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결실의 시간이다. 잔치의 계절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말잔치'로 풍성하다.
"쌀이 없으면 고기죽을 먹으면 되지 않는가?(何不食肉糜)"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신하의 보고를 듣고 서진의 황제 진혜제 사마충이 했다는 말이다. 중국 자치통감에 기록돼 있다.
이 말에 천 년 너머 현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또라이가 있나?'로 반응할 수 있다. 또 '쌀보다 고기가 많았던 모양이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쌀이 없으면 꿀떡의 찌꺼기를 먹으면 될 일이다."
조선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이현이 "쌀이 없으면 꿀떡의 찌꺼기를 먹으면 될 일이다"라는 넌센스도 명종 때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기록돼 있다.
패관잡기는 야사(野史)다. 하여 제안대군 '좀 모지리군'이라 웃음거리로 여길 수 있다. 아니면 사마충의 일화를 아는 총명한 기억자로 볼 수도 있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길 가에 난 풀을 뜯으며 진격하라."
가까운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장성(현재 한국 건국 유공자 취급) 무타구치 렌야는 임팔 작전 때에 보급품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길 가에 난 풀을 뜯으며 진격하라"는 명언(?)을 남겼단다.
"일찍 나와서 일찍 가면 될 것 아니냐?"
1996년 5월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어느 대학원생이 연구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밤늦게 뒷창문을 통해 실험실에 들어가려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 추락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연구원들은 밤샘연구가 불가피한 실정이고, 학교 측은 시설과 인원 부족으로 밤 11시가 되면 출입문을 차단해야 하는 현실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이에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대한민국 사법부는 "연구실에 일찍 나와서 일찍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원고는 패소했다.
"배추값 비싸면 싼 양배추 먹으라"
2010년에 배추값이 폭등하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가 비싸니, 내 밥상에는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올려라"고 했다. 이에 농수산식품부 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도 덩달아 "배추값 비싸면 덜 먹으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줄줄이 이어갔다.
핵심은 서민들 생활 전반이 어려워졌다는 뜻인데 '배추값 비싸면 싼 양배추 먹으라'는 식의 '부자되세요' 시절도 있었다.
"조국 딸이 지원한 분야는 어학특기자 전형이었다"
중앙SUNDAY 8월31일자 기사다.
"조씨가 지원한 전형(세계선도인재전형)은 어학특기자전형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입학사정관전형을 늘리라고 해 특기자전형을 입학사정관전형으로 확대한 것이다. 어학특기자전형에선 당연히 어학 실력을 본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게 원어민 수준인 학생을 뽑는다. 그래서 외고 학생들이 많이 지원했다..."
"어학 실력과 학업적 능력을 보여주는 AP(Advanced Placement, 미국 대학협의회에서 만든 고교 심화학습 과정) 같은 기록, 공인된 유엔 모의대회 실적을 더 높게 평가했다. 어학 실력, 학업능력, 그리고 리더십 등이 중요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28)이 2009년 고려대 수시모집(1차) 당시 입학팀장(61)의 증언이다. 그는 고려대에서만 20여 년 간 입시를 맡아왔고, 최근 정년퇴직했다.
중앙SUNDAY 31일자 기사 이후 '조국' 키워드로 등록된 기사는 모두 828개. 그러나 이 기사를 받아 보도한 매체는 단 한군데도 없다. 반면 "조국 불륜 주장 30대 벌금형"이라는 선정적인 기사는 하루 종일 인터넷을 덮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조국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뉴스의 팩트, 사실의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소문만 무성하다. 죽일 놈 살릴 놈, 악다구니만 진동한다. 그럼 확인하면 될 일 아닌가? 팩트체크도 않는다.
뭘까...? 영화의 한 장면... 조직폭력배... 패싸움...
왤까...? 두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조국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 만만찮다. 대한민국 언론들, 말 '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