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으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단체의 대응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시민단체가 '불법'이라 하더라도 총선연대식 비판, 감시기능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합법적인 '후보전술'로 바꿔야 할 것인가 논란이 일고 있다.

"비판과 감시의 NGO기능에 더욱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후보를 직접 참여시켜 제도정치권으로 들어가 정치세력화할 것인가?"

◀ 지난 12일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열, 지은희, 박원순씨(왼쪽부터) 등 총선시민연대 지도부들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바꿔 열풍'을 일으켰던 총선연대 지도부들이 벌금형의 철퇴를 맞은 이후 시민단체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특히나 이번 대법원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에 대한 유죄판결로 인해 그동안 시민단체가 고수하던 전통적인 정부 감시 및 비판기능이 '불법활동'으로 낙인찍혀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이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됨으로서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대응방식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낙선운동에 대한 위법성 논란과 더불어 내년 있을 지방선거에 시민단체들의 '후보전술' 논란 등 참여방식 문제까지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YMCA와 환경연합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후보전술'을 택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전환해야 한다고 표방하고 나선 반면, 참여연대 및 경실련은 시민단체의 정치참여에 회의적인 반응과 더불어 법적인 테두리를 넘나들더라도 기존의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과 유사한 전통적 시민단체 역할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 사법부 판결을 계기로 시민단체의 위상과 역할, 정치참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이 불붙고 있다.

총선연대 박원순 변호사"판사들 공부 더해야"- 판결에 반발

재판부가 총선연대 지도부에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그 주요 이유로 "시민단체도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고 이미 후보가 당선된 적도 있으며 앞으로도 낼 계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단체의 운동방식을 제한하는 현행법은 적절하다"며 "피고인들의 '위헌법률에 대한 시민불복종행위로 정당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문에 밝히고 있다.

즉 내년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겠다고 공언하는 현실에 시민단체가 중립적인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운동 규제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또 다시 시민단체연합으로 내년 지방선거나 대선에 있을지 모를 실정법을 어긴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총선연대를 이끌어왔던 참여연대 박원순 변호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랄프 네이더의 '퍼브릭 시티즌(Public Citizen)'이라는 정치감시단체 예를 들면서 "그곳에서 하는 운동 중 하나가 '컨그레스 워치(Congress Watch)'라는 국회의원 점수 매기는 활동이다. 사실 이것이 유권자들에게 공개돼 사실상 당락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운동을 주도하는 랄프 네이더가 이번 대선에 나와 고어의 패배에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퍼브릭 시티즌에 대해 그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미국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서 "한국 판사들 공부 좀 해야 된다"고 충고했다.

이렇듯 사법부 판결 자체에 총선연대를 이끌어 온 참여연대, 경실련은 앞으로도 비판적인 정치적 역할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YMCA,“개인참여 가능성 논의”, 환경운동연합 "후보전술 고수"

그러나 YMCA나 환경운동연합의 입장은 불법적 선거운동 대신에 여타 시민단체에 비해 적극적인 '후보전술'을 논의하고 있다.
두 시민단체는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벌였던 낙천․낙선운동 역시 한국정치를 개혁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느끼면서, 특히 환경운동연합은 오는 지방선거에 직접 후보를 내 한국정치를 바꾸겠다는 후보전술을 주장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5월 전국 47개 지역환경운동연합소속 회원을 포함해 300-350명을 출마시키기로 결정하고 후보 선출과 선거 운동을 맡을 '녹색자치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특히 단체장 선거에 주력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YMCA의 경우 지난 2월 23일 '지방자치 개혁과 시민운동의 과제' 워크샵에서 적극적인 지방자치 개혁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이해와 전망을 직접 실현시킬 수 있는 후보를 발굴·육성·선정하고, 지원·출마·당선시키는 운동을 포함하여 적극적인 정치에 직접참여운동을 논의했다. 하지만 회원단체들의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공식적인 선언은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밖에 현직 기초단체장과 지역의 시민단체의 참여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조직된 '지방자치개혁을 위한 전국자치연대(자치연대)' 또한 내년 지방선거 참여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한국의 녹색당을 바라고 있나"

환경단체 및 운동가가 내년 지방선거에 '후보전술'로 참여하겠다고 표방하고 있는 환경단체연합은 '시민단체 차원'에서 지방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환경연합이 '한국의 녹색당'으로 발전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해석도 낳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한국의 지방자치 역사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와 사회 시스템, 지나친 선심성 행정과 개발위주의 정책, 주민자치의 실현보다는 시민과 주민을 소외시키는 결과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방자치의 불완전성에서 환경단체 선거참여의 원인을 찾고 있다.

