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참패 후 패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반성 없이 친박계와 비박계의 익숙한 싸움이 지루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총선참패의 궁극적 원인이 청와대와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한 친박계에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천명했건만, 친박계는 요지부동이다. 참패의 진정한 원인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청와대 서슬에 눌려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지는 자신들만이 알 것이다. 문제는 총선민심을 당 운영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럴 기미 조차 보이지 않고, 오로지 친박계의 친위성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정당의 제1 요소를 방기하는 것이다. 

친박계의 승인으로 선출된 정진석 원내대표는 당내 지지 기반이 전무하다시피해서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추동력이 없어 보인다. 알아주는 마당발이지만, 위급할 때 자신의 근거지가 되어 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결정적 약점이다. 20대 국회 당선인 기준으로 다수파인 친박계는 ‘분위기’상 근신하는 모양이지만, 내부적 영향력은 결코 놓치지 않으려 더 똘똘 뭉치는 양상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총선참패 반성을 명분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비박계에 뚜렷한 구심점이나 리더가 없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한 쪽은 잠시 위축되고 있지만  분명한 구심점 아래 똘똘 뭉치는 반면, 다른  쪽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그 승기를 이끌어가거나 확산시킬 구심점이 없는 것이다. 그냥 그룹별로 모여 웅성웅성 자기복제성 성토만 하는 양상이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대개 세 그룹으로 나뉜다. 그런데 세 그룹간 연계점이 없다. 우리 몸의 정보 전달과정을 보면 ‘뉴런’이라는 게 있어서 옆 세포에 전달된 정보가 다음 세포로 이동하고 최종적으로 대뇌에 전달되며, 대뇌에서 만들어진 대응명령이 다시 세포로 내려간다. 그런데 비박계 세 그룹 사이에는 그런 뉴런이 없다. 

새누리당 내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내년 대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몇 가지 예측해본다. 우선 첫째. 청와대가 여지껏과는 달리 일정 부분 자세를 선회하는 것이다. 당을 더 이상 청와대 하부기구로 보지 않고 집권 파트너이자 권력획득의 모태이기도 한 여당으로 대등하게 대접하는 것이다. 당-청간 관계  정상화는 대야/대국회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보여진다. 두 번째는, 친박계가 청와대의 자장권으로부터 벗어나 1년 7개월 남은 ‘정권바라기’ 역할을 지양하고 독립된 정파로 활동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가능성 역시 첫 번째 경우처럼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다. ‘친박’이라는 이름에 이미 태생적 한계와 행동반경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비박계가 동일한 가치와 공동목표를 향해 좀 더 끈끈하게 연합하고 잠정적이나마 구심점을 만들어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오를 갖추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 내 역학구조나 판도는 지금보다 훨씬 정돈되면서도 격렬한 권력투쟁 양상으로 돌입할 것이다. 부수적으로 정당민주주의 활성화도 일부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비박계 각 그룹의 형성 연원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이렇게 될 가능성 역시 커보이지 않는다. 네 번째. 유승민 의원의 복당과, 그를 중심으로 정치블록이 형성돼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옹립되는 케이스다. 원내대표 축출 과정을 거치며 정치적 체급이 수퍼헤비급으로 급격히 상향된 유 의원은 청와대의 억압이 심할수록 본인의 정치적 근육도 강해졌지만, 외부 자극이 없을 경우에도 그가 여전히 자신의 근육과 체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가 ‘성장 유력 주식’인 것은 맞지만 그의 미래가치는 지금부터 그가 할 터에 달려있다. 그런데 유 의원은 현재로서는 단기필마에 가까운데다, 복당이 거부된 채 무소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존재가치는 확장되기 힘들다. 그의 복당 및 장래 활동 활성화는 청와대의  자세 변화 여부와 직결돼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로 봐야 한다. 그게 유승민 의원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두 달째 당권 진공상태에 처해있는 새누리당이 앞으로 얼마나 더 분화될지를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장 비박계가 당을 나가는 분당 사태는 없을 것이다. 총선을 치른 직후인데다, 내년 대선을 두고 변화의 여지가 너무 많기에 섣불리 ‘광야’로 나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DNA 속에 분당 같은 것은 애시당초 거의 없다. 분당을 주도할 만한 비중있는 인사가 없기도 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가을 께 ‘정치결사체’를 띄우려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흡인력을 발휘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렇다면 이 무질서한 지도력 공백상태가 어떻게 해결될까. 정진석 원내대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친박계가 자신들에게 ‘배타적이지는 않은’ 인사를 당 대표로 내세우는 방안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 그게 친박-비박 양측 모두에게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쁘지 않아서 선택하는 행위는, 좋아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에 비해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책임있는 자세도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봉합이 그러하듯, 나쁘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 하는 타협에는 내분의 재연 소지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끝날 즈음인 연말 께 양측의 인내력이 한계에 이를 것이고, 폭발점은 대선후보 선출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정 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어정쩡한 리더십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당이 여당이라는 점은 국민에게나 그 정권에게나 대단히 측은한 일이다. 70년 동안 강고하게 유지되어왔다는 대한민국 보수계열 유일 정당이 한 꺼풀 벗겨보면 이렇게 허약한 이유는 딱 하나, 자생력 없이 권부 핵심만 바라봐왔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업자득이다. 새누리당은 정당으로서의 본질적 질문에 직면해 있다. 답안지를 스스로 작성할 힘이 있는지 조차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1인 정당의 한계이자, ‘유니폼 체질’의 귀결이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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