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빚내서 집 사라더니..집 팔아서 대출금 갚아라

[폴리뉴스 김종화 기자] 경기(景氣)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한 불안감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내수가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다시 살아날 듯 싶다가도 금새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다시 주저앉는다. 폴리뉴스는 지금의 위태로운 우리 경제상황과 그 원인, 대책 등을 함께 살펴본다  

 

 서울 여의도에 사는 직장인 정모씨(51)는 1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데 세금을 제하면 한달에 800만원이 통장에 찍힌다. 생활비와 자녀학비로 700만원이 나가고 100만원이 남지만 대출금을 갚고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1억2000만원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고, 주택담보대출 2억원을 낀 8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와 정기예금 4000만원이 있다. 현재 정씨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데 노골적으로 정씨에게 퇴직을 신청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정씨는 최근 한 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와 노후대책에 대해 상담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소득의 대부분이 교육비 등으로 쓰여 추가로 투자상품 등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유자산을 처분해 노후자금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우선 아파트를 처분해 대출금을 상환하고 다소 적은 규모의 집으로 이사하고 나머지 자금으로 월지급식 펀드 등에 투자하라고 친절히 상담해줬지만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마 퇴직 압력을 받고 있다는 말을 못하고 이대로 버텨야 할지 연봉이 적은 회사로라도 옮겨야 할지 고민중이다. 지금 씀씀이로는 자신의 연봉이 줄어들면 가족들의 생활도 쪼그라들게 뻔해서다. 이래저래 정씨의 하루는 무겁다.

그나마 정씨 정도 형편되는 사람도 드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파는 것도 녹녹치 않다.

정씨의 경우는 빚이 집값의 4분의 1 정도지만 빚이 집값이 절반을 넘는 가구도 부지기수다. 남은 빚이 적다면 오르지 않는 아파트값이지만 팔아서 적은 집으로 옮기고 남는 자금이라도 생기겠지만 남은 빚이 많다면 집도 잃고 빚도 고스란히 남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후준비는 정씨처럼 그나마 집이라도 한 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집없는 전세생활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최근 부동산114의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값은 3억3849만원으로 지난해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연간소득 5682만원의 5.96배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1.09%였지만 전세값 상승률은 4.86%였다. 1년전보다 8.3%(2584만원), 2년 전보다는 21.9%(6082만원) 올랐다. 도시근로자들은 한푼 안쓰고 꼬박 6년을 모아야 서울 시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고, 2년 뒤면 1년치 연봉 이상을 보태야 재계약을 할 수 있는 현실인 것.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은 월평균 292만원으로 전년보다 1.3%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2.9%를 기록했던 2011년 이후 3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전세 재계약 위해, 차라리 사는 집을 사고자 대출을 받는 사람이 늘었다.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생활비 감당도 힘든데 소득은 늘지 않았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야만 집을 살 수 있고, 전세값도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유모(36)씨는 "부부가 합쳐 연봉이 7000만원을 넘지만 모을 수 있는 돈이 없다. 지난해 말 전세값을 1억원을 올려주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재계약했다"며 "대출을 받아 집을 살까말까 고민도 했지만 전세 구하면서 얻은 빚도 남았는데 빚을 또 얻는 것이 엄두가 안났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다니는 직장인이 이러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은 어떻겠는가. 결국 빚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089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고, 올 들어서도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여전하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올 1월말 국내은행의 가계대출채권은 519조원이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65조7000억으로 1월에만 1조6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은 지난해 4분기 이후 가파른 증가세다. 지난해 4분기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은 20조4000억원 늘었는데, 증가분의 88.7%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연체율도 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0.64%에서 한 달새 0.07% 오른 0.71%를 기록했다.

주택매매시장을 살려 경기를 부양해보겠다던 정부의 정책방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대출을 알선해가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노력했던 정부는 뭇매를 맞고 있다. 빚내서 집사라고 권했지만 있는 집마저 팔아 규모를 줄이고, 대출금부터 갚아야 살 수 있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민간연구기관 관계자는 "빚내서 집 산 사람들이 원리금 상환 부담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앞으로도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어 정부가 기대했던 소비진작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부동산 부양책이 나름 효과를 거두던 시절의 추억에 더 이상 젖어 들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경기 부양은 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여러가지 지표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의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모두 알고 있다. / 김종화 기자 justin@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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