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본회의 상정 보류…민주당 27일 본회의서 처리
의협, “간호사 단독병원 개설 우려, 직역별 개별법 난립”
간협, “초고령사회 지역사회돌봄 필수, 국민건강증진 이바지”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간호법 저지를 위해 16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에 모였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간호법 저지를 위해 16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에 모였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황정일 기자]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던 ‘간호법 제정안’ 상정이 보류된 가운데, 간호법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 간 내홍이 심해지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의 ‘직역(특정한 직업의 영역이나 범위)’ 다툼으로 보이지만, 법안을 둘러싼 양측의 속내는 ‘실리’ 챙기기부터 ‘자존심’ 싸움까지 매우 복잡하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이다.

간호사·전문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여당은 지난 11일 간호법 제정안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바꿔 추진하고,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은 기존 의료법에 존치하자는 중재안을 냈다.

민주당은 13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표결에 부치기 위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 안건’ 처리를 요구했으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동을 걸었다.

김 의장은 본회의장 의장석으로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논의한 뒤 “정부와 관련 단체 간 협의가 이 문제로 진행되고 있어서 여야 간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간호법 대안은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절차, 내용에 하등 문제가 없는 법안을 의장이 독단적으로, 의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또 거부하면서 의사 일정을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매우 유감이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13일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안건 상정이 끝내 보류되자, 민주당 의원 전원이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을 일제히 퇴장했다. 다음번 본회의는 오는 27일 열린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4일 간호법 제정안 상정을 보류한 김진표 국회의장을 향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오는 27일 본회의에서는 반드시 원칙대로 간호법과 의료법을 포함한 민생법안을 처리하겠다”라며 “김 의장도 국회 수장으로서 민생법안의 조속 처리를 바라는 민심을 우선해달라”고 촉구했다.

◆ 보건복지의료단체 ‘총파업 결의대회’ vs 간협 ‘국회통과촉구 문화마당’

간호법 제정안 상정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 간의 갈등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16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에 모여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단체들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요양보호사 등 약소 직역의 업무영역을 침탈하는 간호법은 의료 악법이자 간호사 특혜법, 거대 야당의 입법 독재를 등에 업은 직역 이권법”이라며 간호법 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집회 참가자 수만명은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뒤 서울역광장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지난 2월 서울 여의도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 대회를 열기도 했다.

반대로 대한간호사협회 회원 등 간호사들은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등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 62만 간호인과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간호법 통과 촉구를 위해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문화마당’을 진행한다.

2021년 3월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의 본회의 상정 및 국회 통과를 염원하는 간호사 500여명의 외침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2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수요한마당을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간호법이 ‘부모돌봄법’임을 알리는 민트 프로젝트의 대표색을 활용해 물품들을 구성했다. 참가자들도 민트색 마스크와 스카프를 착용 중이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사협회 회원 등이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사협회 회원 등이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 의협 “의료현장 혼란 가중” vs 간협 “보건의료 체계 강화”

간호법 제정안을 두고 의사와 간호사 간 입장의 차이가 극명해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의사협회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의사 없이도 간호사 단독으로 병원을 차리는 수순이 될 것으로 의심한다.

의협은 이 근거로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라는 간호법 1조를 꼽는다.

이 중에서도 ‘지역사회’라고 명시한 부분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간호업무 범위를 지역사회로 확장한다는 건 결국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간호협회는 간호사의 단독개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미 의료법 제33조에서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고, 간호법 내 31개 조항 어디에도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는 것.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논란을 키우는 데 대해서도 간호사가 병원을 벗어나 노인·장애인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간호·돌봄 서비스를 하도록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의사협회는 또 간호법이 제정되면 의료계 내 직역 간 업무 범위가 충돌함으로써 의료현장에 혼란이 가중된다고 주장한다.

현행 의료법 개정으로도 충분히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별도의 간호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면 응급구조사협회, 대한방사선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의 보건의료단체도 별도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간호협회는 간호법이 간호인력의 정의, 업무, 양성, 확보, 배치 등 간호에 관한 총괄적 법률로 직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받아치고 있다.

특히 간호사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등을 포함한 간호인력 전체에 대한 수급, 양성, 장기근속 등에 대한 근간을 마련해 국민 건강은 물론 보건의료 체계를 더 튼튼히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간호법에 반발하는 건 의사협회뿐만이 아니다.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하므로 현장에 있는 간호조무사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말한다.

간호조무사협회는 성명서에서 “간호사들은 간호인력 처우 개선을 하기 위해 간호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기존 의료법에 있던 독소조항을 그대로 가져와 개정할 논의조차 하지 않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응급구조사협회와 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방사선협회 등도 간호법 제정에 맞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성명에서 “간호법은 누구도 통제 불가능한 ‘간호제국’의 탄생을 허용해 주는 것”이라며 “이미 간호사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현장(지역사회) 응급구조사의 엄무 영역이 간호사의 손아귀로 흡수당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에 따른 업무 침해가 없는데도 관련 단체들이 의사협회의 거짓 주장에만 동조한다고 반박한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 면허 범위 내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타 직역에 대한 업무 침해, 침탈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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