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한일 기술패권전쟁” 이해찬 “한 번은 넘어야 할 산”, 장기전 각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를 기술패권 위협으로 바라보면서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장기전에 대비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를 기술패권 위협으로 바라보면서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장기전에 대비했다.

일본이 ‘한일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제 살을 내주고서라도 상대의 급소를 치겠다는 의지다. 그야말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이자 가미가제식이다.

일본은 7월 4일 고순도 불화수소(HF), 포토리지스트(PR), 플루오린폴리이미드(FPI)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급소를 자신이 쥐고 흔들 능력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반도체와 일본 부품·소재 간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자신의 부품·소재산업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선택은 ‘양패구상’의 ‘동귀어진’ 전략이다.

또 8월로 예정된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이러한 ‘가미가제식 공격’의 제도화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수출통제 품목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대부분 부품·소재 한국 공급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부품·소재 한국으로의 공급 밸브를 조이거나 푸는 방식으로 한국을 일본의 국익에 맞게 행동하도록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일본이 ‘전쟁’을 감행한 직접적 원인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한일 갈등이다. 여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한일 역사전쟁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패권 경쟁도 원인으로 도사리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구조화된 한일 종속적 관계가 140여년 만에 본격적 변화를 맞이한 것이 이번 경제전쟁의 최대 원인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세계패권을 둘러싸고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듯이 한일관계 또한 비슷한 측면이 내포돼 있다. 한일 간 격차가 줄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85% 수준에 도달했고 지금의 추세가 지속되면 조만간 역전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의 ‘한반도평화’ 분위기는 근현대사를 관통했던 ‘한일 종속관계’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요구했다. 지난 2년간 일본은 한반도 화해와 협력의 시대 도래를 ‘신(新)고립’으로 바라보면서 위기감을 강화시켜왔다. ‘육참골단’과 ‘가미가제’식의 극단적 위기돌파 전략 선택은 이러한 위기감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한일 경제전쟁’ 발단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日 한국 외교적 노력은 외면

이번 ‘경제전쟁’의 발단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다. 3개 품목 수출제한조치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3일 언론 인터뷰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 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이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경제보복을 하는 것이 WTO(세계무역기구) 위반이란 점을 인식한 후 ‘안보상의 이유’로 말을 바꿨지만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것이 직접적 원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 대법원 판결이 이를 뒤엎은 것이기에 “국제법 위반”이고 “약속 위반”이라는 것이다. 또 배상금 집행을 위한 한국 내 일본기업 자산 처분조치에 대응한 조치로서 ‘수출규제조치’를 한다는 얘기다.

또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고 지난 6월19일에는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리고 7월18일까지 한국정부가 답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조치, 즉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나서겠다고 했다. 한국 대법원의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판결의 효력을 한국 정부가 나서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요구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통해 ‘개인청구권’을 인정했다.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바탕으로 해 ‘해법’ 모색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6월19일 강제징용 문제 해법으로 한국과 일본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조성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제안 1시간 만에 거부했고 외면했다. 그러면서도 아베 총리는 7월22일 참의원 선거 직후 한국에게 “답을 가져오라”고 채근했다.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외면하면서 ‘경제보복’의 명분만 쌓는 흐름이다.

한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두 개 원칙을 제시해왔다. 하나는 ‘피해자 수용성’이며 다른 하나는 ‘일본과의 외교적 해결’이다. 그러나 ‘한일기업 공동기금 조성방안’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은 불만이다. 외교적 해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한다는 의미다. 한일위안부 문제처럼 외교적 해결은 난망일 수 있다.

그래도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은 어렵더라도 더디게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거나 해법이 도출되지 않으면 ‘이견과 갈등’을 안고 가는 것이 국제정치의 룰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기본 룰을 깨뜨리고 ‘수출제한조치’를 감행했다. 이에 따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따른 ‘한일 갈등’은 ‘경제전쟁’ 국면으로 전환됐다.

