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임금인상 요구 대신 충성을 맹세하는 도요타 노조

일본열도, 8박 9일의 한일 노동자 연대

- AWC 일본연락회의 전국 주요 도시 순회 집회 참가기(마지막 회)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 AWC한국위원회 대표

일본 순회 5일차(2013.6.20.목). 나고야와 고베지역을 방문했다. 작년에 이어 나고야시에 있는 노숙자촌을 찾았다. 노숙자들은 이 곳에서부터 나고야역까지 고가 밑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 ‘노숙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안내로 그 곳에 거주하고 있는 4명의 노숙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매주 금요일 노숙인 건강을 체크하고 한 달에 한 번 교회 등으로부터 지원 받은 부식으로 식사를 함께 한다. 태풍이 오는 여름이나 추운 겨울나기가 어렵다. 일본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에는 여성노숙인 들도 증가해 화장실, 생리, 목욕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일본인들 일반의 노숙자에 대한 생각은 “무섭다!”, “왜 일을 안 하느냐?” 등으로 부정적이다. 그래서 가끔 노숙촌에 불꽃을 던지거나 폭행을 가하는 등 공격한다.

노숙자들은 빈병을 수집하거나 일용노동자로 살아간다. 노숙자들은 시청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도록 한다. 최근에는 노숙자들의 건강 악화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노숙자촌을 떠난 경우가 많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면 지방정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지만 매우 좁은 방을 얻는 데 지불하는 월세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지금 일본에서는 이들을 대상을 임대수입을 챙기는 일종의 원룸형 부동산업이 성업 중이다. 노숙자들과 매우 밀접하게 활동하는 단체로 40년 역사를 지닌 사사시마 일용노조(笹島日雇勞組)가 있다. 조합원은 50여명에 불과하고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대중운동을 중심에 두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까지 폭이 넓다. 국내에서는 알바노동자, 비정규노동운동과 연대하고 밖으로는 제3세계 노동운동과 국제연대도 열심이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국제적인 자본가의 탄압에 노동자 국제연대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 방향은 비정규, 국제노동운동이다. 어떤 종교단체는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면 우리 역할이 없어짐으로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나 노숙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연대로 본다.

토건국가 건설에 착취당하고 노숙인 된 건설노동자

한국인의 경우 전쟁 전에 일본으로 온 사람들(old comer) 중 홈리스인 경우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고, 최근처럼 관광비자로 들어와 체류하는 경우(new comer)에는 임금, 산재 등 노동 상담을 주로 한다. 민족차별이 심해 조선인 건설업자들은 일반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용노동자가 된다. 조선인 노동자는 힘과 기술이 좋아 일본노동자가 벽돌 1개 쌓을 때 3개를 쌓지만 임금은 차이가 없다. 그만큼 더 착취를 당한다는 얘기다. 대화중에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510일간의 투쟁을 담은 <외박>(2009년)과 실제 자신의 아버지를 비춘 <노가다>(2005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김미례 감독 얘기도 나왔다. 지난 10월 14일부터 시다오께(하도급업자)가 어용노조를 건설하면서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데 항의해 달성군 동화주택 현장에서 고공 크레인 농성중인 대구경북건설노조 조합원들의 현실이 일본 건설노동자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또 일본인 식당사장이 임금을 640만 엔이나 체불한 채 네팔노동자를 한 달간 감금한 사건이 있었을 때 그 식당 주차장에서 3~4개월 간 농성을 한 적이 있는데 유일하게 TV에 보도된 적이 있다. 경찰은 이주노동자의 거주지 주소가 식당이라서 감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출입국관리법을 이용한 것이다. 한국과 다르지 않다. 경찰과 경영자의 야합이 일상적이다 보니 검찰에 송치했으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네팔노동자가 후쿠시마 핵발전소로 유명한 동경전력회사 직원을 죽였다고 뒤집어 씌워 15년 넘게 옥살이를 했는데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쁜 경영자보다 국가권력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불법노동자가 20~30%나 감소했다.