환경연합 박진섭 국장은 "환경 문제는 국가중심적인 아젠다로 풀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최근 새만금 갯벌 매립과 관련하여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를 없애려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과 환경단체들과 충분한 합의 없이 개발의 명목하에 환경파괴적인 행위를 거리낌없이 자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환경활동가와 친환경적인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출마시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되게 하거나 지방의회 의원이 되게 함으로써 환경파괴를 사전에 차단하고 친환경적인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YMCA, "선거에 개인참여는 바람직스러우나 단체참여는 반대"

YMCA측은 환경연합과는 '후보전술'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 전체가 선거운동에 참여하자는 환경연합의 의견과는 달리 YMCA는 회원단체별 의견이 다양해 시민단체에 소속한 개인참여라는 '소극적 후보전술'정도가 얘기되고 있다.

김기현 YMCA부장은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분들이 개별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그렇지만 시민운동 단체의 직접적인 선거참여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시민운동은 개혁적인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것이지 시민운동이 스스로 정치세력화의 전초기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정당구조가 허약하고, 지역감정으로 왜곡되었다고 해서 시민운동이 정당을 대체해야 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정치에 대한 감시자역할을 넘어 선거참여를 포함한 정치활동을 중심과제로 설정할 경우 그 단체는 당당히 정치적인 활동을 전개하면 되지만 정치적 감시자와 정치참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과 논란만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경실련, 참여연대 "시민단체의 전통적 정부 비판 및 감시기능 강조"

시민단체의 후보전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찬성을 보이면서도 아직은 이르다는 입장으로 반대하는 경실련의 윤순철 지방자치국장은 시민사회단체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정치참여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시민단체, 혹은 시민단체인사의 정치참여에 대해 "국민적인 정서,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 지역정치에 참여하려는 개인결단'이라는 3박자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이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그는 "'지연, 학연, 혈연'의 선거문화가 당락을 좌우하는 지금, '지역사회의 정책선거문화'가 조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운동가들은 자칫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큰 희생만 치르는 이벤트가 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나아가 윤국장은 시민단체내의 공론화와 합리적인 합의가 전제되고 개인이 정치참여를 원하는지 아니면 조직 전체가 원하는지 명확히 할 것을 주문하면서 이런 절차와 과정을 밟지 않을 경우 시민운동 내부는 물론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 피해는 시민운동과 국민전체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시민단체 주장의 자기 모순 - "불법을 고수해야 하나" "시민단체가 정당인가"

물론 현재 NGO냐 후보전술이냐로 크게 나뉘어 내부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각 진영에서도 자기 모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시민단체의 후보전술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정치권력화되는 시민단체의 변화에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음에도 '불법'으로 간주된 이번 판결에서 보여주듯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는 활동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즉, 국민적 인기는 있었어도 시민단체가 '법'을 어겼다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어 내년선거에서도 불법적인 낙선운동을 계속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느냐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또 '후보전술'을 고수하는 YMCA나 환경단체 역시 같은 내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동안 제도정치 외부에서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단체와 대표가 전체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시민단체에 속한 '개인이나 일부'가 참여하는 선택의 문제가 도래한다. 후자의 경우는 엄밀히 말해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라고 볼 수는 없으나 전자의 경우는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시민단체의 자율성 측면에서 시민단체 대표가 정치인이 될 경우 그 시민단체는 하나의 정당의 성격으로 변해 대표의 정당활동에 의해 시민운동이 '비판,감시'기능이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단체차원으로 후보를 내게되면 해당 시민단체는 이미 시민단체가 아니라 정당이 되는 것이며 또한 출마후보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될 우려마저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시민단체는 선거참여의 문제에서부터 시민단체의 위상정립, 그리고 전통적인 대정부 비판 및 감시 기능에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자칫하면 '후보전술'을 택한 시민단체가 정치적인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호도되어질 수 있는 상황에다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시민단체 역시 '시민없는 시민단체'로 동반추락 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역사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 비춰 고유의 성격인 NGO(비정부기구)적 정부 비판 감시 기능은 당분간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홍준철기자(jchong2000@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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