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논평>

국외 리그 진출과 자유계약선수(FA) 자격 획득 여부로 연맹・구단과 마찰을 일으켰던 프로여자배구 흥국생명 소속 김연경 선수의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한국배구연맹이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김연경 선수는 일단 1년간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연경 선수는 지난 7월 1일부로 FA자격을 획득했다며 유럽리그 진출을 주장했으나 흥국생명과 한국배구연맹에서 규정상 ‘아직 자유계약선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출을 불허한 것이 발단이 되어 갈등을 일으킨 상황이었다.

출중한 실력으로 유럽무대의 러브콜을 받고, 2012런던올림픽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국제스타’가 된 그녀였기에 연맹・구단과의 갈등 사건은 스포츠팬을 넘어 국민의 관심사였다. 대중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코트 안에 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연경 선수를 응원하며 “선수의 앞길을 막는 연맹・구단의 편협한 규정”을 비판했다. 정치인들 역시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국제무대에서 훨훨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대승적인 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연맹과 구단은 여론과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하며 김연경 선수에게 해외로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제도에 묶인 특급 선수가 자유를 얻어 날개를 펼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있다. 한국배구연맹의 자유계약선수 규정은 국내 정규리그 6시즌을 충족한 선수를 자유계약선수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 규정에서 해외구단으로의 임대기간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연경 선수는 국내리그 4시즌, 해외리그 3시즌을 뛰며 도합 7시즌을 흥국생명 소속으로 활동했다며 자신이 자유계약선수임을 주장했다. 이는 명백히 규정을 무시한 주장이며,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정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예외로 해달라’는 식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정치인의 입김으로 연맹과 구단이 움직인, 그리고 스포츠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통로로 사용된 사례다. 국정감사 기간 야당 국회의원 몇 명은 김연경 사건의 조속한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사실상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 관련 규정과 정확한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 않은 듯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김연경 선수가 하루 빨리 세계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할 수 있도록 문방위가 노력하겠다.”,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다.”는 수사로 국민감정에 호소하며 합리적 절차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에 개입했다. 임태희 대한배구협회장이 김연경 사태를 일단락하며 “올림픽 4강에 대한 선물”이라고 언급한 것은 법질서 위에 또 다른 질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예다.

물론 선수의 권익이 침해받는다면 문제제기를 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나 국민적 관심사가 생기고 난 후에야 미봉책을 내놓고, 사후에 제도를 정비하는 안일한 정치권의 대응은 서로의 입장을 마주하고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사건은 구단의 권리와 개인의 권리에서 파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토론과 합의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연경 선수는 하루 빨리 해외에 진출하고픈 개인의 욕망만을 중요시했으며 정치권은 국민의 관심사인 ‘올림픽 영웅’을 감싸며 선후 관계를 거꾸로 놓는 오판을 내렸다.

이들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으려면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제15조)’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자유계약제도’의 현실에 대한 고찰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프로배구의 영역을 넘어 프로스포츠 전반에 걸쳐 수많은 프로선수에 대한 권리까지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김연경 선수와 정치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자유계약제도’를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김연경 선수는 개인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 연맹의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정치인들 역시 올림픽 스타였던 김연경 선수의 인기를 정치에 이용했다는 오명을 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체육정책을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프로스포츠 FA제도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아야 하며, 공청회와 같은 통로를 통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시민사회 영역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수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길 촉구한다.

10월 25일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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