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키기에 매달리는 정치개혁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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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제공>

비례대표 축소 여부가 여야 정치개혁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비례 기준을 2대 1로 결정함에 따라 이에 맞추어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새누리당에서 농어촌 지역구 의석을 살리기 위해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입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동안 비례대표 확대 필요성을 거론해왔던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비례대표를 늘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축소하자는 이같은 주장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축소하자는 주장은 한마디로 지역구 의원들의 밥그릇 지키기이고 정치개혁에 반하는 것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인구비례에 따라 새로운 선거구 획정이 필요하다면 지역구 간의 조정을 통해서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지역구가 통폐합의 대상이 되는가를 자신들끼리의 문제이다. 일관된 원칙에 따라 자신들끼리 획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중앙선관위 산하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맡기고 그 결정에 따르면 될 일이다.

이렇게 김무성 대표 등 여당의 지도부와 지역구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 밥그릇은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고 나선 것은 낯뜨거운 행동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여기에는 지역구 의석을 줄일 경우 특히 농어촌 지역구를 줄여야 하고, 이는 여당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치적 셈법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측면에서 보거나 여당이 들고 나온 ‘지역구 유지-비례대표 축소’ 주장은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反)개혁적 움직임이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사회환경 속에서 비례대표 의원들이 할 역할은 적지 않다. 지역구에서의 경쟁을 거쳐서는 현실적으로 국회에 들어가기 어려운 전문가들이나 사회적 약자 계층의 국회 진출을 위해서 비례대표제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가 갈수록 다양화. 복잡화되는 환경에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도 비례대표의 숫자는 일정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들의 밥그릇만은 지키겠다는 집착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비례대표 축소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야당의 책임 또한 크다. 애당초 비례대표 확대를 거론했던 야당의 입장이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했던 데에는, 이제까지 야당조차도 비례대표제를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해오지 못했던 책임이 크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비례대표 의원이 그래도 20명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문가도 희소하고 외교전문가, 남북관계 전문가 등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복지 전문가도 부족하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비례대표 숫자는 늘었건만 국정의 전략적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충원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대신 비례대표는 계파정치의 온상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비례대표 공천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못한채 당권을 가진 계파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낙점되었고, 결국 전문가나 사회적 약자 계층의 영입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계파정치 강화의 도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19대 총선에서의 비례대표 공천이었다. 야당은 비례대표 확대 필요성을 거론하기 이전에 이제까지의 비례대표제 운영에 문제가 있었음을 반성하고 투명한 공천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부터 다짐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이같은 문제가 비례대표를 아예 축소해도 좋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이유는 되지 못한다. 우리 정치환경에서 지역구 의원 중심의 국회구성이 가질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의 선거운동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도 국회에 들어가 전문적 능력을 살리는 의원들도 많이 필요하다. 여당의 느닷없는 비례대표 축소론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자기들 밥그릇에는 손대지 말라고 버티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개혁을 입에 담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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