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전수영 기자] 방통통신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의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 합병변경허가 사전동의 요청에 대비해 프로그램 기획 편성, 제작계획의 적절성에 대한 부분을 심사한다. 콘텐츠 공급원의 다양성 확보 가능성을 세심하게 살펴보게 된다. 콘텐츠 전략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SK만을 위한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 방안이다.

지난 3월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K브로드밴드는 향후 1년간 총 3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5년 동안 총 5000억 원 운용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콘텐츠 펀드는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만 있었지 방송 콘텐츠에 지원된 사례는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방송 콘텐츠 제작을 위한 펀드 조성은 콘텐츠진흥원 등 공공기관이 수행했으며, 제작 지원이었기 때문에 수익을 배분하거나 저작권을 독점하지는 않았다.

특히 1년 내에 조성하겠다는 3200억 원은 SK의 합병법인과 외부 투자자들이 수익을 목적으로 조성하는 펀드다. 민간기업의 펀드는 지원이 아닌 투자로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제작된 콘텐츠는 수익을 내야 한다. 방송 콘텐츠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경로는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방송통신 플랫폼이다.

결국 드라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1200억 원의 펀드가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볼지 아니면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SK브로드밴드의 전략으로 해석해야 할지 펀드 조성 목적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수익의 경로는 크게 주문형 비디오(VOD) 판매와 광고 수익 두 가지다. SK브로드밴드가 밝힌 계획에서는 펀드로 만든 콘텐츠 수익을 제작 주체인 방송사나 독립제작사와 분배할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VOD 거래를 놓고 지상파 방송사들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투자금으로 만든 VOD에 대해 어떤 분배비율로 협상을 진행할지 미지수다. VOD 광고는 미디어렙도 거치지 않는 직거래 시장이다. 이 때문에 수익을 내기 위해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광고와 협찬 영업에 더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맞춤형 콘텐츠를 사전 제작해 전편을 VOD 오리지널관에서 동시 개봉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새로운 시청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한국판 ‘하우스 오프 카드’와 같은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역동적인 콘텐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의 말을 풀이하면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 제작사들이 펀드로 만든 콘텐츠는 각 방송사의 실시간 편성이 아닌 SK브로드밴드의 VOD에서만 우선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조건에서 VOD 매출과 광고 수익을 협상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는 지금보다 더욱 협상력이 약화된 콘텐츠 공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만족할 수준의 시청률과 수익의 발생 여부에 상관없이 콘텐츠 펀드가 가져올 한 가지 효과는 분명하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 고비용 콘텐츠를 편성하지 못하는 종편에게 이 펀드 조성 계획은 확실한 지원을 뜻한다. CJ E&M처럼 프로듀싱 역량이 미미하고, 지상파처럼 편성 역량도 부족한 종편에게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제작비 지원은 모험에 가깝다. 도리어 종합편성 비율을 충족시킬 명분만을 만들어 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역시 수익 배분에 있어 유료방송 플랫폼에 종속되는 콘텐츠 사업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콘텐츠 펀드가 지원이 아닌 SK의 수익을 위한 것임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방안에서도 드러난다. SK브로드밴드 합병법인이 펀드로 제작된 콘텐츠를 국내 유료플랫폼 및 OTT뿐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에게도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콘텐츠 제작 지원이 아니라 콘텐츠 프로바이더(중개상)의 지위에 있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콘텐츠 유통업계는 방송사와 제작사가 어떤 플랫폼에 유통할지 결정하고 거래조건을 합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중채널네트워크(MCN), 가상현실(VR) 등 융복합 콘텐츠 펀드 600억 원과 글로벌 콘텐츠 펀드 400억 원은 사실상 합병법인이 추진하려는 OTT 플랫폼과 신사업을 위한 콘텐츠 투자일 뿐 전체 콘텐츠 시장 활성화와는 거기가 있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가 콘텐츠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콘텐츠 시장 활성화’라고 포장하고 있다. SK의 인수합병목적은 수익이 우선이지 콘텐츠 진흥이 아니다“며 ”SK의 콘텐츠 펀드의 제작 지원은 시장 활성화가 아니라 플랫폼에 방송사와 제작사를 종속시킬 함정이며, 경쟁 플랫폼 사업자들을 배제할 콘텐츠 독점의 전략“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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