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코로나 사태·정제마진 하락에 유가 하락 악재
석유화학업계, 나프타 가격 하락·미국 셰일가스 생산 감소 기대

사우디 아람코의 정유시설. <사진=연합뉴스>
▲ 사우디 아람코의 정유시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필수 기자]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고 국제유가까지 폭락하며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주요 산유국이 추가 감산 합의에 실패해 국제유가가 폭락세를 보였다. 9일 오전 뉴욕 선물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2.5달러로 전장보다 21% 하락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사 아람코는 10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4월이 시작되자마자 산유량을 하루 123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유가 하락이 이어지며 저유가 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업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적 경기둔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급락하며 1분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유가의 하락은 원가 하락으로 이어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경우의 이야기다. 현재와 같이 글로벌 수요 위축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정제마진도 하락하며 이에 따른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유업계는 실적으로 이어지는 정제마진 하락과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요감소에 이어 국제유가 폭락까지 덮치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1.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주보다 0.9달러 하락했다.

지난해 한때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하락하며 실적이 악화했던 정유사들은 올해 들어 정제마진이 상승하며 실적 반등을 기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2월 둘째 주부터 정제마진이 급락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충격으로 국내외 수요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국제유가와 정유업계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유산업은 유가 하락에 따른 단기적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며 “재고평가 손실과 가격 하락기에 발생하는 전반적 수요 위축이 악재”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폭락 이후 9일 오전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등 주요 정유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폭락하며 신저가를 기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제유가 급락 때는 시장 수요는 탄탄한 채로 유가만 하락해 정유사들이 버틸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수요가 줄어든 상태”라며 “가뜩이나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락이라는 불확실성이 터져 그야말로 ‘초멘붕’”이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정유업계는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감산 카드를 꺼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월간석유수급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정유사들의 원유처리 공장 가동률은 86.1%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코로나19 수요 감소와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쳐 감산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1위 사업자인 SK에너지가 이달부터 울산 정제공장 가동률을 기존 100%에서 85%로 15% 낮췄다.

현대오일뱅크 또한 지난해 말부터 정제공장 가동률을 같은 기간의 최대 생산량과 비교해 90%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SK에너지는 시황에 따라 가동률을 추가로 낮출 가능성도 있으며 에쓰오일, GS칼텍스 등 다른 정유사들도 감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석유협회는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한 재고평가 손실발생, 코로나19로 인한 수요감소, 정제마진 악화가 모두 겹쳐 정유업계의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석유화학업계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오히려 한시름 놓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석유화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재료인 나프타(납사) 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정제해서 나오는 게 나프타”라며 “원유 가격이 떨어졌다는 게 알려지면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도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가 하락에 따라 단기적으로 스프레드(제품가격에서 원재료 값을 뺀 것)가 일정 부분 회복될 수 있다”며 “코로나19 영향 마무리 국면에서는 탄력적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국제유가의 하락이 미국 셰일가스 생산 감소로 연결될 수 있어 석유화학제품 공급 증가 우려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최근 미국 셰일가스에서 뽑아낸 에탄으로 에틸렌을 제조하는 분해설비(ECC)가 증가하며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미국 셰일가스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55∼65달러 수준이 유지돼야 안정적 투자가 가능하다. 최근 유가가 이를 밑돌면서 셰일가스를 원재료로 하는 미국과 중국의 석유화학 설비 증설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최근 롯데케미칼 대산 나프타 분해 공장 폭발 사고로 일부 화학제품의 가격이 추가로 상승하고 있다. 특히 고무 주원료인 부타디엔(Butadiene, BD), 스티렌 모노머(Styrene Monomer, SM) 등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다만 업계에서는 원가 하락보다는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수요 감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더욱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가 위축되면 플라스틱 생산량이 크게 줄어드는데, 그 수요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로 부진한 시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 둔화와 3월 가용인력 증가, 운송차질 문제 완화 등 영향으로 중국 수요업체 가동률 상향 움직임은 포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나프타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코로나19 등에 따른 수요 감소가 계속되면 제품의 가격도 함께 내려가 실적에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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