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일가, 198개사서 '미등기임원'만 맡아…사익편취 규제회사 절반 넘어
대기업 집단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고 미등기임원으로만 재직하는 사례가 여전히 광범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영향력과 권한은 유지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미등기임원이 집중된 곳의 절반 이상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로 분석돼 책임 회피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총수 있는 77개 공시집단 소속 2,844개 계열사를 조사한 결과,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는 198곳(7.0%)으로 전년(5.9%) 대비 1.1%포인트 증가했다. 상장사 기준으로는 29.4%에 달해 전년 대비 6.3%포인트 늘며 미등기임원 비중 확대가 더 두드러졌다.
총수 본인은 평균 2.6개, 총수 2·3세는 평균 1.7개의 회사에서 미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었다. 미등기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집단은 하이트진로가 58.3%로 가장 높았고 △DN(28.6%) △KG(26.9%) △금호석유화학(25.0%) △셀트리온(22.2%) 등이 뒤를 이었다. 집단별 미등기임원 1인당 겸직 수는 △중흥건설(7.3개) △한화·태광(4개) △유진(3.8개) △한진·효성·KG(3.5개) 순으로 많았다.
특히 총수일가가 맡고 있는 미등기 직위 259개 중 절반을 넘는 141개(54.4%)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소속으로 나타났다. 사익편취 규제 회사는 총수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하거나 해당 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를 의미한다. 공정위는 이들 회사에서 부당 내부거래나 일감 몰아주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별도의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음잔디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미등기임원은 실질적 경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등기임원과 달리 법적 책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며 "권한과 책임 간 괴리가 문제 될 수 있고, 최근 개정된 상법의 충실의무 강화 취지를 무력화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 상법은 등기임원에 대한 책임만을 부과할 수 있어 미등기임원이 늘수록 사각지대가 확대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회사는 518곳(18.2%)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 등기이사는 704명으로 전체 등기이사 1만 50명의 7.0%를 차지했다.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회사 비율(18.2%)과 전체 이사 중 총수일가 비중(7.0%)은 2022년 이후 3년 연속 상승세다. 총수일가 1인당 평균 이사 겸직은 2.2개이며, 총수 본인은 평균 2.8개, 2·3세는 평균 2.6개를 맡고 있었다.
이사회 운영의 형식적 구조도 여전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51.3%로 과반을 유지했으나, 상정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대로 가결되는 등 견제 기능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됐다.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제도 도입은 확산됐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주주총회 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중 하나 이상을 도입한 회사는 319곳(88.4%)으로 증가했으나, 실제 소수주주권 행사 건수는 93건으로 역대 최대였음에도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미등기임원 관련 사각지대 해소와 총수일가의 책임성 강화 방안을 추가 검토할 계획이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