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주)엣나인필름 제공>
▲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주)엣나인필름 제공>

[폴리뉴스 오현지 기자]영화 ‘춘희막이’가 느끼는 부담감이 클지 모르겠다. ‘워낭소리’(2008)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에 이어 ‘춘희막이’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흥행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춘희막이’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거쳤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춘희막이’는 관객에게 ‘메시지’ 이상의 것을 전달한다. 아직 많은 관객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 ‘춘희막이’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의’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같이 가자”는 명대사 외에도 ‘더 얻을 것’이 있단 얘기다. 

폴리뉴스는 영화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촬영 뒷이야기 및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영화 ‘춘희막이’의 줄거리나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막이 할머님을 큰할머님, 김춘희 할머님을 작은할머님으로 표현한다. 영화 ‘춘희막이’는 대를 잇기 위해 큰할머님(최막이 할머님)이 직접 작은할머님(최막이 할머님)을 후첩으로 들이면서 맺어진 인연을 다뤘다. 

최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박혁지 감독(오른쪽)과 한경수 피디(왼쪽)이 발언하고 있다<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주)엣나인필름 제공>
▲ 최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박혁지 감독(오른쪽)과 한경수 피디(왼쪽)이 발언하고 있다<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주)엣나인필름 제공>

▲ 영화 ‘춘희막이’에서 작은할머님이 키우시던 개를 상당히 예뻐하셨다. 감독의 눈에 개는 어떻게 비쳤는가. 

- 아쉽게 개를 좋은 집으로 보냈다고 하셨다. 큰할머님이 작은할머님과 개를 같이 돌보시는 것이 힘에 부쳐서 내린 결정이셨다더라. 떠나던 날, 개도 작은할머님도 힘들었다고 하셨다. 영화 속에 그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아 아쉬웠다. 큰할머님이 개를 보내던 날을 생각하시면서 “내가 봐도 안됐더라”고 말씀하셨다. 
개는 작은할머님과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했다. 작은할머님은 개와 편하게 대화하셨다. 저는 개를 통해 ‘가치 있는 것을 떠나 보내고 남는 것’을 담아내고 싶었다. 개는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을 웃게 한 식구였지만, (나이 듦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의 표정, 주름이 백미였다. 

- 출연자는 큰할머님, 작은할머님이다. 이름없는 촌부지만, 두 할머님이 저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상이었다. 두 분이 근사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풍족하지 않지만 좋게 사시는 모습을 담고자 노력했다. ‘느낌이 드는 화면 구성’을 프레임 안에 넣기 위해 고민했다.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은 대화가 별로 없어서 정적인 순간이 많았다. 대신 표정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특히 작은할머님의 표정에서 많은 것이 읽혔다. 
관객 역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영화를 해석하더라. 친구, 부부, 가족 등 다양한 관계를 떠올리더라. 아마 두 분의 표정에 ‘무궁무진한 것을 대입’한단 뜻 아닐까. 관객이 영화 ‘춘희막이’를 보면서 ‘스스로 사고하고 느끼길’ 바랬다. ‘춘희막이’는 확실히 주입식 영화가 아닌 것 같다. 

▲ 촬영 기간만 2년이 소요됐다. 긴 시간 ‘직접 촬영’을 고집한 이유는. 

- 개인적으로 촬영을 좋아하는 연출자라고 생각한다. 휴먼 다큐를 오래 한 편이다. 연출자가 찍으면 ‘순간적으로 나오는 동작, 표정’이 빨리 도달하리라 생각한다.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은 연세가 많아서 동작이 느리셨다. 때문에 부지런히 촬영했다. 

▲ 영화 ‘춘희막이’에서 등장하는 대사가 전부 주옥같다. 어떤 명필가도, 명배우도 범접할 수 없는 것 같다. 

- 46년에 걸쳐 만든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두 할머님은 시간의 깊이를 몸에 갖고 계신 거다. 여기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철학이 된다. 감히 흉내를 낼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이것을 연기한다면 왜곡되지 않을까. 이것이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가능한 것 같다. 
관객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약하더라도 볼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영화 ‘춘희막이’는 일상의 반복이고 연속이다. 그럼에도 관객은 두 할머님의 말 한마디, 한숨 하나, 담배 한모금의 떨림에서 느끼는 것이 있다. 이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쟁력이며 ‘극 영화’에선 찾기 어려운 영역 같다. 

▲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의 가족관계를 심도가 있게 다루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 가족 중에서 딸이 등장한다. 작은할머님이 낳으신 딸이다.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굉장히 중요하지만, 계속 그 관계로 끌고 싶지 않았다. 배경설명 없이 본다면 모녀처럼, 자매처럼, 친구처럼 보인다.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솔직히 지금도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새로운 형태의 묘한 가족,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생각뿐이다. 큰할머님과 작은할머님이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보다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고 계심이 중요하다. 오롯이 두 분만 있으면 ‘영화적 상상력’을 끌어낸다고 판단했다. 

▲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큰할머님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춘희막이’는 어떠한가.

- 작은할머님은 참 재미있다. 개가 다른 집으로 입양되고 난 후 촬영했을 때의 일이었다. 붐 마이크를 유심히 보시더니 “저거 개털 아이가?”라고 여쭤 보셔서 한참 웃었다. 
저는 작은할머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 과거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남편과 추억을 얘기하시더라. 개중에는 큰할머님이 모르시는 일도 왕왕 있었다. 한편으로 짠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신 분은 작은할머님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계실지 모르겠다. 제가 겪은 작은할머님은 그렇게 ‘바보할머니’가 아니셨다. 작은할머님의 시선을 따라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영화제 엔딩과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엔딩이 다르다던데. 

-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엔딩은 두 할머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이 엔딩이 일반 관객에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춘희막이’의 엔딩을 자물쇠 장면으로 교체했다. 영화 ‘춘희막이’는 큰할머님이 작은할머님에게 가르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자물쇠를 잠그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덧붙이자면 영화 ‘춘희막이’는 작은할머님이 조금 더 중요한 주인공이다. 작은할머님은 마치 밀당을 하는 것 같다. 작은할머님의 진심은 관객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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