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군비증강에 나서는 한편, 역사교과서 왜곡내용 수정을 거부함으로써, 정부여당, 야당, 언론 등이 그동안의 대립을 뒤로하고 '강력한 일본 성토'에 나섰다. 이를 두고 한일관계 악화를 정국 전환의 계기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관측되는데...

정부는 유례없는 강경한 대응조치를 모색하는 한편,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도 극한 용어까지 총 동원해 일본측을 비난하고 나서 한일관계는 최악의 충돌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조선 신경무 만평[2001.07.10]
'전쟁'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는 한일관계를 놓고 정부, 정치권, 언론사 등이 일제히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것과 아울러 언론사 세무조사 및 황장엽씨 방미 문제를 둘러싸고 극한 대립 양상을 보여왔던 국내 제 세력들이 국면전환을 위한 계기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돼 주목되기도 한다.
의도된 일본의 도발, 정부는 점진적으로 대응 수위 높일 듯
정부는 일본이 의도적으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끌고 가고 있다고 판단, 이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98년 10월 한일 두 정상이 서명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신 한일관계' 모색에 적극 나서는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대일관계가 미래지향적이라는 평을 들어 왔던 DJ정부는 한일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정부는 "이러한 '신 한일관계'를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인식 속에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파기 △일본문화 개방 중단 △주일대사 소환 △일본의 유엔안보리상임위 진출 반대 △유엔 등 국제회의서 지속적 문제제기 △북한, 중국과의 연대 대응 △천황을 일왕으로 호칭 변경 △한일 연례 정상, 각료회담 중단 등 강경 대응책을 적극 검토 중이다.
특히,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고립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달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는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 중국 등과 함께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를 규탄할 예정이고, 오는 25일 열리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외무장관회의에서의 한일양자회담 거부도 검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교과서 수정안을 관철시키기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 일본의 대외 위상에 치명상을 주는 효과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대일 '강경발언'-국론결집 통한 내정위기 극복인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이번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최후통첩이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의 고강도의 발언까지 했고, 장을병 민주당 최고위원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과 선린관계는 있을 수 없다"고 분노의 강경 발언을 하였다.
특히, 그동안 일본에 대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던 JP도 "일본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교육시킨다면 한일 우호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해 다시 전쟁이 일어날까 걱정이 많은데, 이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한 어조로 일본 연립 여3당의 간사장들에게 강조하며 '반일'부분에서 정부여당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이렇듯 여권에서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극한 말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제사회의 합리성을 강조한 그동안의 외교적 언사를 보아 특별하기도 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국민들의 "對일본 보복의지"를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해석을 하고 있다. 즉, DJ가 반일 감정이 높아가고 있는 국민정서에 기대어, '한일관계'를 뛰어 넘어 국정운영의 한 전환점으로 삼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책실패로 민심이반이 심각했고, 김정일 답방 및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국론분열 현상마저 보였다. 이로 인한 DJ정부의 지도력 실추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극대화하고, '克日로 국론을 결집'시켜 월드컵까지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한마디로 내정의 위기를 외환으로 극복하자는 것인데,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외교적인 문제를 정권적 차원으로만 해석하려는 측면도 강해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대일문제-정국반전의 기회로 삼은 정치권과 언론
한일관계 악화를 계기로 정치권에 미묘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JP가 DJ를 적극 돕고 나선 것을 보면 흔들리고 있던 DJP 공조가 다시 힘을 받고 있고, 여권은 국면을 새롭게 전환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민들의 반일감정 때문에 야당도 '일본 성토'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일본이 더 이상 아시아의 평화를 원치 않고 있으며 동북아에서 상호주의의 원칙을 깨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논평을 내는 등 이미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일본을 규탄하고 있다.
언론들도 일본 성토에 거의 모든 지면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각계각층이 일본을 성토하고 나섰다. 국민적인 반일 감정의 표현이다.
이렇듯 국론분열 현상을 보이고 있던 국내 상황은 일시에 "일본 성토"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이나 야권, 일부 언론도 언론사 세무조사로 인해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고 있던 대립점을 돌려놓을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터에, 때마침 터진 한일외교 문제를 여야나 언론 모두 정국 반전의 기회로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