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룡 칼럼] "모든 타자(他者)는 자기의 딴 이름이다" 

2022.03.09 09:38:12

임인년 경칩의 글, '개구리와 호랑이'를 리라이팅했다.

임인(壬寅)년은 이미 시작됐다. 원래 한 해의 시작을 입춘(入春)으로 친다. 이어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도 어제 아래다. 
 
개구리는 양서류다. 진화 가설에 의하면 어류와 인류의 사이, 물에서 뭍으로의 '전환기의 존재'가 양서류다. 역(驛)으로 치자면 종착역이 아니라 간이역인 셈이다. 지증학적으로 '한반도'가 딱 여기에 해당된다. 

또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는 말도 있다. 물론 인간의 언어이기는 하지만 시간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개구리의 시공간, 경칩의 시절이란 시작과 동시에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은 아닐까. 

올해는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이다. 동양사상에 의하면 '임'은 검다는 뜻이다. 캄캄하고 어둡다. 빛이 없으니 눈은 무용지물이다.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더듬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인년은 대체로 착시와 혼란으로 한 치 앞을 가눌 수 없는 시절일 것이다. 

이때는 속도보다 방향이 더욱 절실해진다. 쾌속질주란 곧 죽음의 입구가 된다. 그리고 우주론적으로 볼 때 임인년에는 지구의 '동북'방향, 즉 한반도가 주목 받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시절의 분위기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기(大氣)가 수상하다. 봄바람이 한여름 폭풍같다. 마스크94로 막아보지만 코구멍을 뚫고 가슴까지 단번에 점령당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변종 스텔스 확진자 하루 20만명을 넘었다. 

50년 만의 가뭄이다. 물기는 없는 땅이 사막같다. 대지(大地)가 바싹 말라 정월 보름이 지났건만 농부는 씨를 뿌리지 못하고 있다. 조그만 불씨에도 한반도 곳곳에 불이다. 축구장 8496개...

불이 바람을 타고 불바람이 됐다. 경칩의 개구리, 불바다를 만난 형국이다. 임인년 호랑이, 불바람 속이다.  

둘은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전자는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 후자는 시대의 잣대가 달라졌음을 알리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며 들었던 촛불은 무용지물이 됐다. 촛불로는 어둠을 걷어치울 수 없음을 알았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게 됐다. 진위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가히 'Post-Truth 시대'라 할 만하다. 

이제 사람들은 허둥대며 더듬어대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이 봇물처럼 터졌기 때문이다. 대체 여긴 어디? 난 누구? 뭣이 중한디? 이 따위가 행복? 혹시 내가 '무뇌충' '좀비' '기생충'이 아닐까? 선거는 왜? 대통령은 누구? 나와 무슨 상관? 

또한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더높이 더넓게 더빨리 더많이 더더더...' 무한성장 무한증식 무한경쟁 '죽도록 고고고' ...... 혁명의 파토스, 사랑도 뜨겁게 뜨겁게, 미친듯이 불같이... 불꽃같은 인생들... 이런 것들이 삶의 기준이었다. 

그 결과 'COVID-19'는 단번에 '인류의 설국열차'를 간단히 제압해 버렸다. 인류는 졸지에 '인터스텔라' 속으로 떨어졌다. 

이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게 됐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라졌고 지구는 23.5도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이제 사랑의 키스는 '살인의 입맞춤'이 됐다. 남녀는 이제 포옹할 수 없다. '다음세대'란 없다. '다른세대'가 오고 있다. 

물리적으로 따지고 봐도 시간과 공간은 '불가역'이다. 돌이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자연으로 돌아가자',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하지 마라. 더 가지려고도 말라. 더 누리려고도 말라. '이게 나라냐?'라고 묻지도 말라. 미안하지만 '과거 청산'도, '적폐 청산'도 때를 놓쳤다. 

일자리 달라고도 말라. 당신이 원하던 '그' 일자리 사라진 지 오래다. 어제는 망상일 뿐이다. 부동산이 어쩌구저쩌구도 말라. 지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뒤 돌아볼 때가 아니다. 

하지만 '길'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길은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른다. 물에서 뭍으로 가는 그 사이 '경칩의 개구리' 말이다. 패권과 전쟁 사이의 '검정호랑이 한반도' 말이다. 대전환과 딥(DEEP)전환 사이의 '리더십 선택' 말이다.

결국은 오래전 유대족속이 '홍해 앞에 세웠던 모세'처럼 유대족속의 '열망'이 모세를 메시아로 부른 것이다.  

2022년 3월9일, 오늘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을 말하고, '리더십'을 말하고 '선택'을 말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내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내 삶의 현 수준'일 뿐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그랬다. 우주법칙에는 '용서'가 없다. 히틀러가 됐든, 요순의 선왕이 됐든 결국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의 선택이다. 



정하룡 칼럼니스트 sotong2010@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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