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협 VS 13개 의료단체 ‘간호법’ 두고 의견 팽팽
간협 "간호법은 선진 의료시스템 구축의 토대”.. “직역 파괴는 과도한 주장"
의협 등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원할 수도"
국민의힘,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 건의 할 것"
야당 "대통령 거부권 남발 反민주주의.. 의회 존중해야"

대한간호협회 법안 통과 환영 [사진=연합뉴스]
대한간호협회 법안 통과 환영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의료계 내부에서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간호협회는 법안 통과에 ‘환영’ 메시지를 보냈으나 의협 등 13개 의료단체는 ‘총파업’을 선언하며 의료계 내부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당초 간호법 제정에 지지를 표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직회부한 간호법 제정안은 27일 오후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181명 중 찬성 179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반대 토론을 한 뒤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에서 퇴장, 표결에 불참했으나 간호사 출신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과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은 당 방침과 달리 본회의장에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최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법안 통과를 호소하는 찬성 토론을 하며 토론 후 야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토론에서 최 의원은 "간호법은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기 위한 법이자 숙련된 간호 인력 확보 등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담고 있는 법"라며 "그런데 간호법을 두고 일부 보건의료단체 등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개설해 의사의 의료 행위를 침해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 의료법 제33조에 따라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의해서만 개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찬성토론하는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사진=연합뉴스]
찬성토론하는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 [사진=연합뉴스]

간호법 두고 의료계 내부 갈등 심화

이번에 통과된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으로, 간호사,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간호법 제정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입법 과정에서 간호사와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인 단체가 각자의 논리로 법안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왔다.

간호협회는 간호사의 업무 명확화, 적절한 노동시간, 근무환경 처우 개선 등을 위해 간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로 간호·간병서비스 수요가 증가하는 현실을 감안해 간호사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지난 10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간호법은 부모돌봄법, 존엄돌봄법, 국민행복법을 지향하며 선진 의료시스템 구축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대국민 호소이자 법안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반면, 간호사를 제외한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보건의료단체는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이 업무범위를 침해하고 의료 체계를 붕괴하는 단초가 된다는 입장이다. 또, 간호법 제정을 시작으로 간호사들이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개원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의협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8일 공동 총파업 결의문을 통해 "간호법으로 인해 보건의료체계가 참혹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보건의료직역 간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의료현장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간협 김 회장은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 면허 범위 내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타 직역업무 침해, 침탈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현재 타 직역의 업무를 침탈하는 일이 병원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병원의 경영자이자 병원장인 의사가 불법적으로 타 직역의 업무 수행을 간호사에게 지시하기 때문”이라고 의협에게 책임을 돌렸다.

또 “간호사의 구급·응급 업무는 법적 근거에 따라 수행하는 것으로, 간호법과는 관련이 없다”면서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응급구조사 등 직역들이 의협에 동조하며 동일 행보를 보이는 게 보건의료현장의 동료로서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간호법이 발의 되는 과정에서 여야의 힘겨루기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간호법 명칭을 간호사법으로 바꾸는 등의 '중재안'을 마련해 대한간호협회에 제시하고 협상을 시도해 왔으나, 간호협회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절충안 마련에 실패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 13일 본회의에서 '여야 간 추가 논의로 다음 본회의까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라'며 야당의 간호법 제정안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걸었으나 여야 간 논의에 진전이 없자 결국 27일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간호법 제정 반대' 단식 농성 중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사진=연합뉴스]
'간호법 제정 반대' 단식 농성 중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사진=연합뉴스]

의료단체 ‘총파업’ 선언.. 의료계 갈등 2라운드 돌입

간호법이 통과되자 대한간호협회는 환영 성명을 냈으나 나머지 의료단체는 ‘총파업’을 선언하며 의료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간협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간호법은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적 돌봄을 위한 법률이자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 적정배치, 숙련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를 법제화했기 때문에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를 포함한 13개 보건의료단체는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에 반발해 연대 총파업을 선언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오후 늦게 단체장회의를 열고 "간호법 및 면허박탈법 강행 처리를 규탄하며 연대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등을 규정한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하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에서 통과되자 "원점으로 되돌리라"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27일 간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에서 규탄문을 낭독한 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박명하 의협 비대위원장은 27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앞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모든 책임은 법을 통과시킨 주체에 있다"면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두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끝까지 하나된 목소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가 지난 7일부터 19일까지 의협 회원들을 대상으로 간호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성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파업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협 등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원할 수도" [사진=연합뉴스]
의협 등 "의료시스템 붕괴 우려".. "간호사 단독 의료기관 개원할 수도"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까?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간호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야권과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이 윤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대한간호협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간호협회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국민의힘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 대선후보가 직접 약속을 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다수 언론들도 “윤석열 후보가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고 보도했고, 윤 후보의 온라인 공약플랫폼 ‘공약위키’에도 ‘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한 간호법 제정 추진’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간협은 전날 성명에서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공약위키를 통해 약속했던 간호법은 국민의 보편적 건강권과 사회적 돌봄의 공적 가치를 실현할 뿐 아니라 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는데 이바지할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반면, 의협 등 다른 보건의료단체들은 "직역 간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간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이상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통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전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끝내 강행처리한다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바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국회가 통과 시킨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은 ‘反민주주의’라고 견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대선공약인 간호법을 거부권 행사하신다면 작년 대선 때 공약을 잘못 내걸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거라 난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앞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에 대해서도 “지난 가을에는 예산을 집행했는데 1년도 안 돼서 예산낭비니 안 된다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하며, “그내년 총선에 활용하기 위해서 일당독주, 일방독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서 일부러 민생현안까지도 야당이 밀어붙이도록 유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2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신의 뜻과 다른 모든 법안들을 거부한다고 하면 국회가 도대체 왜 있어야 되나”라며, “민주주의 하지 말자 그리고 대통령실하고 국민의힘하고 그리고 검찰하고 이렇게 국가를 다 운영하겠다. 차라리 이렇게 선언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본인의 뜻이 그 안에 충분히 입법부에서 결정에 담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셔야 된다”라며, “사사건건 자신과 반대되는 뜻은 다 거부하겠다 이렇게 얘기하시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거부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의료법 개정안도 여당 반대 속에서 처리됐다. 국민의힘이 항의 뜻으로 본회의장에서 퇴장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의료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177명 중 찬성 154명, 반대 1명, 기권 22명으로 가결됐다.

이 법안은 의료인이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면허를 취소(단, 의료행위 중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제외)하는 등 의료인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진표 의장은 지난 26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의료법 개정안 내용 중 '모든 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라는 문구를 '성범죄나 강력범죄'로 한정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당초 민주당이 마련한 원안 그대로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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