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 경제는 3%대 초반에 달하는성장세가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빠르게 재확산되며, 과연 이러한 경제성장이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전염병 대유행인 팬데믹으로 2020년 한국 경제는 –1.1%라는 역성장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코로나19가 글로벌 경제에 급속하게 확산되었던 2020년 상반기에 경제성장의 두 축인 소비와 수출이 모두 급감했던 영향이 컸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을 보인 것은 2차 오일쇼크로 –1.6%를 기록한 1980년과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5.1%로 성장률이 급락한 1998년 이후 세 번째이다. 이번 역성장이 이전보다는 하락 폭이 작아도 설비투자를 제외한 소비, 건설투자, 수출, 수입 등 대부분 주요 지표가 연간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체감경기는 이전만큼 나쁘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글로벌 경제의 특징은 소위 기술이나 고용, 교역 등 경제 펀더멘털의 직접적인 변화보다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 락다운 강도, 그리고 정부와 중앙은행 등 정책당국 대응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점이다. 2020년 하반기에 글로벌 경제 및 한국 경제가 개선된것은 이러한 코로나19 관련 요인…
문재인 정부 출범과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원전 폐기 공방과 함께 각종 대안 에너지의 효용성 논란이 거듭되고있다. 본지는 수소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와 관련해 'LNG 개질수소'가 이산화탄소 배출의 또 다른 주범이 된다는 최근 논란에 대해 특별기고를 싣는다. 이대환 작가는 기고에서 만약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한국의 ‘그린 뉴딜’을 넘어 지구에게 최고 선물이 될 ‘알루미늄 수소’의 대안적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 작가는지난 2017년 ‘바른 에너지정책을 위한 국민 교양서’라 불린 장편 에세이『하얀 석탄』(아시아)를 발간해그해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됐다.이대환 작가는 한국 평전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박태준 평전』(아시아, 2016)을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보적 통합가치를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밝혀냈다. 또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아시아, 2019)에서는 ‘작은 인간의 영혼에 평화가 살고 있는 한 평화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평화사상을 형상화했다. /편집자 주 LNG 태워서 수소 얻을 때 석탄화력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된다 코로나19가 유령처럼 지구촌을 지배하기 전이었다. 자카르타…
1. 수렁에 빠진 미국, 중국의 ‘백년의 마라톤’ 미국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 시대가 열린다. 2021년 미국 신정부는 '미국다운 미국'을 재건하는 소임 앞에 섰다. 지금 미국이 비틀거리고 있다. 바이든 시대 미국은 제국의 위상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세계 속에 우뚝 솟을 수 있을까? 트럼프 4년의 명암은 너무도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나 행동이 세계의 조롱거리로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미국이 코로나(COVID-19) 팬데믹의 최대의 희생자를 낳은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수렁에 빠졌다. 그러나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데에 트럼프만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주류 지배세력은 미국의 건국정신을 망각했고 배반했다. 백악관, 의회, 월가, 종교계, 언론, 대학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청교도 정신, 공화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가운데 지배계층의 오만, 금권주의, 도덕적 타락이 한층 극심해졌다. 미국 사회는 극도로 분열되었다. 계층, 인종, 성소수자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통적인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마치 현대판‘부족주의’사회로 해체되는 모습까지 드러냈다. 제국의 포용성마저 사라졌다. 밖으로는 국
자고 나면 세상이 변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7살이 되면 같은 밥상에 앉지 않는다. 7살이 되면 남녀의 성적 차이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는 또한 남녀의 사회적 역할이 구분되며 사물이나 사회에 대한 의식적 시선을 두는 시기이다. 정공단 거리에는 또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골목길에서 놀이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귀가 있으니 들리는 이야기를 주워 담고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박재혁도 예외가 아니다. 정공단의 아이들은 점점 세상을 알기 시작했다. 세상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하루가 자고 나면 달라졌다.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에서 일본은 ‘조선국은 자주국이다.’