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폴리뉴스·상생과통일포럼 제25차 포럼]신성장 산업-K컬처 편 "화려한 K-드라마의 이면…광고·투자·글로벌 유통·세제 개편, 4대 해법 제시"
배대식 드라마제작사협회 대표 'K-드라마' 성장 뒤에 가려진 산업 불균형과 재편 과제' 유통 붕괴·IP 상실·고비용 제작… 드라마 생태계를 흔드는 삼중 압력 배대식 대표가 제시한 4대 해법...방송 광고 규제를 현실에 맞게 합리화,민간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대형 콘텐츠 투자·배급사 구축,FAST(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하는 글로벌 유통 전략,금융·세제 인프라의 전면 개편
폴리뉴스·상생과통일포럼이 주최한 제25차 포럼은 '한국경제의 승부수, 자동차·반도체+신성장 산업'을 주제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는 개회사에서 "한국경제의 미래는 AI 디지털 산업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환영사에서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아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AI 디지털 산업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기존 주력 산업뿐 아니라 AI, 조선, 방산, 제약·바이오, K-컬처에 이르기까지 신성장 축 전반을 아우르며 산업별 미래 전략을 종합 점검하는 자리였다.
발주 산업을 대표해 발표에 나선 조선·방산·AI·모빌리티 업계는 잇달아 성장 청사진을 제시하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K-컬처를 대표해 단상에 오른 드라마 산업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세계 시청자가 열광하는 글로벌 K-드라마의 인기는 높아졌지만, 산업 내부에서는 "지금의 성공이 곧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구조적 위기론이 더 절실한 분위기였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배대식 대표는 'K-드라마의 성장 뒤에 가려진 산업의 불균형과 재편 과제' 발표에서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부에서는 심각한 균열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한때 아시아 시장을 호령하다 급격히 쇠퇴한 홍콩·대만 콘텐츠 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 대표가 지적한 첫 번째 문제는 유통 시장의 붕괴다. 방송사들의 드라마 편성 축소가 본격화되면서 이미 수백억 원을 들여 제작된 작품이 편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창고에 쌓이는' 이례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광고 시장 침체와 방송사 재정 악화로 인해 드라마 편성이 우선적으로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며, 발표자료 역시 이를 "산업 생태계 가장 앞단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붕괴 신호"로 규정한다.
두 번째 위기는 글로벌 OTT 중심의 불공정 구조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해외 플랫폼은 제작비를 전액 지급하는 대신 IP(지적재산권)를 100% 독점하는 계약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제작사는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잃고, 창작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하청업체로 전락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배 대표는 "결국 우리 IP가 해외 플랫폼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고, 국내 제작사는 껍데기만 남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세 번째로는 제작비 폭증과 정체된 수익모델 간의 괴리가 지목됐다. 불과 5~6년 전 회당 5억~6억 원이던 제작비는 지금 국내 방송사 기준으로 회당 평균 15억 원에 달하며, 글로벌 OTT용 드라마는 회당 20억~60억 원에 이르는 초고비용 구조가 정착됐다. 하지만 광고·편성 등 기존 수익 모델은 수년째 크게 개선되지 못하면서 고비용 제작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발표자료 역시 이를 "수익 구조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체 상태"라 평가한다.
배 대표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 재편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우선 방송 광고 규제를 현실에 맞게 합리화하는 작업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간접광고나 가상광고조차 대사·노출 시간까지 지나치게 세세하게 규제하고 있어 콘텐츠 제작과 편성에 제약을 준다는 지적이다. 중간광고 역시 '허용 기준'으로 묶여 있어 방송사 재원이 제한되고, 주류·분유 등 일부 품목 제한도 글로벌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하다. 제목형 협찬을 허용하지 않는 규제 또한 새로운 광고 재원 발굴을 가로막고 있다. 그는 "이 네 가지 규제만 정상화해도 산업에 산소 공급이 재개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대형 콘텐츠 투자·배급사를 구축해 국내 제작사가 IP를 함께 소유하고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간 20~30편 제작을 지원하고 글로벌 유통까지 담당하는 공공-민간 합작 플랫폼을 구축하면 현재의 하청 구조를 탈피할 수 있으며, 해외 플랫폼 의존도를 줄여 IP 해외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삼성 TV 플러스와 LG 채널 등 FAST(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플랫폼을 활용하는 글로벌 유통 전략을 제안했다. 전 세계 TV에 기본 탑재된 FAST 채널에 K-콘텐츠 전용관을 신설하면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해외 플랫폼 없이도 즉시 글로벌 시청자에게 도달할 수 있고, 관광·음식·문화와 연계한 K-라이프스타일 채널로 확장하면 국가 브랜드 가치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배 대표는 기획·개발비를 연구개발(R&D)로 인정하는 세액공제 제도, 산업 기반 보호에 초점을 둔 정책 목적형 펀드, 편성이 확보된 작품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제작보증형 펀드, 영업손실 기업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급형 세제 구조 등 IP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세제 인프라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는 "현재 세액공제는 영업이익이 있는 기업만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적자가 많은 제작사에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는 제도"라며 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배 대표는 발표를 마치며 "K-콘텐츠가 세계를 흔들었다면 이제는 정책이 산업을 지탱해줄 차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의 K-드라마 산업은 세계적 성공과 구조적 위기를 동시에 맞이한 기묘한 분기점에 서 있다"며, 제작사와 방송사, 플랫폼, 정부가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성공의 기억만 남기고 사라지는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방산·AI 등과 비교하면 드라마 산업의 규모는 분명 작다. 그러나 한국 소프트파워의 핵심 기반이며 관광·화장품·식품 등 다수의 후방 산업을 이끌어온 전략 산업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지금의 전환점이 단순한 산업 개선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데 공감대를 모으고 있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