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해평화지대 카드’, ‘DMZ 협상카드’이자 ‘北 인권 거론’ 견제용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회담에 앞서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북한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출처 국방부></div>
▲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회담에 앞서 류제승(오른쪽) 국방부 정책실장과 북한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출처 국방부>
남북한이 15일 판문점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군 장성급 회담과 비슷한 성격의 군사적 접촉을 갖고 남북한 군 당국자들이 7년 만에 맞대면했다. 이번 접촉을 두고 정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교전과 대북전단 살포 및 북한의 고사총 발포가 배경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2차 남북고위급접촉에 앞선 탐색전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방부는 이번 접촉에서 군사 당국자들이 만나 서해 NLL문제와 대북전단 살포, 상호 비방 중지 등에 대해 “남북상호간 관계개선의 의지를 갖고 진지하게 협의했지만 양측 입장차가 있어서 좁히지 못한 채 종결됐다”며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지난 13일에 오는 30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2차 고위급 접촉을 개최할 것을 북한에 제의했다고 15일 남북 군사접촉 후 뒤늦게 밝혔다.

정부의 발표는 액면대로 보면 이날 접촉이 자기 할 말만 한 ‘대화를 위한 대화’에 머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2차 고위급접촉을 겨냥해 보다 속 깊은 논의가 오갔음을 시사한다. 또 회담 이후 상호입장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비난이 오가지 않았고 자기 쪽 입장을 강변하려는 태도도 없었다. ‘관계개선 의지를 갖고 진지하게 협의’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군사회담에서 북한이 지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주요 논의선상에 올린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부분이다.

‘서해평화지대’ 건설 문제는 10.4공동선언의 핵심적인 남북합의사항이지만 남북한 모두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북한의 경우 최근 들어 ‘서해평화지대’를 대남공세 의제로 제기하고 있지만 그 이전만 해도 10.4선언 정신은 강조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우리 쪽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유명무실화됐다. 오히려 지난 대선과 지난해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논란의 정치적 소재거리가 된 것이 ‘서해평화협력지대’였다.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했던 박근혜정부로선 이를 인정할 수 없었고 결국 지난해 9월에는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서 공식 폐기했다.

이처럼 남북 양쪽이 별 의미를 두지 않거나 폐기했던 ‘서해평화지대’를 부활시킨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DMZ(비무장지대) 평화공원’ 추진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이에 대한 의지를 밝혀왔고 최근에만 보더라도 지난 8.15 경축사와 지난달 유엔기조연설, 그리고 국무회의 등 여러 공식석상 등에서 추진의사를 거듭해 밝혔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뺀 자리에 ‘DMZ 평화공원’을 넣었다.

‘DMZ 평화공원’은 남북관계 진전을 도모하는 박근혜 정부의 ‘최선이자 마지막 정책과제’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건 박 대통령은 북핵 정책목표와 관련해선 사실상 제 자리 걸음만 하며 단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핵(核)’에 대한 북한의 선제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의 ‘병진노선’과 타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 3000’이란 평가까지 받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남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브랜드’는 ‘DMZ 평화공원’ 구상이 유일하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통해 북한과 논의하고자 하는 핵심의제도 ‘DMZ 평화공원’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남북한은 ‘북핵(北核)’을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했지만 서로가 결론내기 어렵다는 점만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2차 접촉의 중심의제는 ‘DMZ 평화공원’ 쪽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으로선 ‘북핵’을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은 현실에서는 ‘DMZ 평화공원’을 자신의 대북정책 업적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추진할 적기(適期)도 집권 3년차 전이라야 가능하다. 따라서 2차 고위급접촉에서 이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라도 나와야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이 시기를 놓치고 미뤄질 경우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여의치 않다. 북한으로선 집권 말기에 접어든 권력과 거래를 해야 할 동기부여가 약하다. 또 설사 집권 말기에 ‘DMZ 평화공원’에 기본합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처럼 차기 정권에서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또 ‘DMZ 평화공원’과 ‘서해평화협력지대’는 구상이나 사업의 성격이 비슷하다. ‘바다’냐 ‘육지’냐의 차이만 있지 해당지역에서 남북한 모두는 자신의 군사력을 뒤로 물려야만 가능하다. 다만 ‘DMZ 평화공원’은 추진단계에서 미국과 중국, 유엔(UN)의 보증을 얻어낸다는 차이점은 존재한다.

北 ‘서해평화지대 카드’, ‘DMZ 평화공원 협상카드’이자 ‘북 인권 거론’ 견제용

이러한 상황이 북한으로 하여금 ‘서해평화지대’를 들고 나오게 한 배경이다. 북한은 박 대통령이 유엔기조연설을 통해 ‘DMZ 평화공원’ 구상을 밝힌 이틀 후인 지난달 26일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을 통해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정치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지 않고 어떻게 분계선지역에 평화공원을 건설할 수 있겠느냐”며 “10.4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문제부터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남한 쪽의 정치적 갈등까지 겨냥한 다목적의 정치 선전적 포석도 있겠지만 1차적인 목적은 ‘DMZ 생태공원’이 남북한 협상의제로 나올 때를 대비해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려는데 있다. 여기에 더해 ‘서해평화협력지대 카드’는 박근혜정부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데 대한 강력한 ‘견제 카드’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가 ‘인권문제’를 꺼낸 것은 지난 2년 가까이 북핵문제와 대북관계에서 진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꺼내든 다목적의 ‘압박 카드’였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북한 인권문제를 대북 정책과제로 설정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인권법’ 처리를 정치권에 주문했고 이와 연계해 탈북자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도 사실상 용인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우리 쪽의 ‘인권문제’ 제기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북전단 살포 등에 대해선 물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 마땅한 대응책 마련이 어려웠다.

그러면서 ‘DMZ 평화공원’과 맞물려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쥐기 위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수면 위로 올린 측면이 강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NLL 포기’로 규정해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사안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최근 연일 관영 매체를 동원해 6.15선언과 10.4선언의 전면적 이행을 촉구하면서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2차 고위급접촉을 앞두고 ‘서해평화지대’를 이슈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서해평화지대’는 ‘DMZ 평화공원’과 관련해 협상력으로 작용한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대북협상의 핵심카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취해진 금강산관광 금지와 5.24조치를 활용하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는 남북관계를 6년 전 금강산 관광금지가 취해지지 전 상황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보는 북한으로선 이에 만족할 가능성은 낮다. 특히 박 대통령의 ‘DMZ 평화공원’과 맞물리는 상황이라면 더할 것은 분명하다. 이에 북한이 ‘서해평화지대’를 내건 것은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더 큰 양보를 얻으려는 목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해교전과 남북한 군사접촉까지의 과정을 보면 북한이 의도적으로 국면을 조성한 정황까지 잡힌다.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2차 고위급접촉을 이달 말이나 11월초에 하자는 제안을 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지 3일 만에 북한 함정이 서해 NLL을 침범했다.

또 해군과 교전이 벌어진 당일에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긴급전통문으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단독접촉’을 제안했고 그 과정을 거쳐 열린 남북한 군사접촉이 열렸다. 여기서 ‘서해평화지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차 고위급접촉에 앞서 ‘서해평화지대’ 공세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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