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 한마디에 집권당 원내대표가 쫓겨나는 대한민국, 개헌하면 바뀔까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제헌헌법 공포일인 1948년 7월17일 중앙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제헌헌법 공포일인 1948년 7월17일 중앙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폴리뉴스 안병용 기자] 격동의 현대사로 불리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어느덧 70년에 이르렀다. 짧지 않은 역사 속에 개헌은 제헌헌법 이후 총 9차례가 있었다. 최근에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로 다시 한번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찍어내기’로 그만뒀다. 국회의원이 뽑은 원내대표가 행정부 수반의 말 한마디로 그만 둔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헌법 1조 1항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명한명이 하나의 헌법기관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이 헌법을 지키지 못해 그만둔 아이러니한 모양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는 주장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난 10일 비박(박근혜)계인 인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와 관련해 “70년간 쌓이고 쌓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지금과 같은 일(유승민 사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사회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에 개헌을 해서 권력구조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권력을 지배하는 정치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 개헌론자의 공통적 생각”이라면서 “권력이 중심이 되는 정부는 6공화국 박근혜정부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늦어도 내년 있을 총선까지 개헌을 이뤄내고 개정된 헌법을 바탕으로 2017년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개헌의 시한을 밝혔다. 이 의원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개헌 전도사’로 불린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유승민 전 원내대표 역시 개헌론자다. 유 전 원내대표는 “개헌 논의 못할 것 없다. 논의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면서 “다만 우리 당은 개헌 얘기가 나오면 친이, 친박을 생각해서 문제다. 그것은 건전하지 못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같은 당 정두언 의원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군정은 종식됐지만 오히려 왕정은 종식된 것 같지 않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제왕적 통치를 하고 있다”면서 “권력을 국민이 위임한 공공재로 생각하지 않고 사유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개헌 발언을 꺼냈다가 지난해 청와대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나 길고, 유능한 대통령에게는 5년이 너무 짧다”고 했다. 또 “정기국회 후 개헌 논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곧바로 실수라며 사과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청와대는 “당 대표가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개헌모임)’ 야당 간사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고 물러난 점을 들어 “헌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박 대통령을 위대한 영웅으로 비유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위대한 영웅 한 사람에게 맡겨서 ‘네가 결단해 우리는 국무회의에서 받아만 적을 게’ 이 같은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면서 “누구 한사람을 가짜로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 거기에 목을 매는 건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꼬집었다. 우 의원은 “이제는 집단 지성으로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면서 “올해 안에 국회개헌특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당 신기남 의원도 개헌 움직임을 재촉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 등이 항상 개헌 이야기만 나오면 때가 아니다 그런다. 대통령이 개헌의 장애물이 아니라 협력자가 돼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로 지금 대통령으로는 안 되겠고, 2017년 (대선에서) 개헌을 공약할 대통령이 선출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원혜영 의원은 “최근 대통령과 여당, 또 정부와 국회의원을 보면서 왜 이렇게밖에 안 될까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제의 해법은 근본적인 데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7일에는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개헌론 카드를 꺼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경축식에서 “정치에 대한 신뢰가 최악인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순 없다”면서 “이젠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헌법은 시대를 투영하는 거울이고, 역사와 시대의 요구가 바뀌면 헌법을 그에 맞게 바꾸는 게 우리의 의무”라며 개헌론을 언급했다.

정 의장은 “실제 개헌이 20대 국회 이후에 이뤄지더라도 개헌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때를 놓치면 개혁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 논의의 물꼬를 크게 열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87년 체제를 넘어야 하는 구조적 전환기에 국가적 과제와 비전이 헌법에 구현돼야 한다”며 “헌법을 제대로 바꾼다면 국가를 도약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요구가 안팎으로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28년 된 헌법, 이제 바꿀 때가 됐나?

현재의 헌법은 1987년 ‘민주화’의 결과물이다. 당시로부터 28년이 지났다. 정치권이 개헌을 요구해온 밑바탕에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제왕적 권력’이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제왕적 권력과 강화된 국회의 입법권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국가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헌법상 대한민국 대통령은 거대한 공무원 조직을 통솔하고 예산편성권과 법안발의권도 갖고 있다. 검찰 등 사정 권한도 막강하다. 국회는 ‘수평적 관계’를 외치지만 여당은 언제나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수직적 관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국회 내 타협의 여지는 줄어들고,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과거와 달리 야당 동의 없이는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이마저 정부와 여당의 요구로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헌론자들은 권력 집중 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의 정치 지형상 현행 대통령제는 이제 효용이 다했다고 말한다. 대안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를 내놓는다. 이들 제도는 주요 권력기관 및 각료 인사권과 예산 등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독주를 견제하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다. 또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정파간 극심한 대립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만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현행 선거제도를 함께 바꿀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현행 양당제가 유지되는 한 단독 과반을 얻는 쪽에서 수상과 장관 다 나오는 제왕적 총리의 승자독식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를 패키지 개헌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헌법에 보장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이른바 ‘책임총리’가 대통령과 원만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개헌의 필요성을 헌법(제도)이 아닌 운영(사람)이 잘못됐다는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집권당 원내대표가 쫓겨나는 상황에서 개헌한다고 책임 정치가 살아날까? 개헌을 하면 ‘제왕적 대통령 권한’이 ‘제왕적 총리 권한’로 바뀌지는 않을까? 개헌 논의에 앞서 뒤틀리고 왜곡된 기존의 정치 운영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실효성 있는 해법은 아닐지 근본적인 자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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