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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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인천을 마지막으로 현 정부의 역점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이 모두 문을 열었다. 지난해 9월 대구(삼성)를 시작으로 경기(KT), 대전(SK), 광주(현대차), 충북(LG), 부산(롯데), 충남(한화), 전남(GS), 인천(한진) 등 대기업이 전국 시·도를 하나씩 맡아 벤처·중소기업을 돕는 민관 협력체를 만들어 냈다. 대통령도 전국 17곳 중 15곳의 센터 개소식에 들를 정도로 의욕을 드러냈다. 대기업과 벤처·창업기업이 섞이고, 지역과 중앙이 섞이고, 산학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델이다.

창조경제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창업벤처기업이 대기업의 기술과 자금, 경험을 공유하게 한 것은 새로운 시도로서 높이 살만하다. 청와대에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해 “소가 몸을 비비려고 해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그런 뜻으로 읽힌다. 더욱이 지역특성과 지역 발전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의 경험과 성과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결과가 흥미롭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긍정적 평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세계 어디에도 정부 주도, 대기업들의 자선, 창업기업들의 의존으로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이 돈을 대고, 정부가 행정력을 지원해 벤처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칫하면 벤처·창업기업들이 정부와 대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대기업에 길들여짐으로써 스스로의 도전정신이 상실될 수 있다. 창업기업이 스스로 서지 못하고 정부와 대기업에 기대기 시작하면 더 이상 벤처가 아니다. 마치 야성을 잃어버린 동물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벤처·창업기업들은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에서도 개척정신을 통해 꿋꿋하게 생존해왔다. 정부와 대기업은 벤처·창업기업들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창조적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새로운 콘텐츠와 아이템이 양산되고,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보조적인 역할이어야지 주도해서는 안 된다. 

둘째, 대기업이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중심에 선 것은 모순이다. 벤처와 창업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와는 엇박자다. 

대기업이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한 바를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대기업은 벤처의 성장을 막고, 중소기업의 업종을 침해하고, 창업기업의 아이디어와 인재를 탈취하는 등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기업은 큰 몸집과 잘 짜여진 조직의 안정된 힘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늘리고, 몸집을 불려왔고, 반대로 벤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둘은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영국의 테크시티, 중국의 중관춘이 대기업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대기업이 나서고, 대기업이 중심이 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챙겨가는 장으로 전락하거나,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에 장단을 맞춰주는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관 주도의 경제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마치 새마을 운동, 70년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듯이 정부가 주도해 지역을 배분하고 대기업에 떠넘긴 형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정부의 선도적인 투자, 민간부분의 투자가 어울려서 잘 될 것 같지만, 관 주도와 대기업 중심으로는 창조역량을 키울 수 없다. 지금의 혁신센터는 대기업이 손을 떼거나 정권이 바뀌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넷째, 벤처 육성과 창업 생태계는 지금의 왜곡된 경제 생태계를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벤처가 대기업의 등쌀에 치이지 않는 생태계. 벤처의 기술과 인력, 아이디어가 어떤 방식으로건 탈취당하지 않는 생태계. 벤처에 뛰어난 인재가 모이도록 하는 생태계. 1인 창업과 스타트업이 봇물처럼 터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생태계. 실패해도 패자부활이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대기업의 자선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창고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휴렛팩커드, 애플, 구글, 어도비 등 내로라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허름한 차고에서 창조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키워나갔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영국의 테크시티는 2000년대 초반 창업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입주하면서 형성됐고, 버려진 창고와 오래된 공장이 즐비한 슬럼가에서 창업과 성공의 꿈을 키웠다. 테크시티는 지금 영국의 실리콘밸리, 혁신의 아이콘, 창업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중관춘은 레이쥔(휴대폰 제조업체 샤오미 회장)이 작은 오피스텔에서 좁쌀죽(샤오미저우)을 먹으며 회사명을 고민하고, 알리바바가 작은 호텔방에서 인터넷검색 기술제공업체를 시작한 곳이다. 중관춘에 있는 처쿠(창고)카페 등 23개의 창업카페에서는 사업계획을 짜는 예비 창업자들이 붐비고, 투자자와 멘토들이 한데 섞여 새로운 창업을 꿈꾸고 있다.

정부가 창업의 불씨를 당기고, 여건을 마련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테크시티와 중관춘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을 동원해서 만들어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과연 실리콘밸리, 테크시티, 중관춘의 창고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단순히 벤처·창업기업 몇 곳을 지원해 치적으로 삼고, 대기업은 동반성장과 상생이라며 자기 실적을 과대포장하는 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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