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의대 교수와 회동 후 尹 "전공의 면허정지 유연하게 처리"
무더기 사직 못 막아.. 고려대·충북대·연세대 등 사직서 행렬
의대교수, '2천명 증원 백지화' 요구.. "백지화 '0명'은 아냐"
정부 "2천명 양보 없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만남을 가진 후 윤석열 대통령이 유연한 대처와 대화를 지시했으나 파국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의대 교수들은 25일 자발적인 사직서 제출과 외래진료 축소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이날 오전 고려대, 충북대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면허정지 처리를 유연하게 하겠다는 말만으로는 전공의와 학생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 및 배정 철회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앞세우고 있으나 정부는 2천명 증원을 철회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인 만큼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동훈, 의대 교수와 회동 후 尹 "전공의 면허정지 유연하게 처리"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이날 소속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거나, 사직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비대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전의교협은 "전공의에 대한 처벌은 의과대학 교수의 사직을 촉발할 것이며,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면서 "또 전공의와 학생을 비롯한 의료진에 대한 고위 공직자의 겁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했다.
이어 "입학정원의 증원은 의대교육의 파탄을 넘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것이 자명하다"면서 "현재 인원 보다 4배까지 증가한 충북의대와 부산의대 등 증원된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이미 교육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학정원과 정원배정 철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전의교협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의대증원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미복귀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하면서 협상 기대감이 커졌다.
정부도 의사 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위한 실무 작업에 조만간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대화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의교협은 "24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입학정원 및 배정은 협의 및 논의의 대상도 아니며 대화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무더기 사직 못 막아.. 고려대·충북대·연세대 등 사직서 행렬
전국 의대 교수들은 예정대로 이날부터 사직서를 던지고 있다. 전의교협은 사직서 제출에 전국 40개 의대 중 "거의 대부분이 동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경우 이 병원에서 근무 중인 순천향대 의대 교수 233명 중 93명이 이미 교수협의회에 사직서를 낸 상태로 전해졌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후 병원 인사팀에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져 사직서 제출 숫자는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이날 아침 안암병원 메디힐홀·구로병원 새롬교육관·안산병원 로제타홀에서 각각 모여 온라인 총회를 연 뒤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총회에는 다수의 고대 의대 학생들도 참관했으며, 이들은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함께 제창하기도 했다.
충북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교수들이 이날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은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는 제스처는 취했지만, 2천명 증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대학별 긴급 설문조사를 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견을 모은 충남대와 건양대, 아주대, 부산대, 전남대, 조선대, 원광대, 전북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부터 예정대로 사직할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6시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할 예정이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도 교수 정원이 10명인 필수의료과목에서 8명이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톨릭대의대 교수들은 26일 회의를 열어 사직서 제출 일정 등을 논의하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이와 관련해 저녁에 회의를 개최한다.
다만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도 당분간 병원에 남아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인 만큼 당장 환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의대교수 '전공의 면허정지 철회', '2천명 증원 백지화' 요구.. 정부 "2천명 양보 없다"
정부가 전날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늦추고 의사들과 대화에 나설 방침을 밝혔지만, 의대 교수들이 예정대로 사직서 제출을 시작한 것은 '2천명 증원 백지화'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천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 전공의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거두고 명예를 회복할 것 ▲ 정부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가 함께 협의체를 마련할 것 ▲ 의대 정원을 비롯한 의료정책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수립할 것을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원광대병원의 한 교수는 "어제 한동훈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처럼 보도됐지만, 교수들의 분위기는 다르다"며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알맹이가 없고 공허한 이야기만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사직서를 강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유연한 처리라는 표현으로는 면허정지 위기에 놓인 전공의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주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유연 처리를 모색한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는 '3대 때릴 것을 1대 때리겠다'는 격"이라며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내부 메일에서 "비대위는 무엇보다도 전공의와 학생의 무사 귀환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면허정지 처리를 유연하게 하겠다는 것만으로는 전공의와 학생이 무사히 돌아올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원광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면허취소를 유연하게 한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면허취소는 겁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전공의들의 분위기"라며 "2천명 증원을 철폐하고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2천명 증원' 철회를 촉구하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2천명 증원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하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며 '의대 증원'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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