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0주년 위상 무색 초라한 실태
문화재청 노후 평기와 가옥 방치, 초가 가옥에 정책 비중 둬
주민 거주율 높지만 정주여건 악화로 안동 하회마을에 역전 가능성

[편집자 주]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이 오는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양동마을은 문화재 보존을 취지로 한 정부의 규제에 묶여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여전히 열악하다. 하회마을도 지나친 상업화로 유교문화의 전통미가 훼손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2회에 걸쳐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민속마을의 현실을 짚어보고 정책적 대안을 찾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상) 규제의 굴레를 쓴 주민들

(하) 정부·지자체 협력이 민속마을 살린다

문화재보호법의 규제로 인해 경주 양동마을의 평기와 가옥들이 낡은 지붕을 보수하지 못 한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 폴리뉴스 사진>
▲ 문화재보호법의 규제로 인해 경주 양동마을의 평기와 가옥들이 낡은 지붕을 보수하지 못 한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 폴리뉴스 사진>

 

‘A가옥 : 안채 높이가 낮아 생활이 불가능, 창고 부재로 장비 및 농산물 도난사고 발생’ ‘E가옥 : 화장실의 외부 배치로 자녀의 생활 불편, 외부인 무단 침입으로 세간살이 도난 피해’ ‘H가옥 : 불법 개조 사용으로 인한 불안’.

지난 2014년 11월 양동마을 주민들이 문화재청에 ‘양동마을 평기와 가옥 개축 건의서’를 제출하면서 첨부한 강동진 교수(경성대)의 조사보고서에 포함된 ‘초가 공간 유형별 변형 실태’이다.

이처럼 초가 거주 주민들이 생활공간의 부족과 저효율의 냉난방, 해충과 냄새 등 불편에 시달리고 있지만 문화재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양동마을 전체에서 기와집은 220채, 초가는 190채로 전국 7개 민속마을 중 초가의 비율이 가장 높다.

정부가 이처럼 개축 대상 가옥을 초가 위주로 지원하는 주된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골기와집은 건축비가 초가에 비해 1.5배 가량 높다. 하지만 유지보수비는 초가가 더 높아 한해 평균 7억여원이 쓰이고 있다.

이수원 양동민속마을운영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벼의 품종 개량과 콤바인의 이용으로 길고 품질이 좋은 초가용 볏짚을 사용할 수 없어 유지보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면서 “그 거주민이 겪는 불편까지 따지면 결국 초가에 드는 비용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냉난방비 부담 등 장기간의 생활 불편을 겪어온 주민들은 지난해 3월 문화재청장에게 위원회 명의로 ‘전기료 할인, 주택에 농사용 전기료 적용’을 청원했지만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문화재청이 생활이 더 불편하고 고비용인 초가집 위주로 가옥의 개축 정책을 추진하는데는 평기와집 처리에 대한 해법을 여전히 찾지 못한 사정도 있다.

문화재청은 골기와 가옥과 달리 양동마을 내 평기와 가옥 15채에 대해서는 근현대적 개량양식이므로 전통성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이 낡아 허물어지고 비가 새도 보수조차 하지 못하고 천막을 덮은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지난 2014년 주민들의 ‘개축 건의서’에 대해 문화재청은 심의위원회의 부결 결정 이후 아직까지 6년째 어떤 대안도 못 내놓고 있다.

하지만 양동마을에 평기와집이 건축된 역사적 배경을 들여다보면 가옥주들이 왜 골기와 가옥에 밀리지 않는 애착과 자부심을 갖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포항제철(포스코)에 용수 공급을 위해 지난 1968년 8월 마을 인근에 안계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쫒겨난 수몰민들은 양동마을에 이주해 전통양식의 골기와가 아닌 평기와 가옥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주민들은 당시 생활고는 물론 하루 빨리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반촌마을의 위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궁여지책으로 평기와를 선택하게 됐다.

최병준 경북도의회 의원은 “경상북도, 경주시와 협의해 주민들이 겪어온 불편과 각종 문제들을 문화재청에 전달하고 대책을 요구하겠다”면서 “평기와 가옥의 개축을 초가가 아닌 골기와로 전환하고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정주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주민수는 안동 하회마을이 2018년 222명으로 2012년에 비해 21명 감소한 데 반해 양동마을은 273명으로 65명이 감소했다. 2018년 기준, 빈집은 4%인 15채이며 하회마을은 12%인 51채이다.

현재 양동마을 주민수는 150가구에 300여명, 87%의 거주율로 아직 하회마을에 비해서는 높지만 정주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 역전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경주시는 이미 지난 2013년 (사)호연건축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한 '경주 양동마을 보존관리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을 통해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고도 여전히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당시 보고서에는 '주민의 거주환경 보장의 원칙'에 '마을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생활에 필요한 주거생활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마을과 가옥의 보존관리 지침을 마련하도록 한다'고 밝혀 놓았다. 

양동마을 출신의 서울 출향인 이모(60)씨는 “양동마을 주민들은 지난 1984년 마을이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문화재보호법 등 각종 규제로 인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0주년의 위상에 걸맞는 정책 전환으로 민속마을의 공통과제인 거주와 보존을 조화시킬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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