日 강제징용 빌미 ‘기술패권-경제전쟁’으로 확전, 아베 정치적 목표와도 부합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21일 자민당본부 개표센터에서 일본 참의원 선거 당선자 이름에 장미꽃을 붙이고 있다.[도쿄 교도=연합뉴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 21일 자민당본부 개표센터에서 일본 참의원 선거 당선자 이름에 장미꽃을 붙이고 있다.[도쿄 교도=연합뉴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 않는 일본으로선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한국과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배상 없이 수교한 중국, 또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볼 뿐 아니라 북한과의 수교협상에서도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것이란 판단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통상문제’로 전환시키는 선택을 한 순간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문제보다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전쟁’이라는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결’에 그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케 했다.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기술패권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려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배경은 여기에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강제징용 관련 외교적 해법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좋지만 일본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제한의 타깃이 한국 반도체 산업이다. 한국이 2000년대 이후 선진국으로 도약한 발판이 반도체산업이었고 이를 통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왔다. 한국이 서구 중심의 ‘기술패권동맹’의 ‘파트너’가 된 이면에는 세계 반도체시장을 석권했기에 가능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에 빼앗긴 반도체를 비롯한 IT산업 강자 위치를 탈환하겠다는 복심이 담겨 있다. 미래 IT산업의 승부처가 될 5G, 인공지능(AI), 한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려는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 진출과 육성과도 직결된다. 일본은 미래시장을 바라보고 한국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지는 무역전쟁과 결부된 ‘기술패권전쟁’의 흐름을 활용한 부분이 주목된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했던 아베 총리가 G20 바로 직후 ‘자유무역’을 부정하는 조치를 감행한 데는 일본의 ‘미래 전략적 목표’가 수출제한조치에 담겨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살을 내주는 ‘피해’조차 감수한 극단적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참의원 선거 유·불리만 따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또 이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라는 신호다. 단기전이라면 한국 반도체산업에 큰 피해를 미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오히려 한국으로 하여금 부품·소재산업 육성하도록 하는 동기만 부여하게 돼 장기적인 피해는 더 크다.

또 일본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감안하면 ‘기술패권경쟁’을 넘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까지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 전 군국주의 일본을 정당화하는 일본 극우 ‘일본회의’를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

‘일본회의’는 ‘메이지시대의 천왕 중심체제’를 모범으로 삼고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며 2차 세계대전은 침략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이에 현재의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전쟁수행이 가능한 전쟁 전의 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한다. 아베 총리는 이 ‘일본회의’의 결성 멤버이자 핵이다.

이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자신의 <탈대일본주의> 저서에서 아베 총리에 대해 “아베 총리는 좋든 나쁘든 방향성이 확실한 사람”이라며 “아베 총리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옛날처럼 강한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아베 총리가 일본이 한국에 대해 상위국가임을 입증하고픈 욕망이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진행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목표를 뒤흔든 사건이 됐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이상은 남북분단과 한반도냉전체제라는 전제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한반도평화’가 진전되면 한미일 삼각동맹 하위파트너로서의 한국의 지위를 강제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제한조치’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의도적으로 벌인 한국에 대한 ‘기술패권전쟁’, ‘경제전쟁’, ‘한반도 정세 개입 전쟁’으로 볼 수 있다.

文대통령 “기술패권전쟁” 이해찬 “어차피 한 번 넘어야 할 산”, 장기전 각오

문재인 대통령은 7월15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강제징용 관련 외교적 해결 노력과 관련 “대법원 판결 이행 문제의 원만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며 ‘한일기업 공동기금 조성 방안’을 언급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우리가 제시한 방안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는 말로 외교적 협상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며 일본이 ‘경제 침탈’을 목적으로 벌이는 ‘전쟁’이라는 생각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7월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현 상황을 “기술패권으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간주하고 “우리는 가전, 전자, 반도체, 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 왔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장기적 한일 산업전쟁 태세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미래시장을 건 ‘한일 기술패권전쟁’으로 바라보면서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반복해 강조한 것이다. 일본이 한일갈등의 범위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문제에서 경제보복으로 확전을 감행한 이상 ‘강대강 장기전’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시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해찬 대표는 7월18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서 “이 경제 전쟁, 제가 보기엔 쉽게 안 끝난다, 어차피 한 번 건너야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라고 말했다. 150여년의 한일 종속적 관계의 변화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민주당 일본경제전쟁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최재성 의원은 일본이 수출제한조치의 이유로 북한으로 전략물자가 반입됐다고 주장한 부분을 들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로 연결되는 문제를 흔들고 일본의 영향력을 갖고자하는 의도”라고 봤다.

그러면서 강제징용과 관련해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의미의 ‘외교적 해결노력’을 주문하는 보수언론 주장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경제 보복 카드 화살을 한번 맞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화살이 또 다가오고 있다”며 “무릎 꿇고 굴복하고 이렇게 가다 보면 경제적 피해가 더 커진다”고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회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일본이 확전을 선택한 이상 한일 근현대사 결부해 이해찬 대표의 말처럼 “어차피 한 번 건너야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란 인식이다. 보수언론이 강제징용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물러서면 무역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치지만 여권은 ‘경제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다만 한일 경제전쟁은 미국의 이해가 걸린 만큼 마냥 확전으로 치달을 순 없다.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로 ‘화이트리스트 배제’ 카드를 꺼낸 이상 한국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전개됐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7월22일 일본 방문과 23일~24일 방한은 한일 갈등 봉합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한다 해도 일본은 일시적으로 물러서라도 향후 장기전으로 갈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본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 선전포고를 한 이상 물러서기 어렵고 한국이 ‘의도’를 드러낸 일본에 백기 투항할 수도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해찬 대표의 말처럼 “어차피 한 번 넘어야 하는 산”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