노숙자의 생활권은 결국 노동문제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지만 지방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65세 이하라서 안 되고, 건강해서 안 된다는 식이었다. 500명이 해고되면 400명이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무료급식이나 산재 문제 등을 회사에 가서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일용건설노조와 노숙자의 관계는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매달 교류회를 한다. 노숙자가 공격을 당할 시 일용건설노조에 연락한다. 노숙자 중 상당수는 힘든 건설노동으로 몸이 안 좋아 일을 할 수 없다. 자방정부는 이들을 술을 많이 마셔서라든가 아니면 인격이 불량하다고 지적한다.

이날 낮 나고야 노숙인촌과 일용건설노조방문을 마치고 저녁에는 고베지역 집회(실내 토론회 중심, 한국처럼 바깥 집회는 ‘데모’라 부름)에 참석했다. 먼저 나카무라(中村) 산상전도요타노동조합(三さん全トヨタ勞動組合) 서기장이 도요타 관련기업 노동자 투쟁을 소개했다. 도요타 노조는 32만 명 정규직으로 구성된 기업 내 노조다. 노사협조보다 더 심한 회사발전노조로 어용노조다. 그들은 도요타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기간제노동자, 파견노동자, 외국인노동자를 버리고 있다. 1, 2차까지는 기업노조가 있지만 3차 하청부터는 노조가 없다. 노조는 금년에 작년보다 임금을 20만엔 인상했다. 그러나 보너스(특별상여금)는 205만엔 인상했다. 하청노동자가 불만을 가지는 내용이다.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은 임금인상이 거의 없고 보너스도 한 달밖에 없다. 비정규직노동자 처우개선은 전무하다.

생산성향상 외치며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외면하는 32만명 도요타 정규직 노조

1996년 도요타는 “기업 성장이 그곳에 일하는 노동자 행복” 이라는 ‘신노사선언’을 발표한다. 상호신뢰와 상호책임을 바탕으로 노동자는 죽도록 일하고 회사는 노동자의 생활향상과 고용안정에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어용노조는 높은 부가가치와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회사방침에 적극 협력한다. 회사가 성장하면 노동자를 지켜주고 임금인상은 노동자 투쟁이 아니라 회사가 성장해야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춘투(임투)집회장에서 어용노조위원장은 “도요타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노사가 힘을 합쳐 전진해 나가는 공동인식”을 강조한다. “회사를 위해 몸을 바친다!”, “경쟁에서 이기자!” 등 노조 집회에서 조합원은 한 문장씩 메시지를 발표한다. 물론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쓰면 안 된다는 점을 노조간부가 주지시킨다. 대신 “불량품을 만들지 않겠다.”, “회사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 등 매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재확인하는 것이 노조의 일이다. 노조가 나서서 도요타에 충성할 것을 강요한다. 어용노조가 아니라 회사 노무관리부서로 전락한 지 오래된 듯하다.

그러나 나카무라 서기장은 말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처우를 개선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대기업 고임금 노동자에게만 해당된다. 대기업노조는 존재하지만 회사 경영진에 저항 할 수 없다. 반면 하청노동자인 자신들의 노조는 노동 상담활동을 시작했는데 1년간 노동 상담건수가 증가했다. 상담내용은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많이 상담했다. 어용노조에 찾아가면 “노조는 개인적인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노조는 노동자를 지원하면서 재판투쟁도 벌인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조가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아예 노조를 밝히지 않고 활동하기도 한다. 노조를 드러내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의 글로벌 세계 전략이다. 20~30명인 기업도 2~3명은 해외에서 근무한다. 만약 해외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일본에서 100명 단위로 노동자를 파견한다. 도요타 방침에 못 따라가면 중소기업들은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된다. 그래서 노조활동, 국제연대활동이 더 중요해 지고 있다. 물론 지역연대도 중요하다. 어용노조 지배 하에서도 투쟁하는 노조 깃발 들고 전진하겠다며 발표를 마쳤다.