라고 인정한다. 실상은 청국 세력을 배제하는 술책이었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 경제적 활동을 시작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청나라가 패배하리라 예상하지 못한 중화주의자들은 놀랐다. 개화 선각자들은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의 나라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일어나고 민비가 일본 깡패들에게 살해되었다. 일본은 조선 땅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정공단의 아이들 태어나다 1895년 박재혁이 태어난 뒤 정공단의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났다. 정공단은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 전투에서 순절한 흑의장군 정발을 1766년(영조 42)에 당시 부산첨사 이광국(李光國)이 옛 부산진성 남문에 세운 제단이다. 박재혁이 태어날 당시 정공단은 지금이 아닌 옛 부산진성 남문 근처에 있었다. 바로 바다를 통해 배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남문이라 바닷가 근처였다. 영가대 인근으로 추정된다. 경부선 철도 공사를 하는 와중에 정공단은 현재 위치로 옮겼다. 좌천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현재의 정공단 거리는 당시 좌천마을에서 가장 근대적인 거리였다. 부산진교회로 인해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근대적 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와 한문 서당인 육영재가 있었다. 박재혁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크게 세 부류이다. 첫 번째는 부산진사립[공립)보통학교이다. 두 번째는 부산공립상업학교이다. 세 번째는 동국역사 배포와 구세단 사건이다. 네 번째는 부산경찰서 투탄 사건 관련이다. 그 이후는 또 서로의 인연에 의해 친구와 선후배가 독립운동의 동지가 되었다. 모두가 지역적 연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10년 전후 개화와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지연적 연
박기종 철도 건설 사업을 하다 박기종은 철도 건설에 관심을 가져 ‘철도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열강의 철도부설권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합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철도는 민족의 기업으로 건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를 부강케 함은 상무가 제일이요, 상무를 흥왕케 함은 철도가 제일이다’라는 취지 아래 1898년 5월 한국 최초의 민족철도회사인 부하철도회사(釜下鐵道會社)를 창설하였다. 자본금 약 10만5,000원의 주식회사로 경편 철도를 계획하였으며, 당시 조선인의 주목을 받으며 다수의 유지가 동참하였다. 박기종과 기차와의 인연은 1차 수신사 일행이 승차했던 특별열차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기수를 대표로 약 75명으로 구성된 수신사 일행이 일본 요코하마에 당도하자, 일본 외무성 관리가 마중 나와 특별열차를 타고 도쿄로 이동했다. 김기수는 이 특별열차를 앞에 두고 이게 긴 복도가 이어진 집(장행랑, 長行廊)인 줄로만 알았다. 박기종도 이 특별열차를 통해 처음 기차를 접했다. 1880년 2차 김홍집 수신사 일행의 역관으로 참여하여 재차 일본을 시찰하면서 박기종은 철도라는 근대 기계문명을 신뢰하게 된다. 부산항과 하단포(下端浦)를 연결하는 10k…
“전남 신안군이 경남 김해시와 자매결연 1주년을 맞은 10월 1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 ‘김해시의 섬’으로 선포했다. 이날 하의도 선포식과 상징 조형물 제막식에는 박우량 신안군수, 허성곤 김해시장, 시ㆍ군의회 의원 등이 참석했다. 주로 철재로 만들어진 상징 조형물은 김ㆍ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사진전의 스케치 장면을 본떠 두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담았다. 기둥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이 담긴 ‘행동하는 양심’이란 문구와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따뜻한 글귀와 어록을 새겨 두 대통령의 뜻을 기렸다. 이와 함께 김해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진영읍 김해대로 구간을 ‘신안천사대로’로, 노 대통령 생가 인근 봉하로 구간을 ‘하의로’로 명예도로명 부여를 추진 중이다. 특히, 신안군은 하의도에 이어, 가거도를 경기 평택시의 섬으로 도초도를 경기 하남시의 섬으로 선포하기로 했다. 또 인천 옹진군과 경산시, 서울 강남구, 마포구, 고양시, 광양시, 경북 울릉군 등 전국 11개 시군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문화교류와 섬 문제 공동대응, 향우회와의 지속적인 교류 행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전국에 있는 모
부산 토박이 박기종, 경무관이 되다 부산은 지석영 이후 동래부는 동래군으로 바뀌었다가 1896년 다시 동래부로 바뀐다. 1883년부터 동래부사가 겸했던 외교와 통상업무를 담당했던 감리가 1885년 폐지되었다가 다시 동래부사는 부산항재판소, 동래감리를 겸하게 된다. 당시 부산감리소는 현재 부산 영주동의 봉래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1896년 5월 1일 개항장인 동래(부산)에 경무서가 설치되어 해양 경찰사무를 담당하게 된다. 부산 감리소 안에 있었다. 동래의 초대 경무관(경찰청장)은 박기종(朴琪淙, 1829~1907)이었다.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난 박기종은 젊은 시절 당시 부산을 대표하던 상인 조직인 동래 팔상고(八商賈)를 드나들면서 일본어와 상업을 배웠다. 박기종은 1876년과 1880년 김기수, 김홍집 일본 수신사 일행의 통역관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일 외교활동에 참여하였고 국가로부터 사업자금이 될 은전도 받았다. 부산에서 "기생과 음악을 모두 준비하고 술상을 뻑적지근하게 차려놓고" 연회를 베풀 정도로 상업 및 어업을 겸업하며 자본을 축적하였고, 부산에서 서울과 일본을 왕래하며 대일외교를 수행하였다. 박기종은 1886년 10월 부산항…
