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인천범시민단체연합 회원과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15총선에서 부정선거 사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증거보전 신청과 재검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0.4.22
▲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인천범시민단체연합 회원과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4.15총선에서 부정선거 사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증거보전 신청과 재검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0.4.22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미  4·15 총선에서 부정선거 사례로 의심되는 정황이 있어 증거보전 신청과 재검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그는, 이를 거두어들이기는 커녕 선거부정을 단언하는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민 의원이 선거부정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몇가지 수치였다. "서울·인천·경기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소수점을 제외하고 '63:36'이라는 비율로 거의 똑같게 나왔다, 하지만 당일 투표에서는 민주당이 52.23%, 통합당이 48.79%였다"면서 "통계가 짜인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라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는 발언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내놓고 있다. “지금 나와있는 숫자들이 바로 부정 개표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숫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몇몇 분들이 찾았습니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번 사건은 민의를 왜곡하고 훼손한 국기문란 사건이며, 서버조작 사건이며, 전자개표기 부정사용 사건이며, QR코드를 이용한 국민기만 사건”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다. 민 의원은 일부 보수 유튜버들이 주장하는 신빙성 없는 선거부정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 의원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반박하는 설명들이 이어지고 있다. 선관위는 보수 유튜버들이 자의적으로 지역구나 정당을 선정한 뒤 만든 통계로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253개 지역구별로 따지면 63 대 36의 비율로 득표율이 나타난 곳은 17곳에 불과한데도, 민 의원이나 보수 유튜버들이 자의적으로 지역구를 선정하여 마치 전국적인 결과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음이 나타난다. 같은 당의 이준석 최고위원 등도 개표조작설에 동조하는 당내 의원들을 “소수종교에 흔들리는 힘든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며 자신이  설득하겠다고 할 정도이다. 사전투표 부정이나 개표조작은 시스템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선관위는 물론이고 상식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의 판단이다. 투표 당일날 전국에서 사전투표함은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인되었고 CCTV를 통해 감시되었으며, 개표 과정도 각 당의 참관인들이 지켜보았는데, 그많은 사람들이 선거부정에 속아넘어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4.15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작심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심판받을 것이라던 자신들의 주장이 무너진 상황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지부조화,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집단 동조, 자신이 갖고 있던 신념을 어떻게든 확인하려는 확증편향이 낳은 결과이다. 이들에게는 패배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감정이 객관적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포스트 트루스(탈진실)적 행태의 모습이다. 이러한 행태는 보수 유튜버들의 조회수 장사가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사전투표 조작을 주장하는 보수 유튜버들에 대해 "침소봉대해서 조회 수 장사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강용석 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밝히겠다며 펀딩을 시작하여 이미 민경욱 의원을 위한 6천만원을 모금했고, 앞으로도 미래통합당의 다른 낙선자들을 위한 모금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으로 낙선자들이 받을 수 없는 돈을 계속 모금해서 어떻게 사용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선거부정 주장들을 비판하다 보면 부딪히게 되는 기억이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김어준 씨가 투표지 분류기를 이용한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영화 <더 플랜>까지 만들었던 일이다. 그 역시 영화를 만들겠다며 20억원을 모금했다. 이미 선관위는 물론이고 <뉴스타파> 등을 통해 그가 주장한 ‘k값’의 근거가 없다는 검증과 반박이 따랐지만, 김 씨는 그 뒤로 아무런 책임있는 사과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김어준의 그런 음모론은 보수 진영 인사들에 의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21일 방송 화면. TBS 유튜브 캡처
▲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21일 방송 화면. TBS 유튜브 캡처

 

“지난 18대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했던 조작 근거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 셈이다. 특히 김어준의 ’더 플랜‘은 이번 21대 총선에서의 부정선거 주장을 더 신빙성있게 만드는 작용을 하고 있다.” (추부길, ‘4.15부정선거 의혹,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희극적인 장면은 그런 김어준 씨가 보수 유튜버들의 선거부정 주장에 대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분들이 선거 시스템에 대해 너무 공부를 안 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연구한 결과로는 “투표소에서 바로 손 개표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주장을 계속한다.

선관위를 범죄집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참관인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데 착한 음모론이 있고 악한 음모론이 있을 수 없다. 사실이 아닌 신념을 앞세우는 진영의 음모론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보면서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대 대선 이후 김어준류의 개표부정 음모론에 대해 단호하게 사회적 책임을 물었어야 오늘 횡행하는 보수 정치인들과 유튜버들의 선거부정 음모론이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선거 때마다 양 쪽에서 경쟁적으로 반복되는 음모론은 적대적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스트트루스』의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우리는 거짓말에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탈진실에 맞서 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 속에 있는 탈진실적인 경향성을 물리치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우리 모두는 탈진실로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인지 편향을 타고난다. 따라서 탈진실이 다른 사람에게만 나타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만 문제를 초래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진실의 중요성이 뒷전으로 밀리는 포스트트루스 시대 속에서도 진실을 찾기 위한 우리의 성찰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매킨타이어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차피 우리가 모든 사실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마음 속 목소리가 속삭이더라도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의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진실에서 멀어질수록 우리가 원하는 세상도 멀어진다. 상대를 악마로 만들고 싶은 감정이 사실에 근거한 이성을 이기는 곳은 죽은 음모론자들의 사회다. 거짓이 진실의 행세를 하는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먼저 자신들이 과거의 거짓을 반성해야 상대방의 거짓을 비판할 자격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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