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회의 검찰 개혁 입법이 검찰 당사자의 합의대로 결정돼야 할 일인가? 국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수사권 조정안이다. 라틴어와 로마법언까지 인용하며 약속을 말하고 있지만, 스스로는 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라 할 수 있는 헌법에 명문화된 국회의 권한과 입법의 원칙은 망각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검·경의 타협안을 최종 입법안처럼 하는 것도 잘못이었다.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법안 마련 과정에서 듣는 것이다. 의견 진술 기회를 주고, 청문회를 거치고 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 그런 의견 진술과 청문 과정은 수없이 있었다. 각 언론 매체에서 수많은 토론도 있었다.
국회는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의견, 검찰 개혁 요구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토대로 개혁안을 만들고 결정하면 된다. 특히 기득권 구조의 문제점을 개혁하려는 입법 조치는 국회의 자율성과 추진력이 더욱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검찰 개혁 관련해서는 국회 스스로 의무와 권한을 방기한 채, 청와대와 검찰의 눈치에 끌려 다녔다. 좀 더 정확하게는 집권여당이 그랬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합의했던 중수부폐지, 특별수사청 설치와 같은 내용은 결국 뒤로 미뤄졌다. 검찰이 반발했고, 청와대도 반대했다. 지난 3월 개혁안을 마련하고 동의했던 집권여당 인사들이 점차 소극적으로 바뀌더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손을 들었다. 그럴수록 검찰은 강하게 나왔다.
고상한 라틴어 문구까지 인용했지만, 사실 사퇴의 핵심 배경은 항의의 표시이며 검찰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국가나 국민에게 사퇴여부가 중요하지는 않다. 별 의미가 없다. 대통령이 만류해도 사퇴하는 것을 보니, 정말 정권의 레임덕은 레임덕인가 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있다.
검찰 개혁 파동과 총장 사퇴의 변을 보면서 두 가지를 교훈으로 주는 것 같다. 하나는 국회의 의무와 권한에 대한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회와 대통령 모두 국민의 뜻으로 선출돼 구성되지만, 입법의 고유 권한은 국회에 있다. 헌법에서는 1장 「총강」 다음의 2장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고, 바로 그 다음 3장이 「국회」이다. 그 다음 4장이 ‘대통령’으로 시작하는 「정부」 편이다.
알다시피, 얼마 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회담이 있었다. 반값등록금, 추경예산 문제 등 이른바 6대 회담 의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담의제들에 대통령과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핵심 내용은 국회의 의결과 입법으로 결정할 사안들이다. 그런데 청와대 회동으로 결정될 사안처럼 기대하고, 언론 또한 따라서 보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무심코 진행됐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 반복될지 모른다. 그래서 시대착오적인 ‘영수회담’이란 용어 외에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약속이다. 이번 ‘팍타 순트 세르반다’는 견강부회이고 동문서답의 인용이었지만, 약속에 대한 환기는 매우 좋았다. 헌법의 약속된 국민의 권리, 그리고 법조인들이 좋아하는 로마법의 법언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는 법조인들의 약속 아닌가. 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개혁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2011. 7. 4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manmand@naver.com)
※ ‘열린칼럼’의 글은 본 사이트 논조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 [김만흠 칼럼] 검찰력을 동원한 정치탄압인가, 수렁에 빠진 방탄정치인가?
- [폴리뉴스-상생과통일포럼 제17차 경제포럼] 김만흠 국회입법조사처장 "ESG, 글로벌 스탠다드 자리 잡아···국회 입법 역할 더욱 중요"
- 입법조사처장 김만흠·예산정책처장 임익상 임명
- [김만흠 칼럼] 다 옮긴다면서, 수도가 아니라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 [김만흠 칼럼] 비례 위성정당 파동과 비례대표제의 역설(2)
- [김만흠 칼럼] 비례 위성정당 파동과 비례대표제의 역설(1)
- [文반환점 반짝인터뷰]김만흠 “조국사태로 인사문제 컸지만, 인사기준 바꾸지 않을것” “이낙연, 총선 선대위원장 유력”
- [김만흠 칼럼] 김대중 10주기 화두, 화해와 포용(2)
- [김만흠 칼럼] 김대중 10주기 화두, 화해와 포용(1)
- [김만흠 칼럼] 선거제개혁 타협 이후, 전망과 쟁점
- [김만흠 칼럼] 양당 기득권이냐, 4당 기득권이냐?
- [김만흠 칼럼] 문대통령의 개헌론, 국회의 개헌론
- [김만흠 칼럼] 책임총리제, 안된다면 체제전환의 과도 대통령 선출해야
- 김만흠 "'지각 개원' 세비 반납이나 징벌적 가산세 부과해야"
- [김만흠 칼럼]지역주의가 아니라, 양당 독과점체제 개혁이 초점이다
- [김만흠 칼럼] 국민, 나의 국민, 내가 국민
- [동국대·상생과통일포럼 리더십 최고위과정 4기 ⑫강] 김만흠 “소용돌이 한국정치, 대통령제와 거대정당의 변화가 필요”
- [김만흠 칼럼] 제왕적 권위의식이 무력화시키는 여야의 타협정치
- [김만흠 칼럼]국회 선진화법 재개정 논란
- [김만흠 칼럼] “누구 맘대로 끝이래!”
- [폴리뉴스 좌담회②]김만흠 “안철수 신당 구체화 될수록 국민 기대감 하락 할 수도”
- [반짝인터뷰]김만흠 “최장집, 안철수와 결합 전에도 ‘진보정당 필요’ 명확히 답한 적 없어”
- [김만흠 칼럼]변화와 통합 내건 3각 경쟁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 여·야의 역전, 재역전 일어날까?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 민주당의 위기인가, 야권의 희망인가?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 ‘안철수 현상’과 정당 실패의 내막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 전선의 정치, 공생의 사회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지금은 ‘YS 키즈’의 시대?
- [김만흠의 폴리데미아]도약대 만든 손학규, 본격화된 대권 경쟁
- [김만흠 칼럼] 80분간의 생중계 회의와 대통령의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