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과 세월호 진도군대책위원들이 지난 24일 오후 팽목항 방파제 난간 등에 묶어둔 추모 리본과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과 세월호 진도군대책위원들이 지난 24일 오후 팽목항 방파제 난간 등에 묶어둔 추모 리본과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혁신에 대한 사전적 해석이나, 혁명에 대한 이념적 배경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말하려고 한다. 혁신은 어떤 가치를 새롭게 하는 것이고, 혁명은 어떤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다. 새누리당은 보수 혁신을 외치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당을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2016년 4월에 있을 20대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 해도 내세우는 표어는 보수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새누리당을 혁신하자는 것인데, 그 끝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 보자는 뜻이 될 것이다. 이것은 새정치민주연합도 대동소이하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내 놓은 제6차 혁신안을 보면, 민주적 시장경제 체제, 선 공정 조세, 후 공정 증세, 복지국가, 가계 소득 증대를 통한 국가 경제 성장을 당론으로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혁신이 어떤 가치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라면 혁명은 그 가치를 바꾸는 것이다.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로는 대한민국의 적폐와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으니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바꿔보자라는 것이 혁명이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바꿔보자는 소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새누리당 혁신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 두 분에게 1987년 10월 29일 전부 개정된 제9차 헌법개정안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 헌법이 재정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는가를 아는지 묻고 싶다. 당시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간에 합의한 헌법 전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혁신이라는 말보다 헌법 근본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옳다. 김무성 대표는 관훈토론회에서 보수혁신은 부패를 근절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공산당의 반부패 노력과 새누당의 혁신은 운동 같다”라는 말도 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께 우리나라 헌법 전문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며 ...”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으로 이끈 610 국민 대항쟁과 그 결과로 얻어낸 629 선언에 이어 1987년 개정된 이 헌법은 분명히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도대체 지금 와서 무슨 혁신 타령인지 알쏭하다.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지금, 과연 우리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길래 지금 또 혁신한다는 건가?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518, 610 국민 대항쟁 끝에 만들어진 우리 헌법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헌법 전문에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평화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이라는 명칭이 바뀔 동안 빈부 격차만 더 벌어졌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김대중 대통령 정부 5년, 노무현 대통령 정부 5년 10년을 집권하는 동안 우리 헌법 전문과 119조 ➁항 경제민주화 조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길래 지금 혁신한다고 하는가? (헌법 제119조 ➁항 국가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 119조 2항은 개헌 협상 당시 노동단체들이 요구한 이익 균점권 대신에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도록 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10년 동안 여당을 하면서 어떻게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불공정한 거래가 관행처럼 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지금 무엇을 혁신하고자 하는가? 

특히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헌법 전문에도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며”로 표현하고 있고,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8조 4항에서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위헌 정당의 해산 요건으로 삼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해 가장 규범이 되는 해석은 과거 서독 연방헌법재판소의 견해인데,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는 기본법에 구체화되어 있는 기본적인 인권, 특히 생명과 그 자유로운 발현을 위한 인격권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성, 행정의 합법성, 사법권의 독립, 다수당 원리의 합법적인 반대당의 구성권과 행동권을 가지고 모든 정당의 기회균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혁신적인 것이 있는가?

노태우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군정이 종식된 후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임기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새누리당이 12년 반, 새정치민주연합이 10년을 집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인간 생명과 인격의 존엄성에 대해 존중받고 있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원 민간인 도청 의혹 등 이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만의 탓인가? 특히 군사권위주의 정부가 몰락한 이후 정말로 세월호의 원인이 되었던 관피아가 다른 정권에서는 없었으며,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정부의 비밀주의로 메르스를 확산시키고 국민의 생명을 잃게 한 책임이 박근혜 정부 이 외의 다른 정부의 책임이 없는가? 질병관리본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것인가? 국정원의 민간인 도청사건 역시 과거 민주정부라고 자처하던 정권하에서는 그런 불법 사실이 없었는가?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는데 혁신은 무슨 혁신인가!

부정부패만 없으면 대한민국이 새로운 나라가 되는가!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가 부정부패 때문인가? 새누리당은 정말로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제민주화의 사회적 합의주의 제도화를 통해 시장경제 치제를 확립하며 조세, 주거, 교육, 일자리, 의료, 노후 등에 관한 복지국가 당론을 확정하고 민생복지 정당을 지향한단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때 손도 대지 못했던 경제민주화를 야당의 입장인 지금 과연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전제가 있다.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하면 부정부패를 일소할 것이란 말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집권하면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새누리당은 언제 부패척결을 위해 자정 노력을 한 적이 있는가? 새누리당 내부에서 고발하고 스스로 반성한 적이 있는가? 여당이니 지금도 지역구민, 동창, 친인척들의 불의한 민원을 행정부에 청탁하고 있지는 않는가. 새누리당이 정말 혁신하려면 혁신위가 정부나 대기업에 청탁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이 있는지, 행정부와 대기업에서 신고하도록 요청하는 데서부터 혁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말로 민생정당임을 내세우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던 열성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 쟁취를 위해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삭발 농성을 하는 것이 어떤가. 그것이 민생정당으로 가는 혁신의 시작이다. 화려한 수식어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혁신안을 내놓기 전에 무수한 희생을 통해 쟁취한 우리 헌법이라도 제대로 지키자는 노력이 새누리당과 새정연합의 혁신이 아닐까.

박영식 약력 

■ 1948년 대구 출생
■ 유성환 전 의원 보좌관
■ 통일국시론 원고 작성으로 구속
■ 박찬종 전 의원 정책실장
■ 신정당 정책실장
■ 영국 NEXT SOCIETY 연구소 동북아시아 담당 연구원
■ 현 폴리뉴스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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