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내내 있던 공안사건으로 국정원개혁 멈출 수 없어”
이날 촛불집회는 행사직전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약 2만 명(경찰 추산 약 4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국정원 개혁과 진상규명을 위한 함성과 촛불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특히 이날 집회는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수사 중이라는 것이 알려진 이후 열린 첫 촛불집회였기에 안보이슈에 민감한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워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시국회의는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입장을 정하지 않은 탓인지 민감한 발언이 나올 수도 있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행사순서에서 빼고 그 대신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엮여 ‘종북프레임’에 끌려가는 것을 우려한 탓인지 민주당 의원 대다수는 앞서 오후 5시30분에 당이 주최한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결의대회’에만 참석하고 촛불집회에는 불참했다. 평당원들의 깃발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국정원의 수사를 정치공작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평소보다 많은 인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이석기 의원을 제외한 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은 이정희 대표와 함께 집회 맨 앞줄에서 자리를 지켰고, 평소보다 많은 통합진보당의 깃발들이 서울역 하늘을 나부꼈다.
이날 촛불집회가 시작될 즈음에 쏟아진 폭우로 15분 정도 행사 시작이 지연됐고 빗물로 음향장비들이 고장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흔들리지 않고 “국정원은 해체해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특검으로 진상규명”, “민주주의 지켜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자리를 지켰다.
행사 기조연설에 나선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국정원은 언론플레이 하지 말고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규명과 개혁 작업에 협조하라”면서 “대신 내란음모 수사는 검찰에 맡겨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안사건은 분단 60년 동안 내내 있었다. 그렇다고 국정원 개혁을 멈출 수 없다”며 “국정원이 바로서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과거의 잘못을 국민 앞에 인정하고 국정원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무처장의 연설이 끝나고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발언을 신청했거나 현장에서 신청한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발언대에 선 시민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민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다함께’ 활동가 김지윤씨도 “통합진보당 활동가와 이석기 의원에게 내란혐의를 적용한 것에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칼끝을 들이민 유신시대가 생각난다”며 “조작과 왜곡의 달인들이 뭉쳐 진보당원들을 괴물로 만들고 내란음모란 말로 촛불을 얼어붙게 하고 촛불을 분열시키려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천구민 이모씨는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으로 많은 시민이 진정성을 의심하고 두려워한다”며 “통합진보당은 무조건 다 음모라고만 하지 말고 책임 있는 공당답게 만일 헌법이나 법률 위반행위가 있었다면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면 된다”고 충고했다.
그 밖에도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대여투쟁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소극적인 투쟁모습을 질타하는 시민이나, 판소리를 통해 국정원을 비판한 시민 등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주최 측은 “우리 촛불집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분들이 모였다. 박근혜 사과부터 박근혜 하야까지, 국정원 해체부터 국정원 개혁까지 다양한 의견을 있다”며 “그러나 목적은 하나다. 지난 대선 국정원의 국기문란 범죄행위 진상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하고 민주주의를 국민의 힘으로 지키자는 목표는 모두 같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민들의 촛불은 방송에 잘 나오지 않지만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와 관련된 방송은 3일 내내 나왔다”며 “내란음모 사건처럼 보도를 많이 했다면 국정원 문제는 진작 해결됐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날 촛불집회는 9시 20분경에 끝났고 시국회의는 다음 촛불집회들이 각각 오는 7일에는 청계광장, 13일에는 시청광장에서 열린다고 알렸다. 특히 13일에 열릴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범국민행동의 날’로 지정해서 더욱더 거대한 촛불을 피워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무장봉기 내란음모 종북정치세력 박살내자”, “헌정파괴와 자유대한민국의 혼을 갉아먹은 악의 무리, 내란음모 역당에 부화뇌동한 정치권과 추종세력은 자폭하라”는 거대 현수막을 내걸고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했다.
특히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으며, 일부 연사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로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선후배 사이인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매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