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통령을 뽑았지 댓통령을 뽑은 기억은 없다”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정확히 34년 전 누군가에겐 독재자, 누군가에겐 국가발전의 화신인 한 인물이 쓰러진 26, 서울역 광장은 불의한 권력은 파멸한다라는 구호와 촛불로 가득 찼다.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등 28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시국회의)는 이날 저녁 7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선거 개입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파기를 비판하는 ‘10.26 범국민 행동의 날이라는 명칭의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및 일반 시민 등 주최 측 추산 15천여 명(경찰추산 25백여 명)이 모였다.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시민들은 국정원도 모자라 국방부도 선거개입’, ‘박근혜는 하야하라등의 내용이 적힌 손 팻말과 촛불을 높이 들었다. 

"불의한 권력은 망한다"

첫 발언에 나선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34년 전 이날은 궁정동에서 독재자가 비참하게 사살당한 날이라며 영원히 독재가 지속될 것처럼 보였지만 불의한 권력은 반드시 파멸한다고 외쳤다. 

박 대표는 지난해 대선은 국가기관이 관여한 총체적 부정선거이며 대선개입이 아닌 국가기관의 선거범죄라며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유신군사독재시대로 후퇴시키는 것도 모자라 반성과 사죄는 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상대로 대선불복이라는 역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경고한다. 계속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국민들은 진짜로 대선불복을 할 수 있다면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날뛰면 그 강아지는 국민들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 국정원 댓글수사에서 배제된 것을 거론하고 정권이 수사를 방해하고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범죄를 은폐하려 한다국회에 들어간 야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대표의 발언이 끝나고 무대 위 화면에서는 지난 대선기간동안 박 대통령이 방송토론이나 연설을 통해 각종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저는 약속을 지킵니다라며 기초노령연금 65세 이상 20만원 전액 지급’, ‘4대 중증 질병 100%보장’, ‘반값 등록금등 각종 복지공약들을 약속하는 모습이 나오자 시민들은 야유를 보냈다. 

"말이아닌 행동으로 투쟁해야"

이어서 무대에 오른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의 권리는 국민의 권리이지 정부가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노동자의 권리수호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올 11월부터 하반기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싶지만 아직은 할 수 없다. 80만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의견을 통일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국민들의 이런 관용을 계속 거부한다면 박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해고를 당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잇달아 무대에 등장한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2424년 전교조가 팩스 한 장으로 법외노조가 됐다이제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아닌 초법노조고 합법노조가 아닌 헌법정신에 따른 헌법노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가능한 모든 자유를 누리겠다. 퇴직교사, 예비교사, 기간제 교사 등 모든 시민을 전교조 조합원으로 받겠다고 선포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지금 박 대통령이 꿈쩍도 안하는 것은 우리가 행동으로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제 입으로 투쟁하거나 농성장에서 투쟁하거나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닌, 전 민주세력의 총궐기를 이뤄내 박근혜 정권과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고 외쳤다.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대통령과 닉슨은 비슷"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사건을 조사하던 검찰총장이 신상이 털려 쫓겨났고 수사팀장도 국정원 댓글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공소장을 변경하려다가 외압으로 쫓겨났다면서 그런데 국정원은 당당히 공문 보내 체포된 직원들에게 수사협조 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번 사건이 이명박 정권의 문제에서 박근혜 정권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 사무처장은 정부가 국민의 예산으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면 그 선거는 불공정한 선거, 부정선거라는 게 상식이다. 그것이 헌법이 정한 기준이며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게임의 룰이다라며 그런데 정부여당은 불복이냐고 협박·겁박하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이 끌어내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감사해야한다그런데 자신은 상관없다고 침묵하고 있다. 그건 헌정유린에 자신과 여당이 관련됐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웅변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무처장은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고 워터게이트 사건은 원래 닉슨 대통령이 아닌 닉슨의 재선을 위해 모인 실무자들이 벌인 사건으로 촉발됐다실무자들이 사건을 벌였고 닉슨이 그것을 은폐하면서 하야하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닉슨이 비슷하지 않느냐고 말하며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는 이제는 특검으로 가야한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 뭐를 어떻게 은폐하려고 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긴 싸움이 될 것이지만 체력과 분노를 아끼고 뱀같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고 말했다. 

이어서 부정선거이니 즉시 탄핵하자는 일부의 주장도 알고 있지만, 모두가 함께 가야지 이길 수 있다공약파기를 지적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같이 가면 내년 안에 박근혜 정권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댓글수사 외압심해, 시민이 지켜줘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채 전 검찰총장과 윤 전 수사팀장이 쫓겨난 과정을 언급하며 이제 댓글 수사팀의 보호막과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공소 유지가 될 수 있을지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새누리당의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검찰 수사 중인 사건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언론에 발언했다. 검찰 내부 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라며 또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니 국정원 직원은 즉각 석방되고 오히려 수사팀장이 쫓겨나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기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외압 이야기는 수사 초기부터 나왔다. 또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것은 국정원 직원만의 개입인데, 소위 민간인 조력자의 개입들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수사를 해야 할 내용은 많은데 외압이 너무 거세다면서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을 호소했다.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 어디갔나"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파기를 비판하는 발언들이 잇달았다.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시민 9명은 손팻말을 들고 무대로 올라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들은 경제민주화부터 보편적 복지, 반값 등록금 등 지난 대선기간 약속한 공약 중에 지켜진 공약이 단 하나도 없다면서 원칙과 신뢰를 말하던 박근혜는 지금 어디갔나고 비판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일반시민들 역시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과 박 대통령의 공약파기에 비난의  목소리를 내놨다. 

수원에서 왔다는 한 20대 청년은 나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지 댓통령(댓글이 만든 대통령)을 뽑은 것이 아니다라며 지난 대선기간 인터넷 댓글로 찌질하게 치고받은 그 사람들이 국정원 요원이나 국군이라는 것이 너무나 슬프면서도 웃기고 또 두렵다고 말했다. 

천호동에서 온 40대 남성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 내놓고 당선된 것은 결국 사기 아니냐라며 사기로 당선된 범죄자가 오히려 불복이냐고 공갈협박까지 하는데, 사기공갈협박죄로 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 사진: 폴리뉴스 이성휘
한편 이날도 역시 촛불집회 장소 인근에서는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재향경우회와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 약 2천 명(경찰추산)은 서울역 건너편 게이트웨이타워 앞에서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12차 국민대회를 열고 국정원을 흔들려는 모든 음모 행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을 겨냥해 집요하게 국정원의 체제수호활동을 후벼 파고 적대시하는 반국가 종북세력의 호위무사 정치세력과 정치검사 몰아내자라는 현수막을 걸고 국정원 수호에 열을 올렸다. 

특히 보수단체는 이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고()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34주년을 맞아 평소와는 다르게 무대를 설치하고 시끄러운 악기연주도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참가자는 검은색 정장을 착용하고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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