일본 순회 6일차(2013.6.21.금). 낮, 날씨는 흐렸고 비까지 내리는 날 이와쿠니(岩國)를 방문했다. 미군 해병대 기지가 확장되는 공사현장을 보기 위해 산을 올랐지만 그 전경을 볼 수 없었다. 한반도로부터 30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전투기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이와쿠니 기지가 확장되는 것은 유사시 한반도를 겨냥하는 기지이자 대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이 곳 주민들은 오랫동안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했다.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부터 골목골목 그리고 집집마다 미군기지 반대 깃발이 보였다.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을 보는 듯 했다. 마침 일주일에 한번 씩 열리는 집회에 참석했다. 마을 주민들과 여러 연대단위에서 참가해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보고하고 토론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 2세부터 지역에서 미군기지 반대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시의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수시로 벌어지는 미일군사훈련, 전투기 이착륙으로 인한 소음, 절대적인 미군주둔비용 부담(일본은 이를 ‘배려예산’이라 칭함), 미군범죄, 재산권 행사 제약 등 고통을 호소하였다. 최근에는 미국 본토와 오키나와에서 잦은 사고로 문제가 된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레이’에 대한 우려가 대단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상황과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에 대해 소개했다. 일본제국주의 동아시아 침략과 패전, 원폭투하와 희생, 미군주둔, 미일군사동맹 강화,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일본 우익세력, 한반도 긴장고조, 중국의 성장과 동북아시아 신냉전체제 등 이와쿠니 방문은 비 내리는 날씨만큼이나 어두웠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위협이 점증하는 동아시아 지역

저녁, 후쿠야마에서 “해협을 넘어 압제에 맞서 투쟁하자!(海峽を 越えて 壓制と鬪おう)”는 제목으로 집회가 열렸다. 먼저 이 곳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중국인 기능실습생은 3년간 일하는데 잔업노동시간이 6000시간을 넘는다. 연간 2000시간을 더 일한다. 시급은 1년차 350엔, 2년차 370엔, 3년차 400엔으로 한국의 법정 최저임금기준 시급보다 낮고 일본의 동경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은 시급은 도시마다 다르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 일하는 데 총 휴게시간은 90분에 불과하다. 노예노동이라 할 수 있다. 18만 명이 일하고 있는데 70~80%가 중국인이다, 그 다음으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노동자다. 연간 6000시간 넘는 노동(365일 기준, 하루 16시간)을 하면 연간 370만 엔을 벌 수 있는데 히로시마에 이런 노동 상태에 있는 노동자가 8천 명 정도 된다. 정규직-비정규직-이주노동자 실습생의 연대를 조직하고 투쟁해야 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언어의 장벽이 크다.

의료제조판매회사에 근무하는 마쯔다씨의 증언이다. 초대에서 2세까지는 좋은 경영자였다. 그런데 3세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2007년 9월부터 임금도 깎았다. 60세가 정년인데 50대 중반부터는 사장에게 할 말도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노조에서는 4번째 단체교섭을 했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 노동자들은 여전히 애사심이 강했고 제대로 된 규정을 만들면 좋은 회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도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한다. 기술유출, 회계조작으로 3천명이 정리해고 당하고 국가공권력의 야만적 폭력을 당하면서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했지만 공장 설비 하나 건드리지 않아 파업종료 7일 만에 공장을 재가동 할 수 있도록 회사를 생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열악한 바이터(프리터)와 알바노동자의 현실

일본순회 7일차(2013.6.22.토). 교토에서 집회가 열렸다. 일본 측 개회사는 핵발전소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지역주민들은 이주나 대피도 못한 채 가설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 등 후쿠시마 상황을 소개했다. 그리고 아베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하는 반면 서민들에게는 생활보호기금조차 삭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박근혜정권이 창조(경제)적으로 펼치는(?) 공약 파기와 사회복지 후퇴를 보는 듯하다. 한국 수구보수정권의 친일인가, 일본 극우정권의 친한인가?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발표자는 “안전은 핵은 없다!”며 모든 생명체가 방사능의 영향을 받는다고 규탄한다.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대기업이 돈 벌고, 전력회사 사고 나도 돈 벌고, 또 건설할 때 돈 벌고...핵발전소 비용의 10분의 1이면 새로운 재생 에너지 기술이 가능하다. 음식물 쓰레기와 수세식 화장실 문제도 다시 생각하자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극우주의자들이나 자본가들은 전 세계 핵발전소가 400개가 넘어선 마당에 해외수출에다 일본 내 핵발전소 재가동과 신규 건설까지 시도하고 있다. 다음은 필자가 한국의 정세를 보고했다. 질문이 이어졌다. 노동자 격차와 비정규직 조직화, 민주노총 위기와 재생 과정, 좌파노동자회 소개, 한일노동자 연대와 발전을 위한 제언 등에 대해 답변했다.

