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지난 31일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 회견에서의 언론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표현에 뒤이어 발표되었기 때문에 정치권과 해당 언론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이번 세무 조사 대상 언론사로는 조선·동아·중앙·한국·국민·문화·한겨레·경향·한국경제신문사 등 중앙 일간지들과 연합뉴스,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서울방송 등 중앙 언론사와 일부 유력 지방 언론사가 포함된다.
국세청은 각 언론사의 회계장부에 광고수입과 판매수입, 이자수입, 각종 수당과 인건비, 접대비, 소모품비 등 95년부터 99년까지의 수입과 지출이 적정하게 계산되었는지 여부와 주식 이동 상황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인터넷 바람으로 인해 최근 경쟁적으로 생긴 언론사 인터넷 자회사들도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달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 개혁을 강력히 시사한 후에 나온 조치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해당 언론사들은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와 언론인단체는 적극적으로 환영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언론인 단체들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1일 논평에서 "이번 세무조사를 계기로 수 차례 제기됐던 언론사들의 탈세의혹과 부당한 부의 세습과 증식, 불공정 거래관행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환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이번 세무조사는 언론개혁을 위한 하나의 기폭제라면서 왜곡된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철저한 세무조사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언론사와 여야는 각기 다른 반응
조사 대상중 하나인 한겨레신문은 이번 세무조사에 대해 지지하는 논조의 기사를 많이 싣고 있다. 2월 1일자 신문에 유일하게 머릿기사로 다루었다. 국세청 발표에 대한 배경, 전망, 각계 입장 등 이와 관련한 해설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또한 이례적으로 안정남 국세청장의 인터뷰까지 실었다.
반면에 사주가 있는 조선·중앙·동아 일보는 언론개혁을 시사한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때와는 달리 연합 뉴스 기사 위주로 보도하면서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철저한 세무 조사를 촉구하는 간단한 논평을 낸데 비해, 한나라당은 이번 발표를 '언론 길들이기'로 규정하고,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민주당은 1일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방침에 대한 논평을 내고, "모든 국민은 납세의무를 지고 있으며 언론기관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면서 세무조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즉각 성명을 내고 "대통령이 언론개혁 운운한 뒤 공포감을 느끼게 한 후에 나온 세무조사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세무조사의 중지를 촉구했다.
권 대변인은 또한 덧붙여 "최근 언론보도에 불만을 품은 정권이 언론의 목 죄기와 자금차단, 세금추징 등을 통해 `언론 길들이기' 작업에 돌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역대 정권 언론사 세무 조사를 악용

이처럼 야당이 국세청의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배경에는 그 동안 역대 정권이 세무조사를 언론 길들이기로 적절히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군사 정권은 세무조사 면제와 세금 감면이라는 특혜를 언론사에 베풀며‘길들이기’를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부 언론사는 마치 공룡과 같이 거대하게 비대해졌으며, 우리 언론 시장 구조는 왜곡되었다.
김영삼 정권은 정권 초기 강력한 언론개혁을 시사하였다. 그리고, 지난 94년 14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였으나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세금 추징도 이뤄지지 않고 흐지부지 하였다. 결국 김영삼 정권은 세무조사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심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세무조사 결과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법적으로는 자산 100억원 이상 법인에 대해서는 5년마다 한차례씩 세무조사를 실시하기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무조사는 99년도에 세계일보와 몇몇 지방지에 대한 세무조사를 제외하고는 현정부 들어 처음이다. 국세청측도 언론사만을 제외해온 이제까지의 관례가 잘못되었다면서 이번 조사는 당연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지금까지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를 꾸준히 요구해 온 시민단체와 국민들의 의견은 무시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국세청이 갑작스럽게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현 정권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
또한 여권과 국세청은 지난 정권들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악용한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여당은 항상 현 정부는 과거의 권위적 정부와 다르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정부가 보여 온 모습들은 과거 권위적 정부의 구태의연한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현정부가 지난 99년 실시한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현회장)이 사주로 있는 보광그룹과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도 투명하고 공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정부를 지지하지 않은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한 일각에서는 강력히 반발하는 야당과 일부 언론사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세무조사 실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세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던 처사가 불러온 여러 가지 악영향에 비춰볼 때 이번 세무조사 결과는 반드시 공개돼야 여러 가지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