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 선 김무성-비박계, 목전까지 파고드는 칼날에 무기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고동석 기자] 새누리당 친박-비박계 간의 공천 룰 줄다리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채 멈춰져 있다. 9월초 오픈프라이머리를 둘러싸고 격렬한 신경전을 주고받은 뒤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두 달여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공천특별기구 구성을 위해 김무성 대표와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 간에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번번이 양측의 입장 차만 재확인하고 돌아선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19일에도 원유철 원내대표의 중재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공천특별기구 위원장에 이주영 의원, 총괄 간사에 황진하 사무총장으로 합의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마저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앞서 김 대표는 지난 16일 당 최고위원회의서 총선 일정을 고려해 공천특별기구 대신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천관리위)를 조기 출범시켜 일정과 세부적인 룰 등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서 최고위원은 기존에 약속한 공천특별기구를 먼저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언성을 높였고, 김 대표가 자리를 박차가 나가면서 공천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김 대표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경우의 날’ 기념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천특별기구를 만들고 그 다음 총선기획단과 공천관리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순서”라며 한발짝 물러나면서 공천특별기구 구성에 탄력이 붙는 듯 보였다.

朴대통령-친박계 공천 향배가 정권 성공 인식 공유 

이런 가운데 여권 안팎에선 친박계 내부에서 공천 룰을 미리 짜놓고, 심지어 전략공천을 위한 컷오프 대상까지 정해놓았다는 후문이 새어나오고 있다. 공천룰을 당헌 당규대로 상향식 공천으로 하되, 기본적으로 당원 50% 대 국민여론 50%이라는 기준에서 지역에 따라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경선을 치르겠다는 것이 요지다.

또 하나가 우선공천제를 적극 활용해 총선 출마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청와대와 정부부처 출신의 정치신인들을 대거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당내 친박을 제외하고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진실한 사람들’인 진박들 중 상당수를 TK(대구‧경북)지역과 PK(부산‧경남) 지역에 출마시킨다는 복안이다.

당 지도부에 포진된 친박계 내부에선 내년 총선에서 계파 의원 다수를 여의도에 입성시키는 것은 이미 박 대통령의 ‘지상명령’으로 각인돼 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러 차례 국회 무능력을 지적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도 국회를 상대로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입법 지연사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도리”라며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 경제에 가중되는 어려움을 우리가 감당하기 참 힘들다.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는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대놓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야당보다 여당에 전달되는 파괴력이 크다는 측면에서 볼 때 새누리당 지도부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노동개혁 5법과 경제활성화법 처리 시한까지 명시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야당보다 여당 지도부가 먼저 긴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방식으로 박 대통령은 반환점을 도는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선 20대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공식석상에서 수차례 밝혀 왔다.

이 배경 속에 박 대통령은 내년 총선 이후 자신의 국정 성공 의지를 뒷받침 해줄 당 지도부와 '진박계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알게 모르게 당내 공천 룰 결정과 공천 받을 자기사람들을 챙기고 있다는 말들이 새어나온다. 이와 맞물려 서 최고위원을 비롯해 당내 기존의 친박들은 김무성 대표 체제를 흔들고 때로는 물밑 접촉을 통해 동조세력으로 확대하면서 공천 문제에 있어 한 친의 빈틈도 없이 전략적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div>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TK를 넘어 PK까지 떠도는 물갈이설

지난 9월 이후로 친박계는 공천과 관련된 사안이면 사사건건 공격적인 성향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한 치도 밀려서 안 된다는 의지가 묻어날 정도다. 반면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는 방어적인 측면이 강하다.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공론석상에 꺼내놓았을 때만 해도 친박계는 짜인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대응했다. 서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상현 의원은 기자들에게 돌리는 문자메시지로,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가며 여론 전(戰)을 벌이며 사실상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무력화시켰다.

윤상현, 조원진 의원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부친 빈소에서 TK물갈이론을 언급한 다음날에는 박 대통령까지 가세해 내년 총선에서 ‘진실한 사람들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오히려 야당에서 “대통령의 총선개입”, “내년 총선 이후 당을 장악하겠다는 간교한 속셈”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만약 김무성 대표와 비박계가 TK물갈이론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반발 수준이 아닌 저항으로 비쳐질 수 있는 갈등 분위기는 단 숨에 최고조로 달렸을 것이다. 비박계 의원들은 공개석상이 아닌 사석에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토로할 뿐이었다.

그나마 비판적인 속내를 드러낸 것은 김용태(서울 양천구을) 의원이었다. 그는 10일 서울 여의도 한 식장에서 기자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 고위직을 했던 분들이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출마하려는 것이라면 반드시 서울 중심, 수도권에서 현역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으로 있는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험지 출마론을 제기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의석을 지키는 동시에 하나라도 의석을 가져오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격전지, 전장을 표시하면 수도 서울이고 경기도”라고 총선 출마를 채비 중인 친박 정치신인들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 비판은 에둘러 박 대통령의 진박론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친박계의 물갈이설은 TK와 서울 강남에 이어 PK(부산‧경남)지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총리후보자였던 안대희 전 대법관, 윤상직 산업통상부장관이 부산 지역 출마를 채비하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은 25일 사하경제포럼 특강을 위해 부산을 찾아 기자들과 만나 “부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며 “선거구는 당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다들 상대가 있어서 조심스럽다. 청와대와 중앙당과의 교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출마 지역을 묻는 물음에 “동구도 있다. 나는 범일동에서 태어나 수정동에서 자랐다”고 답했다. 부산 중·동구는 5선의 정의화 국회의장, 영도구는 김무성 대표, 서구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3선의 유기준 의원이 버티고 있는 지역이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편차 결정에 따라 이 지역들은 선거구 통합대상으로 꼽힌다. 안 던 대법관으로선 출마 의사를 밝히는 동시에 지역 선정에 셈법이 복잡하겠지만 서구가 텃밭인 유 의원은 영도구와 선거구가 합쳐질 것을 염두에 두고 아예 김 대표와 경선을 치르겠다며 벼르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이유야 어찌됐든 PK물갈이설도 가시화되는 형국이다. 목전의 칼날이 파고드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을까. 김무성 대표는 21일 오전 진주에서 열린 경남도당 당원 체육대회에 참석해 친박계의 공천 물갈이론을 두고 “이런 비민주적인 정당정치는 이제 중단돼야 할 때가 됐다”며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매 4년 공천 때마다 ‘바뀐다, 안 바뀐다’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어서 되겠냐”며 주먹을 쥔 채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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