저녁, 한일 알바노동자 연대 교류회가 열렸다. 교토 락쿠난 유니온, 보찌보찌유니온 등 노조와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알바연대 권유리 활동가가 참가했다. 락쿠난 유니온은 고속도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조합원 20% 정도가 트럭이나 택시 노동자이고 실업자도 20%에 달한다. 보찌보찌(천천히)유니온은 학생들이 많다. 3분의 1은 사회복지 공무원, 3분의 1은 파견노동자 그리고 나머지는 실업자나 취업준비생들이다. 상담활동이 많다. 인터넷을 통한 상담도 한다. 그래서 조직화가 어렵다. 아는 사람을 통해 서로를 연결한다.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심어주는 것이 어렵다. ‘도와주세요’하고 와서 상담을 하고 나서 문제가 해결되면 ‘안녕(by-by)'하고 떠난다. 10명 상담하면 3분의 1정도가 남고 1년 뒤면 거의 떠난다. 남는 경우에도 노조를 지키겠다는 경우는 드물다. 상담을 시작한 이래 집행부에 남은 사람은 5명뿐이다. 투쟁이 필요하나 투쟁을 책임 질 사람이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보찌보찌유니온에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 아는 사람 소개로 오거나 다른 노조에 상담을 갔는데 안 받아줘서 온 경우가 많다. 특히 어려운 경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라 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가진 사람을 조직하는 게 어렵다. 이는 한국에서 높은 자살률이 떠올랐다. 알바연대, 알바노조의 조직화와 활동이 험난함을 예상케 한다.

일본 순회 8일차(2013.6.23.일). 큐우슈우〮‧야마구치 집회가 열렸다. 80대 중반의 AWC일본 측 공동대표인 시라마쯔 동지의 발표다. 한일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제국주의를 분쇄해야 한다. 아베정권은 아시아 침략, 민중 살해, 제국주의 전쟁을 반성하지 않으면서 다시 일본을 되찾자고 한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중국, 조선민중 지배를 잊어서는 안 된다. 탈원전 운동과 재일조선인 억압 반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분야별로 발표가 있었다. 피폭 2세가 탈원전을 호소한다. 원전 없이도 전기는 충분하다. 원전 사용 이유가 사라졌다. 아베정권은 일본 원전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며 베트남 등에 수출하려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처리가 끝났다며 원전을 수출하고 건설하려고 한다. 원전이 에너지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 아님은 석유개발 국가에도 원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바로 핵무기 제조를 위해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 희생자 중 재일조선인도 많았다. 일본은 헌법 개악을 통해 제국주의 침략의 길로 나서려 한다.

부락해방동맹 발표다. 부락(部落)해방 동맹은 일본의 불가촉천민이라 할 수 있는 도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사람)의 차별을 없애는 해방운동 단체다. 전국에 5000개 부락에 200만 명이 거주하고 규슈지역은 20만 명이다. 사이마지역이란 곳에서 진짜 범인은 도망가고 29세 부락동맹 청년이 체포되어 30년간 구금된 사건으로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 때부터 무죄 재판을 시작해 3년 째 투쟁 중에 있다. 검찰에 증거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사이마 차별재판’이라 불린다. 오키나와 투쟁 보고다. 5월 15일부터 1주일간 60km 평화행진이 있었다. 5월 19일에 오키나와 현민 3500명이 참가해 하루 9KM씩 걸었다.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4일까지 6박7일 동안 1천여 명이 동서로 하루 20km씩 총 290km를 걸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과 강정의 평화를 촉구하기 위한 2013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역시 마찬가지 내용이었다. 오키나와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 정부가 미군기지를 강요하는 데 반대해 ‘오키나와 독립학회’까지 만들어졌다. 이와쿠니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오스프레이와 하시모토 시장의 망언에 대한 이와쿠니 시의원 메시지도 소개한다. 2006년 미군기지 반대 주민투표 후 7년간 투쟁 중이다. 1달에 3번 집회를 열고 재판투쟁도 지속하고 있다. 위험한 미군기지가 일본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 다른 미군기지 내에는 미군주택이 없는 데 이와쿠니기지에는 건설 중이다.

