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정치자금에 대한 영장없는 무한 계좌추적권을 부여 여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장없는 무한 계좌추적권 부여만이 불법 정치자금을 근원적으로 없애는 방안인가에 대한 비판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을 포함할 것을 여야가 합의하면서 정치권은 새로 만들어질 재경부 산하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정치자금에 대한 영장없는 무한계좌추적권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제한적인 권한을 줄 것인가로 논쟁이 옮아가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은 애초에 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을 제외시켰다가 여론 및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서자 마지못해 '정치자금'은 그 대상에 포함시키되 FIU에 무한계좌추적권을 부여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표대결이 주목되고 있다.

여야, 사실상 무한계좌추적권 부여 반대

민주당은 금융정보분석원의 무한계좌추적권도 부여하면서 야당과 협상을 하되 합의되지 않으면 표결 처리를 밝히고 있다. 이상수 원내총무는 "계좌추적은 본계좌의 앞뒤계좌를 영장없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협상하고, 선관위 통보조항 삭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심 민주당 의원들 역시 무한계좌추적권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치자금에 FIU의 무한계좌추적권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또 불법정치자금과 관련한 금융거래 내용을 금융기관으로부터 접수하면 즉각 선관위에 알리고 선관위는 10일 이내에 해당 정치인에게 통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문제는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그 동안 검은 돈에 대한 의혹을 받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검찰, 국세청, 선관위에서 충분히 계좌추적을 해왔다.

그런데 독립 기구도 아닌 행정부 산하의 FIU에 영장없는 무한계좌추적권을 포함시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정치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정치인들에게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뿐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의 한 달 평균 지출이 3천만원을 웃돈다는 보도도 있다. 그만큼 정치자금이 중요하며 그 자금줄이 막히면 정치적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 연구실장은 "이번 돈세탁방지법의 취지에도 정치자금이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돈세탁방지법의 기본 취지는 범죄자나 범죄집단의 돈세탁 행위를 적발하여 자금원을 차단함으로써 범죄집단의 존립근거를 와해시키고, 나아가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활성화하자는 데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일반 범죄자나 범죄조직들이 불법 자금을 돈세탁하는 액수는 연간 수 십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치인 입장에서도 정치자금에 대한 무한계좌추적권을 부여할 경우 불법 정치자금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자금도 불법적인 것으로 국민 사이에 인식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후원회를 통한 합법적인 정치자금모금 활동도 위축되어 정상적인 정치활동에 저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장실장은 또 FIU의 무한계좌추적권의 핵심에 대해 "지금까지 불법적인 혹은 의심스러운 금융거래에 대해 여태까지 금융기관이 이를 사법당국에 보고한 예가 없으며 또한 이를 다룰 책임기관이 없다는 데 있다"며 "따라서 이 법안의 핵심은 정치자금에 대한 계좌추적이 아니라 일반 범죄자나 범죄조직의 자금추적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민련 이완구 원내총무는 FIU의 무한계좌추적권에 찬성하면서도 "계좌추적권 남발에 따른 (현재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경찰·검찰·감사원·국세청·선관위에서 계좌추적권 부여상태) 개인금융정보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있다"며 "옥상옥으로 FIU에 무한계좌추적권 부여는 개인 금융사생활 침해에 커다른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무한 계좌추적권, 야당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특히 한나라당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FIU의 무한계좌추적권을 포함할 경우, 야당 탄압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야당의원들은 지난 안풍이나 세풍,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거치면서 검찰과 국세청을 통해 조성한 불법적인 계좌추적으로 탄압받았다고 믿고 있는 형편에서 FIU에 무한계좌추적권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야당탄압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막강한 권력이 집중된 현실에 비추어 FIU의 무한계좌추적권을 통한 야당의 정치자금 수사는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독립기구를 표방하고 있는 검찰이나 국세청, 선관위조차도 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속에 행정부 산하(정확히 재정경제부) 일개 금융정보분석원에 무한계좌추적권을 줄 경우 야당의 돈줄을 막아 야당의 정치활동 및 정당운영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우려한다.

사실 민주당에서도 속앓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민주당 역시 내년 대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형편에서 야당이 될 경우 지금 한나라당의 우려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고려해 사실 무한계좌추적권 부여에 제한을 두거나 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인으로서 천정배의원이나 조순형의원측에서는 무한계좌추적권 부여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옥죄는 족쇄가 될 수도 있음에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정배, "정치자금의 현실화를 위해 허용해야", 이종걸, "정치자금법에 세탁금지 신설"

천 의원의 입장은 FIU의 계좌추적권에 대해 "영장 없는 계좌추적을 금지한다면 그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된다"며 이번 민주당의 본 계좌의 앞뒤계좌를 영장없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당론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천의원측이 FIU의 무한계좌추적권 부여에 적극적인 또 다른 이유로 "정치 자금법에 의하면 대선주자의 경우, 1년에 3억, 선거기간의 경우 6억을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최소 몇 십억 이상을 쓰는 해당 대선 주자들은 모두 다 범법자"라며 "정치자금의 현실화를 위해서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며 "불법정치자금에 한해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것이 법 취지에도 맞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106개 대상항목에서 불법 정치자금, 마약밀매, 조직폭력 항목 등에 일반인 해당 사항은 없다"면서 "취지에 어긋나게 권한이 남용한다면 처벌법규를 두어 엄벌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여야 지도부가 정치자금을 돈세탁방지법에 포함시키기로 당론을 결정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이종걸 원내 부총무는 "야당이 정치자금에 무한계좌추적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보완책으로 정치자금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무는 "사실상 FIU가 자금세탁방지 및 불법자금의 유출입 방지에 그 본래적 기능이 있어 FIU가 혐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시비가 일 수도 있다"며 "대가성 있는 정치자금수수관련 자금세탁행위는 범죄수익규제법상 처벌대상이 되는 뇌물범죄·변호사법 위반죄·알선 수재죄 등으로 규율할 수 있으며, 순수한 정치자금 수수행위는 현행 정치자금관계법 보완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돈세탁방지법은 깨끗한 정치자금을 위한 법적제도로 가는 호기를 열 것인가 아니면 정상적인 정치활동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인가에 논란이 남아있다. 나아가 여야간 최초로 크로스보팅이 이번엔 가능할 것인가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홍준철기자(jchong2000@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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