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가수 문희옥이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문희옥은 우연한 계기로 가수의 꿈을 꾸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풍에서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다가 "가수 하면 좋겠다"는 교감선생님의 극찬을 들은 것. 1987년 '사투리 디스코'로 데뷔한 그녀는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이혼과 큰언니의 암 투병,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 시련이 찾아왔다.   활동을 중단한 문희옥은 이후 음악 인생에 회의감까지 느꼈다.

하지만 물심양면 도와준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그리고 가수 김연자와 '뽀빠이' 이상용 덕분에 다시 가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숱한 절망을 겪은 50년을 '무지했던 삶'이라 생각한다는 문희옥. 오히려 "지난 경험을 통해 다음 50년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1969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한살인 문희옥은 은광여고 시절인 1987년,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함경도등 지방 사투리 창작곡들을 담은 '팔도 디스코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공식적으로 360만장이나 팔렸다. 더욱이 당시 복사본을 합한다면 천만여장이 넘게 팔린 신기록을 만들었다.

문희옥은 "메들리는 정말 실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노래를 흥이 깨지지 않도록 장점을 살려 불러야 하니까"라며 "음반 판매가 많은 가수는 방송에만 의존하는 가수보다 롱런할 수 있다"고 전했다.

1990년에 《강남 멋쟁이》(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가 히트하여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당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선배가수 현철과 혼성듀엣으로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는데 기존에 무명가수가 혼성 듀엣한 음반이 아닌 인기가수로서 혼성 듀엣한 음반으로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항구 메들리》, 《해금가요 메들리》 등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메들리 음반을 발표하고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던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정통 트로트 가수이자 메들리 가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91년에 발표한 엔카풍의 정통 트로트 《성은 김이요》(조동산 작사/ 원희명 작곡)는 문희옥하면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로 손 꼽히며 당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씨 후보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상위권에 재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선거철을 맞아 각 유세장에서 가사바꿔 부르기 노래로 각광을 받아 드디어 트로트계 정상의 자리에 안착했다.

데뷔와 동시에 트로트 장르에서 최고 가수로 명성을 떨치던 문희옥은 1990년 대 《순정》, 《해변의 첫사랑》, 《현해탄》을 히트시키며 트로트 여제로 등극하였지만 락, 댄스 음악이 1990년 대에 대한민국 가요계의 주류를 이루었고 포크, 트로트 음악은 슬럼에 빠졌다.

그 중에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가수였던 문희옥은 방송출연 비중이 줄어들었다. 1995년에 회사원 김 씨와 결혼한 이후 약 3년간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지만 1998년에서야 《정 때문에》(박용진 작사/ 박용진 작곡)가 히트하면서 가수 재개에 성공했다.

문희옥은 주로 트로트 음악을 하였으나 지금까지의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난 세미 트로트 장르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 중 2002년에 발표한 《하늘 땅만큼》(정찬우 작사/ 김정호 작곡)은 패스트 템포 리듬의 트로트로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다양하게 해주는 색다른 음악이었다.

2006년에는 《사랑이 남아있을 때》(김병걸 작사/ 임종수 작곡)를 발표하고 정통 트로트로 성향을 바꿔 다시금 트로트 여제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문희옥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해내며 SBS 오락프로그램 《도전 1000곡》에서 여러번 우승을 거머쥐고 2011년에 방송한 tvN 오락프로그램 《오페라스타 2011》에 출연하여 실력파 가수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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