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헌재의 '1인1표의 비례대표제' 위헌 결정은 정당중심의 선거제도를 '유권자 중심의 선거제도'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동안 개혁정당 및 군소정당의 국회진출이 사실상 가로막혔으나, 이번 기회로 그 길이 열릴 전망이어서 정치구도의 전반적인 변화까지도 예상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일 민주당 조순형, 유재건 의원과 민주노동당 등이 "현행 선거법이 헌법상 민주주의와 직접선거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비례대표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고, 이에 따른 1인 1표제와 국회의원 입후보 때 내야하는 기탁금 2000만원 규정 및 기탁금 반환 규정도 한정위헌이라고 결정 내렸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으로 정치권은 선거법은 전면적으로 손질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해 다시 '1인2표, 정당명부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결정은 '선거가 지금과 같은 정당중심이 아니라 유권자 중심의 직접선거로 변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어 현 정치권 구도에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즉 그동안 정당에 빼앗겼던 유권자의 정당, 후보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제3의 힘', 장기표씨가 추진하는 '사회민주당' 등 군소정당의 진출이 눈에 띠게 확대되어 2004년에는 다당제구도가 정착될 전망이다.

정당중심 선거에서 유권자 중심의 선거로 바뀌는 계기

현행 '1인1표제' 하의 비례대표제는 유권자들이 당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를 경우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의 선택이 당과 후보자가 일치할 경우에만 사표가 되지 않는다.
특히 현행 비례대표제는 유권자가 직접 뽑지 못하고 당이 후보를 결정함으로써 당 총재나 지도부가 수십억대의 공천 헌금을 받는 통로로 이용되곤 하여 정당중심의 '금권선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악용되어 왔고 그 폐해가 심각하였다.

더욱이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반영되지 못하고 기존 정당에 실제 지지도보다 과도하게 의석을 배분해주는 불합리도 내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현행 비례대표제는 유권자중심의 직접선거의 헌법을 위배한 정당중심의 간접선거방식이었다. 그때문에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정치권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었던 하나의 요인이었다.
때문에 이번 헌재의 판결은 유권자의 고유한 권리인 후보선택권, 정당선택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준 것이다.

정치권의 협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유권자의 뜻이 선거결과에 예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비례대표 선출에 유권자의 의사가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의 책임정치가 정착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 당 총재나 지도부가 공천권을 무분별하게 휘두를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게다가 "유권자들의 정당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민주노동당, 민국당 등 군소 정당이나 신생 정당의 원내 진출의 길이 열려 정치구도가 바뀔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한편, 후보자 기탁금제가 현행 2000만원이 너무 많고, 유효투표수의 20% 미만을 득표하거나 유효투표수를 후보자로 나눈 수 미만을 경우 기탁금을 국고에 귀속시키도록 한 조항도 과도하다고 결정해 '돈'때문에 출마하지 못한 정치신인들의 문호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환영', 한나라당·자민련은 '떨떠름'

헌재는 판결과 함께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든지 '1인2표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민주당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박상천 민주당 정치개혁특위장은 즉각 "당 정치개혁안에 1인2표제를 반영해 야당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난 16대 총선 전에 '1인2표제'를 주장하면서 영남지역의 높은 벽을 넘어 지역감정 완화를 기대했고, 2여 연합공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반면,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떨떠름'한 반응이다. 권철현 대변인은 "헌재가 오랜 정치관행과 정치문화 등 현실적 측면을 좀더 고려했어야 했다"고 말했고, 안상수 정개특위소위원장은 "1인1표제라고 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국민은 양당제를 선호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도 호남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으나 영남에 비해 호남의 벽이 더 두텁고 높아 잃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적다고 본다. 또한 군소정당의 난립은 곧바로 야권 분열의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한다.

자민련도 충청지역에서 정당 지지도가 낮아 1인2표제를 도입해 정당과 후보를 따로 투표할 경우 지역기반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2004년에야 '1인2표제 전국 또는 광역단위 비례대표제'로 가닥 잡힐 듯

헌재의 결정에 따라 여야는 9월 정기국회에서 선거법개정 협상을 벌일 계획이지만 자당의 손익계산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정치권의 논란은 크게 '1인2표제를 도입하되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손을 볼 것인가'의 여부다.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되 비례대표제를 광역으로 할 것인지, 전국적으로 적용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16대 총선 전에 여야 충무가 합의했다가 야당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된 '1인2표, 전국단위의 비례대표제'고 가닥이 잡힐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한 1인2표제와 함께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관심이다. 이만섭 국회의장은 최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됐는데, 현 정치구조는 지역정당의 소선거구제로 각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역구라는 기득권을 버리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현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1인2표 비례대표제' 도입을 중심으로 협의해 나갈 전망이다.

특히, 17대 총선이 2004년에 있어 정치권이 이 문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당분간은 조용히 계산서를 두드릴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대선 결과에 따라 각 당의 입장이 다시 변할 수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광역의원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권이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관측하기도 하지만, 각 당의 반응이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보면 '광역의원 비례대표는 없애고 갈 것'으로 보인다. 각 당으로서는 굳이 급하게 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를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군소·신생정당 국회진출 보다 쉬워-지역정당에서 다당제 구도로 변화예상

아무튼 헌재의 결정으로 정치구도 자체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많아졌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군소정당의 국회 진출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으로 민주노동당의 분위기는 한껏 고무돼 있다. 권영길 대표는 20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1인2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한편, "여야 6개 정당이 참여하는 선거법개정 특별기구 구성"도 제안했다.

386세대가 중심이 되어 개혁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제3의 힘'도 '환영' 분위기다. 그동안 15대 총선에서 '3김 지역주의 정치청산'을 외쳤던 민주당이 11.2%의 득표율로 220만표를 얻었지만 결국 20석을 얻지 못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었고, 신정당, 민중당, 한겨레민주당 등 많은 군소정당이 선거 후 사라져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한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 계열의 정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기표씨도 환영했다. 장씨는 "이런 장벽이 없는 독일의 경우 환경정당인 녹색당은 지역구의원 없이 전국구 의석으로만 17명인 때도 있었다" 고 설명했다.

'제3의 힘'의 한 관계자는 "헌재 결정으로 제3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현실이라는 이유로 현 양당체제를 벗어나기 힘들어했던 개혁적 정치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번 판결로 1인 2투표제의 비례대표제가 될 경우, 3김정치가 사라진 2004년의 정치적 격변기와 맞물려 3김정당체제에 가로막혔던 새로운 정당들의 창당을 가속화시켜 우리정치는 대대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다당제 구도와 기탁금제 완화로 새인물들의 정치진출의 기회가 크게 열림으로서 새인물들의 수혈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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