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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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님께서 “지난 70년 동안 이 나라는 친일파, 변절자, 독재자의 조국이었다.” 라는 발언을 하셨다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말은 “그년”이 “그녀는”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라는 해명과 전혀 다른 해명을 하셔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조선을 이어 받은 것이 아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친일파와 변절자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내세워 미국과 합작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했으므로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했고, 5월 31일 국회를 구성하여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했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부정의 하고 불의한 권력을 거부하는 국민의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휴전하는 등 대한민국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419 민주혁명이 성공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발생했지만 민주 투사들과 야당은 시민들과 함께 끊임없이 저항했다. 군사독재 치하에서도 5.18, 610 국민대항쟁으로 결국은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친일파, 변절자, 독재자들이 통치하던 역사가 아니라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수많은 국민과 정치인들이 희생하고 헌신한 역사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종식한 뒤로 전 세계적으로 100개 이상의 신생국이 태어났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싱가폴이나 이스라엘도 있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 1980년대 후반 한 때 필리핀에서도 민주혁명이 일어나는 듯했으나  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민주화도 경제성장도에도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2차 세계 대전 후의 신생국은 아니지만, 한 때 세계 순위 5~6위로 부강한 나라였으나, 1977년 쿠데타로 군사독재가 시작되어 민주화도 실패하고 ,경제적으로도 디볼트에 빠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최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있는 듯 보인다.

대한민국의 특징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독재에 저항하고 독재 권력이 물러날 때까지 그 저항운동에 온 국민이 동참하는 역사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희생이 따르지만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종걸 원내대표께 묻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정부도 변절자나 독재자로 볼 수 있는가? 518 광주 민주화 투쟁과 610 국민 대항쟁의 영향으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던 것이 아닌가? 419, 518, 610 항쟁을 통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생각했기에 모든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고 있다.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 냈지만 질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 많다.

최근에 와서 우리 국민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는 조짐이 두 가지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에서 나타나듯 과거 국민의 대표자들인 국회를 무시하고 무용지물로 만들던 시대를 연상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 입법권을 침해하여 삼권분립을 훼손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우리 헌법 제40조에는 분명히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에 입법권이 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는가 하면,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여당의 원내대표를 해임시켰다. 이것을 본 국민들은 비로소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투명성과 공평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균형성장이나 적정한 소득의 분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 살리자고 매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왜 경제를 살려야 하고, 누구 좋으라고 경제를 살리자고 하는가?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를 살리면 국민 전체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보다, 무조건 경제를 살리자고 하는 것 같다. 경제를 살리면 그 효과로 어떤 균형 성장을 이루고, 어떻게 적정한 소득분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사내유보금은 2009년도 1분기에 271조1,000억 원 이던 것이 2014년 1분기에는 515조9,000억 원을 넘어섰고, 통계청의 2012년‘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상위 20%의 연간 소득은 1억65만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소득 3천만 원 미만 가구가 전체의 40%를 넘어섰으며, 6명 중 1명은 연간 소득이 998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민주주의란 공동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한 사회 내에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사회라고 볼 수 없다. 특히 가난이 단지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게 되는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CLASS가 형성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득권 계층과 비 기득권 계층으로 분리되고, 이것이 고착화되면 바로 최근 한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다. 만약 이종걸 새정연 원내대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표현이 잘못된 것이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의 성격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평가와 그들의 문제점에 대한 심판이었고,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민주화 운동으로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으나 실패했다. 민주화 운동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70년 이전에도 동학농민혁명, 상해 임시정부,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이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희생하셨고, 그 뒤를 이어 419 민주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민주화 운동은 이데오르기 투쟁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성을 위한 우리 삶의 민주화 운동이다. 일부 종북 세력들은 이틈을 파고들려고 한다. 만약 우리 정치권, 여야 할 것 없이 분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 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갤럽의 한 조사에서 빈부격차의 원인으로 65%가 환경(부모의 재력, 가정환경)이라고 답했고, 30%가 개인의 노력 문제라고 답했다. 10명 중 9명은 빈부격차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부자에게 중과세를 해야 한다가 74%, 반대가 21%다. 이 부분은 우리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민주화 운동은 경제 민주화 운동과 민주적 역사의식이 바로 서 있지 못한 정치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새로운 정치 민주화 운동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경제 민주화 운동을 좌파운동 이라거나 우리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이종걸 원내대표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다수의 국민이 외면하고 일부 기득권 계층만을 위한 조국이 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여야 정치인들, 언론, 지식인들 모두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박영식 약력 

■ 1948년 대구 출생
■ 유성환 전 의원 보좌관
■ 통일국시론 원고 작성으로 구속
■ 박찬종 전 의원 정책실장
■ 신정당 정책실장
■ 영국 NEXT SOCIETY 연구소 동북아시아 담당 연구원
■ 현 폴리뉴스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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