12월 러시아 업체 아트파이낸스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포함해 러시아 법인 지분 전량을 넘겼는데, 이 매각 계약에는 '2년 내 재매입 가능' 조건이 붙어 있었다. 매각가는 상징적인 1만 루블(약 14만원) 수준으로, 사실상 철수 목적의 매각이었다.
다만 복귀 시한을 계산하는 기준점에는 다소 혼선이 있다. 계약이 체결된 시기는 2023년 말이지만, 최종 종결 시점은 2024년 1월로 남아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복귀 가능성을 따질 때 어떤 기준 시점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현지 승용차 시장의 핵심 생산거점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완공된 이곳은 '솔라리스', '크레타' 등 러시아에서 잘 팔리는 모델들이 생산되면서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크게 끌어올렸었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그로 인한 서방국가의 제재와 부품 공급 중단 탓에 2022년 3월 공장 가동이 멈췄고, 결국 2023년 말엔 매각으로 이어졌다.
공장을 인수한 아트파이낸스 계열 AGR자동차그룹의 행보도 현대차 복귀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AGR은 솔라리스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해가며 생산을 하고 있다. 러시아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현대차 시절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지 않고 차량을 공급하는 독특한 시장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현지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번 상표 등록이 "법적 권리 회복에 대비한 행보" 또는 "시장 상황 변화에 대비한 선택지 확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전쟁 이후 서방 업체가 떠난 자리에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지만, 한국차에 대한 현지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가 다양한 방식으로도 시장에 다시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두려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향후 시나리오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공장 재매입과 생산 재개, 둘째, 조립이나 유통 방식으로 제한적으로 복귀하는 방안, 셋째, 상표권만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전략적 관망 등이다. 국제 제재와 금융, 물류,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외교 상황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최종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상표 등록은 분명히 다시 시장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는 의미이지만, 당장 복귀한다는 신호로 보긴 어렵다"면서 "선택지 자체를 닫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러시아 시장은 규모 면에서 여전히 매력적이고, 중국 브랜드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에 한국 기업이 돌아갈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차는 이번 러시아 상표 등록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표권을 다시 확보한 사실만으로도 국내외에서 현대차의 행보에 대한 다양한 관측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공장 재매입 시한이 기술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현대차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