괴질의 시대가 왔다 박재혁이 태어나기 20여 년 전인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포가 개항하였다. 초량왜관은 치외법권 지역의 일본 전관거류지로 개방되었다. 1880년 2월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고 동시에 영사관 경찰소를 부설하였다. 1885년 10월에는 재조선국 부산일본재판소를 두었다. 영사는 이 지역의 실질적 삼권의 지배자였다. 대부분 기관은 초량왜관 부근에 있었다. 부산의 용두산 부근을 일본인의 편리를 위한 철저한 계획도시로 만들어갔다. 영사관 건물을 중심에 두고 그 둘레에 경찰서, 은행, 병원, 상업회의소, 전신국 등 공공건물을 배치하였다. 왜관 시절 사방에 있던 돌벽과 성문, 수문을 허물어 일본인의 영역은 용두산 지역을 넘어 점차 초량・부산진 지역으로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인 거주지는 부산 속의 일본이었으며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1876년 개항과 함께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일본 무역선을 통해 들어온 콜레라(호열자)는 부산을 죽음의 마을로 몰아넣었다. 호랑이에 물린 듯한 고통을 주는 괴질이었다. 1879년 수백 명이 죽었다. 1886년 5월 다시 대유행하여 매일 20여 명이 발병과 사망을 했다. 인근 지역인 마산, 창원, 웅천 등지로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의 가계와 삶터 박재혁은 밀양박씨 박희선(朴喜善, ?~1909)과 경주이씨 이치수(李致守, 1873.8.7~1949.10.8)의 외아들로 1895년 5월 17일 부산 범일동 183번지에서 태어났다. 박희선 집안과 관련한 사실은 밀양박씨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의 집은 양반 가문이라기보다 평민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도록 하는 민적법(民籍法)을 1909년에 시행하였다. 이때부터 평민과 노비는 양반과 같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제도화가 되었다. 성이 없던 사람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면 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였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 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이때 성씨의 종류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박희선은 1909년 사망하였기에 현재 제적등본 등을 통해 부모 형제를 파악하기 힘들고 그와 관련한 인척들이 등장하고 있지 않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본다면 양반보다는 평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당시 박재혁의 부모와 외가가 살았던 부산시 동구 범일동과 동래구 복천동이 전통적인 양반의 거주지가…
[폴리뉴스 강필수 기자]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첫 국산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가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음 달 출고를 앞둔 KF-X 시제기가 공개된 것입니다. KF-X는 대한민국 공군의 노후 기종을 대체할 4.5세대 전투기입니다. 날개 너비 11.2m, 길이 16.9m의 KF-X는 F-16보다 크고 F-18보다 작습니다. 최대추력은 4만4000lb에 최대 이륙중량 2만 5600kg과 최대 탑재량 7700kg을 갖췄습니다. KF-X의 최대 속도는 마하 1.81, 시속 2200km에 달하며, 항속거리는 2900km입니다. 특히 KF-X에는 국내에서 개발한 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가 탑재됩니다. 부품만 약 22만개에 달하는 KF-X 시제기의 출고식은 다음 달 진행될 계획입니다. 시제기 출고식 이후에는 1년여에 걸친 지상시험을 거쳐 내년 7월경 첫 비행에 나설 예정입니다. 2001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산 전투기 개발 의지를 밝힌지 20년 만에 ‘한국형 전투기’가 ‘이륙 준비’를 앞두고 있습니다.
[폴리뉴스 김미현 기자]코로나19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배달사업. 각 지자체도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로 공공배달앱을 속속 도입하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소상공인들이 부담하는 중개 수수료와 광고비가 0~2% 수준입니다. 기존 배달앱보다 최대 8배 부담을 덜 수 있어 지역 소상공인들이 반깁니다. 소비자도 5~10%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지역 화폐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장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점유율이 2월 기준 1%도 안 되는 곳이 태반입니다. “가맹점이 적다.” “배달 관련 불만이 있어도 대응이 안 된다” “민간 앱보다 고객 주문받기 불편하다” 공공배달앱이 기존 민간 앱과 비교해 가격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경쟁력이 별로 없다는 지적인데요. 지자체도 마케팅이나 가맹점 관리 등 민간 앱처럼 경영관리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용자의 편의성을 자극하지 못하면 좋은 취지라도 지속하기 쉽지 않다고 진단합니다. 기존 민간 앱에 뒤처지지 않는 공공배달앱 탄생으로 소상공인과 소비자 둘 다 웃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