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 직전까지 여야 갈등...“민주당 자신들 득실만 따져”vs“무조건 사 주자는 것 아냐”
국힘 “독재폭거, 포퓰리즘...대통령 재의요구권 발동해 국회 의사 재확인해야”
민주 “거부권 행사 안 하는 게 바람직, 행사 시 다른 입법 도전할 것”
대통령실 “재의요구권 발동, 각계 우려 포함 경청해 숙고”...첫 거부권 행사 가능성
방송법 개정안도 양곡관리법 수순...정국 경색 예고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2023.3.23 [사진=연합뉴스]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2023.3.23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서정순 기자]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법)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찬성 169표, 반대 90표, 무효 7표로 양곡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민주당은 지난 21일 직회부 한 '방송법 개정안'도 본회의에서 강행한다는 방침인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에 대해 첫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아 정국 경색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대통령실 "양곡법, 각계 우려 의견 숙고할 예정"... 대통령 첫 거부권 행사 가능성

민주당이 제출한 양곡법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수용한 것으로,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증가하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떨어지는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존 양곡관리법에 ‘매입 할 수 있다’고 돼 있던 것을 반드시 매입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쌀 재배 면적이 증가하면 매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도 담겼다.

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데다 민주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다른 방법의 쌀값 안정화 입법을 하겠다고 밝힌 바, 양곡법 갈등 봉합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곡법의 국회 통과 후 대통령 재의요구권이 화두에 오르자 대통령실에서도 빠르게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양곡법에 대한 문의가 많아 알려드린다”며 “법률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혀 윤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간 대통령실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국익에 배치되는 법안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법안,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 처리로 통과한 법안 등에 대해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대통령실은 양곡법이 이 원칙에 상당 부문 포함된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공개적으로 요구했기에 대통령실이 재의요구권 행사 절차에 착수할 것이란 관측이 높게 나온다. 윤 대통령이 양곡법 재의를 요구하면 취임 후 첫 거부권 행사가 된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브리핑을 열고 “부작용이 너무나도 명백하다”며 “장관으로서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再議)요구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힘 “지난 文 정권 쌀 농정 실패 가리기 위한 의회 독재 폭거”

국민의힘은 양곡법 통과 직후 논평을 내고 민주당을 맹공하며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발동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지난 문재인 정권의 쌀 농정 실패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위헌적 법안을 숫자의 힘만 앞세워 관철하는 것은 의회 독재 폭거”라고 했다.

이어 양곡법을 두고 “반시장적 사회주의식 포퓰리즘 법안” “반헌법적 법안” “반농업적 법안”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무리한 양곡법 처리 강행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농촌이 감당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발동으로 양곡관리법은 가중된 다수결로 국회 의사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률안에 대한 재의결에는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민주당 단독 처리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농립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병훈 의원 및 간사 김승남 의원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민주당 입장을 설명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법안 재의 요구는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하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 권한이긴 하지만 거부권 행사를 안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아울러 “만약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치적 책임 역시 대통령이 져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민주당은 이와 다른 방법으로 (쌀값 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를 추가로 만드는 입법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혀 양곡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장기화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인 2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수라청연합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관계자가 지난해 수매한 벼를 살펴보고 있다. 2023.3.23 [사진=연합뉴스]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 표결 절차를 밟을 예정인 2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수라청연합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관계자가 지난해 수매한 벼를 살펴보고 있다. 2023.3.23 [사진=연합뉴스]

與 “쌀값 안정화”- 野 “국가 재정 부담” 갈등 이어져

민주당은 쌀값 하락을 막고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양곡법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쌀을 의무적으로 정부가 매입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국민 1인당 쌀 생산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쌀의 초과 생산량을 부추기고 연간 1조원 이상 국가 재정지출을 부른다며 반대한다.

양당은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도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 세계 유례가 없는 기네스북에 올라갈 만한 폭력적 국회운영이 계속되고 있다”며 “민주당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좀먹고 성장 잠재력도 갉아먹었던 과오를 반성해야 할 판에 미래까지 갉아먹으려고 한다. 이제 이성도 상식도 잃어버린 정당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양곡법도 그렇고 방송법까지 자신들만의 도그만(신념)에 빠져있다”면서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하려는 법안들을 보면 민주당은 무조건 자신들의 정치적 득만을 따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주당은 양곡법 및 방송법을 여당 의원들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박홍근 민주당 대표는 “개정안은 남는 쌀을 무조건 국가가 사 주자는 게 아니라, 쌀 수매 의무가 발생하기 전 콩·밀·조사료 등 타작물 재배를 지원해 쌀 재배 면적을 적정하게 줄여나가고 식량 자급률도 높이자는 취지”라며 “쌀 재배 면적이 늘어도 시장 격리를 하지 않을 방안도 담았다”고 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쌀값 안정화를 위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마지막까지 원만한 처리를 위해 노력했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의장의 거듭된 중재안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대통령 거부권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여야는 김진표 의장 중재로 양곡법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막바지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본회의 당일인 23일 오전에도 여야 간 긴급 회동을 가졌으나 합의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쌀 초과 생산을 부추기고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의무 매입 조항이 있는 한 협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곡 시장뿐 아니라 농업 전체에 큰 붕괴를 가져올 법안”이라고 말했다.

의석수 과반을 보유한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만큼 단독으로라도 강행 처리에 나설 것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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