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의 결별 위협에 무릎 꿇은 여당, 野 “대통령에 끌려가는 여당”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회동을 가졌다[사진=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회동을 가졌다[사진=청와대]
[폴리뉴스 정찬 기자]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16일 모처럼 만에 만나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박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을 살갑게 맞이했고 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을 향해 최대한 몸을 낮췄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의 건으로 당청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낳았지만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는 당청 간의 불상사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화기애애했다. 마치 ‘유승민 사태’가 이날 당청화합의 접착제가 된 것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박 대통령은 회동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의 말과 건의를 경청했고 지도부 회동 뒤엔 김무성 대표와 따로 20여분 가량 만나 긴밀하게 대화를 나눴다. 김 대표의 전언에 따르면 지도부 회동 때의 이야기 주제와 다른 얘기를 좋은 분위기에서 나눴다고 했다. 이전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불협화음으로 치닫던 당청관계가 원유철 원내대표의 표현처럼 ‘찰떡화합’의 관계로 전환된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찰떡 화합’은 김무성 대표가 누차에 걸쳐 주창해왔던 ‘수평적인 당청관계’, ‘건강한 여권내 권력견제 기능’을 포기한 대가란 것이 회동 곳곳에서 묻어났다. 박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표현했고 김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한결같이 ‘충성’을 서약하는 자리처럼 비쳐졌다.

박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게 “국민 중심의 정치를 꼭 이루어서 국민 중심의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모범을 이번에 잘 보여 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은 여당을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의 면모였다. 지난 6월 25일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질책하던 말의 연장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당부에 김무성 대표는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 우리가 당에서 책임지는 그런 자세로 같이하도록 하겠다”고 자신은 박 대통령과 ‘한 몸’이라는데 방점을 찍으며 수직적 당청관계의 품에 안겼다.

비박계로 분류됐던 원유철 원내대표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대통령님 선거운동 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코피 흘린 얘기를 했는데 이제 원내대표가 돼서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데 코피를 흘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하면서 비박계를 향해 선거 때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고 힐난한 것을 염두에 둔 말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원 원내대표는 “당청 간에 찰떡 같이 화합을 해서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고 당청 간에 소통과 협력으로 앞으로 많은 일을 하자, 대통령님 잘 모시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잘하자고 다짐했다”는 말까지 했다. 이 말을 들은 박 대통령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 하나”고 반색하며 “말만 들어도 든든하다”고 답할 정도였다.

지난해 7월 전대로 출범한 김무성 1기 지도체제가 그토록 결기에 차게 ‘수평적 당청관계’를 외쳤고 그 여파로 ‘유승민 정국’까지 겪었지만 그러한 흔적을 이 자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김무성 2기 지도체제 스스로가 보다 적극적으로 ‘당청 수직관계’를 반기는 듯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유 전 원내대표 사퇴권고안을 박수로서 추인하면서 이미 예고됐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만나 국정운영과 관련해 국민을 대신한 ‘쓴 소리’는 고사하고 대통령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한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박대통령의 정치적 결별 위협에 무릎 꿇은 새누리당

이는 곧 박 대통령의 여권 내 리더십이 확고부동해졌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 6월 25일 박 대통령이 자신이 창당한 새누리당과의 결별도 불사하겠다는 정치적 위협 앞에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다수가 무릎을 꿇었다는 의미이며 차기 총선 또한 박 대통령을 ‘간판’으로 해 전열을 정비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보인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다 ‘유승민 정국’이란 당청갈등까지 겹치면서 위태로워 보였던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오히려 ‘유승민 정국’을 타고 부활한 셈이다. 여권 내에서의 원심력으로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화될 듯 했지만 이를 막아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진 30%의 강력한 지지기반의 힘이 그 원천이다. 박 대통령과 대립해선 차기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이 김 대표를 비롯한 여권 지도부는 박 대통령과 ‘한 솥밥 식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도록 했다. 나아가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독기 앞에 새누리당은 줄곧 강조했던 ‘당청 수평관계’를 포기했고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여권진영의 ‘개혁적 보수’마저도 쳐내는 선택을 했다.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비박계는 유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면서 ‘보수개혁의 가치’도 함께 떼 냈다. 그러면서 과거의 보수적인 경제정책 기조를 청와대-친박-비박이 공유하는 상황이 됐다.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의 최고 이슈가 8.15특사 범위에 재계의 요구에 따른 재벌총수 포함문제로 좁혀진 것은 이를 반영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제민주화’와 ‘증세’, ‘재벌개혁’의 목소리를 내온 유 전 원내대표의 ‘빈자리’가 커 보였다.

유 전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하면서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박 대통령은 이를 두고 ‘배신의 정치’, ‘자기 철학의 정치’라고 비난한 것을 상기하면 유 전 원내대표의 여권 내 입지가 매우 협소했음도 청와대 회동에서 드러났다. 김 대표나 원유철 원내대표 모두가 ‘증세’와 ‘경제민주화’ 반대론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 ‘찍어내기’의 공로를 인정받아 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지난 4월 16일에 이어 두 번째지만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비로소 박 대통령이 그를 여권 내 2인자로 대우한 것이다. ‘유승민 정국’ 속에서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유 전 원내대표와 정치적 결별을 한데 대한 ‘선물’이다. 김 대표로선 여권 지지층의 핵인 박 대통령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러나 이 ‘선물’은 김 대표 자신의 정치적 명분을 훼손하면서 얻은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반대’, ‘당청 간의 건강한 견제와 균형’, ‘의회민주주의 구현’ 등의 정치적 명분이 훼손된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복원이 장기적으로 김 대표의 대권행보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유승민 정국’ 속에서 박 대통령 호위무사를 했다는 정치적 이미지로 인해 김 대표는 당 안팎의 공격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번 무릎을 꿇은 김 대표가 다시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기도 어렵다. 정치적 대표성이 상당부분 훼손됐다. 또 ‘유승민 정국’ 속에서 박 대통령과 ‘한 몸’이 되겠다는 선택을 한 순간 향후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기회가 온다하더라도 행보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김 대표의 여권 내 2인자 자리가 안전하게 보장된다는 보증도 없다. 박 대통령의 신뢰가 지속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또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여권지지층의 차기에 대한 여망이 어디로 이동할지도 모르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대통령에게 끌려가는 거대여당 모습 씁쓸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회동이 ‘당청 수직관계’의 상징처럼 읽혀지는 것에 대해 “대통령에게 끌려가는 거대 여당의 모습만 보여 씁쓸했다”고 평가했다.

유은혜 대변인은 이날 국회 현안브리핑을 통해 “집권여당을 진압한 대통령의 위세에 여당 지도부가 몸을 잔뜩 낮추는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청이 하나’라고 강조했고, 여당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화답했지만 갈등의 흔적을 지우려는 연출된 웃음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에 할 말은 하는 여당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과의 독대에 대해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청와대의 하명만 듣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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