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방미 문제가 정쟁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미국내 매파의원들의 개별적 초청으로 그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인권과 자유'를 이유로 '황씨의 방미 허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정쟁화 중지'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야당 및 보수층은 '인권적 차원', '자유로운 활동' 등을 이유로 방미 허용을 주장하고 있어, "황씨 방미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아지고 있어 '황씨 방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황씨 방미, 미국내 매파들의 정치적 이용물이 될수도
정부가 황씨의 방미를 불허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초청대상자가 공화당 매파들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내 극우파들의 '대북 강경정책'의 일환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한미, 북미,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문제이다.
"황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체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할 경우, DJ가 '당국자대화 성사를 시사'하기도 했듯이 장기간의 소강 상태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정일이 남북, 북미관계 악화 책임을 남한정부에 떠넘길 가능성도 있다.
황씨를 초청한 제시 헬름스 미국 상원 전 외교위원장, 하원의 핸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 공화당 정책위의장 등은 공화당 내 강경파로 익히 알려진 인물들이다. 때문에 이들이 미국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더 강경하게' 바꿔 놓기 위해 황씨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7일 관영 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대조선 강경책에 더욱 입김을 불어넣어 우리를 고립 압살해 보려는 어리석은 책동의 일환"이라며 "황씨가 방미할 경우 대응 조치할 것"임을 밝히며 황씨의 방미 기도에 쐐기를 박고있다.
한편 미국내에서도 이들 초청자들과는 달리 황장엽씨 방미에 대한 이견이 조율되지 않고 있다. 오는 27일 방한 예정인 파월 국무부장관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하는 온건파이고, 그 때문에 미 국무부에서도 황장엽 방미로 인한 북미관계의 경색을 바라지 않고 있어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초청도 아니어서 신변안전 보장도 확답 못받아
두 번째는 황씨의 초청이 미 정부차원이 아닌 미국내 공화당의원 개인적 차원이라는 점도 문제가 되고있다. 황씨에게 보내온 초청장은 공화당 매파 3인 및 민간단체인 디펜스포럼재단 수잔 솔티 회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초청장을 보냈다.
때문에 미 정부 차원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이들이 황씨를 이용해 미국내 대북관련 정치공방을 심화시켜 미 정부에 대북 강경정책을 압박하고 이로 인해 한미관계 및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사실상의 내정간섭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정부는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채 미국의 공식 초청도 아닌 일개 공화당 보좌관이 정부가 보호하고 있는 특수신분의 망명객 초청 담당자로 왔다는 사실에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황씨가 만일 미국으로 망명할 경우, 정부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한 외교소식통은 "황씨가 미국에 망명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데 미국도 이 경우 한국과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기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미 정부차원의 공식초청이 아니기 때문에 신변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공화당 의원이 "신변보장을 위해 해당기관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해당기관인 미국무부는 원론적인 조처 이상의 것은 취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정부와 신변안전 문제를 협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있어 신변안전 문제만 따로 해결될 수는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 황씨문제 정쟁화
현재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기본 입장하에 "일단 미국이 황씨의 초청을 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황씨가 방미했을 경우 신변안전 문제를 보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 후 그 때가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황씨 방미 문제'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관계와 평화 실현이라는 대승적 관점보다는 국내의 정치적 쟁점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황씨는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한나라당도 연일 "황씨의 자유로운 방미"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총재는 "자유를 찾아온 사람의 자유스런 활동을 막고, 초청자 측에서 안전을 책임진다는 데 신변안전을 이유로 막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정부는 뭔가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 나올까봐 겁을 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YS도 이에 동참해 "황씨에게 자유와 인권을 안겨준, 당시 대통령으로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오늘의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공세를 폈다.
황씨 방미문제,정파적 이해가 아닌 국익과 한반도 평화가 우선되어야
그러나 이러한 한나라당의 입장에 비판적 목소리가 높다.
현재 미 국무부도 공식적으로는 발을 뺀 상태이어서 이 사안으로 국가 대 국가의 한미외교적 마찰은 크지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이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단지 DJ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격거리로 삼아 정쟁화시키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다.
민주당은 "이미 황씨의 북한에 대한 주장은 거의 모두 공개되다시피 해 새로울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황씨 방미 문제를 가지고 흠집내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황씨의 경우 일반인이 아닌 특수 망명자로서 한미, 북미, 남북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정부여당의 입장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정부와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신변안전 문제를 협의하면 끝나는데 한나라당이 한미, 남북관계를 이간질시키려는 책동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의 이부영, 김원웅 의원 등 개혁의원들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용 목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부영 의원은 "황씨의 방미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알아서 대처할 문제고 국익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북한실장은 "황씨를 초청한 것은 공화당 매파가 황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며 "자유인이면서도 공인인 황씨는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단순한 자연인이 아닌 '정치적 망명자'이고 그 때문에 황씨는 자연인의 인권차원이 아닌 국익과 민족화해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황씨 초청 당사자가 미 국무부의 정부차원이 아닌 미국내 매파 몇명에 의한 개인적 초청이라는 것은 결국 이들의 초청 목적이 남북화해가 아닌 남북분열 차원으로 악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