후쿠시마 이후 인식의 변화, 아직 잠자는 일본 노동운동

이주노동자 실습생(연수생) 권리 네트워크 발표다. 2007년 인도네시아 실습생 상담 이후 중국 등 여러 나라 실습생을 상담하고 있다. 노조건설에서부터 임금체불까지 다양하다. 요즈음은 농업실습생 노동 상담도 한다. 600명 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채소농사일을 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에겐 잔업수당이 없다. 좁은 기숙사에서 여성노동자둘이 생활하고 있다. 고용주의 탄압이 심하다. 민족학교 보조금 문제 보고다. 이는 차별정책이다. 다른 외국인 학교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년 동안 지원해 온 야마구치, 시노모세키지역에 올해부터 보조금을 중단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야마구치 현청 앞에서 위안부 할머니 투쟁이 있다. 구마모토에서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보고하다. 1997년부터 일본 중학교 교과서부터 위안부 문제 삭제했다. ‘아이들 인권을 생각하는 현민’모임은 AWC한국위원회 전 대표이신 이수갑의장님 소개로 한국의 충남지역시민단체와 자매관계를 맺고 꾸준히 교류해 왔다. 2005년에는 충남 관민 합동으로, 2009년 11월에는 한국의 시민단체가 구마모토를 방문했다. 2011년 왜곡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는 않았으나 교재로는 채택한 상태다. 2012년부터 재판투쟁 중이다. 충남도의회에서 전원일치 결의로 충남도지사 특사가 구마모토를 방문한 적도 있다.

기타큐우슈우 모지 지구 노조활동가 발표다. 총평이 정책적으로 만든 각 지역 지구는 연합(랭고) 이후 지구센터로 바뀌었다. 랭고에 합류하지 않은 지역이 모여 평화운동, 영세노조 활동조직을 만들었다. 그래서 상급단체는 없다. 회원은 1200명 정도다. 총평은 전투적 조직이었으나 랭고로 통합 된 후로는 단절이 생겼다. 랭고에서 큰 노조인 자동차 노조는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본의 구조조정을 인정한다. 원전이나 헌법개악문제는 ‘무관여’방침이다. 따라서 어떤 유인물도 없다. 랭고는 노조 또는 산업노조로서 가능이 없다. 랭고에 소속된 노조라도 단협이나 탄압에 대응하는 것은 스스로 할 뿐이다. 국철민영화 반대투쟁은 25년간 전개됐는데 전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전노협에 소속된 국철노조는 랭고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모지지구 화학비료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데 산업노조나 중앙은 이를 받아들이고 20, 30대 젊은 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희망퇴직을 신청한다. 아시아 전체 노동자 연대가 필요하다. 랭고는 정규직만 가입시키는 규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지지구에서는 비정규직도 가입시켜 조직률을 17.9%로 올렸다.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가 공동의 과제다.

일본의 패배로부터 배워야 할 한국의 좌파 노동‧정치운동

일본순회 9일차(2013.6.24.월). 오전 10시 30분 AWC일본연락회의 한국위원회는 서울행 후쿠오카 발 비행기를 기다리며 약식 평가회를 했다. 한국의 친일세력들이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일본 내 활동가들의 한국 입국을 막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한국 입국 시 강제 출국당한 이래 몇 년 째 한국방문이 막혀 있는 사코다 동지와 일본 회원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진지하게 한국방문단의 약평을 메모했다. 귀국과 동시에 장기간 진행 중인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치러야 했다. 1995년 AWC일본 연락회의와 만나기 시작했고 2000년 초부터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흘렀다. 그나마 깨어 있는 일본 노동자들은 그 동안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배우겠다는 열망으로 연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운동의 패배로부터 한국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때가 된 듯하다. 한국의 노동, 진보정치운동이 일본이 패배한 길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자본에 맞선 좌파노동운동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자본의 논리와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깃이다. (끝)

(<월간 좌파> 7호, 2013년 11월호 게재 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