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장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보-혁 논쟁에 불을 지피며 보수색채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당 기획위원회에서는 '대승적 정치', '서민.중산층을 염두에 둔 경제.민생을 적극 챙기는 지도자상'을 이총재에게 주문했다. 휴가 후 이총재의 선택이 주목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당 운영 및 당 정체성에 대해 보수노선으로 경도되고 있는 당 지도부와 개혁파들의 이견이 이미 첨예하게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최근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김만제 정책위의장과 "당의 역사적 이미지와 총재의 엘리트적 이미지를 감안할 때 중산층·서민에 대한 친화성과 미래지향성을 확보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기획위원회가 대표적으로 당의 정체성을 놓고 힘 겨루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로서는 당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당내 각 세력들의 불만을 무엇으로 극복하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국민정당'으로 어떻게 거듭날 것인지 고민에 싸여 있다.
정치노선 놓고 고민하는 이총재-보·혁논쟁 불지피는 김만제
이총재가 휴가기간 동안 지역, 이념, 계층간 분열과 갈등을 극복해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정쟁중지와 경제난 극복을 위한 초당적 기구의 가동, 정치보복 및 지역차별 금지 등 다양한 실천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여름휴가 전인 26일 광주에서 열린 시국대토론회에서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을 역설하기도 했고, 휴가기간 동안에는 각 언론에서 이총재가 8.15를 전후에 '국민통합선언'을 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총재로서는 매우 힘든 고민이 아닐 수 없다"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언론사 세무조사 및 야당 정치인에 대한 사정이 예견되고 있는 시점이고, 당 지도부 등 이총재 주변에는 보수적 인사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보수적인 이총재 스탠스에서 크게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연속적인 '이념 논쟁적 발언'은 이총재를 여야 및 사회적 갈등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고 있다. 김의장은 "전교조가 사회주의적 집단"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정부가 낡은 사회주의적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며 정부정책을 '색깔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더욱이 "그간 이념이나 정책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면서 "각자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게 옳다"며 전면적인 이념논쟁으로 확대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김의장의 발언에 대해 한 당직자는 "이총재와 논의되거나 당론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개인적 소신의 피력이다"면서,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 지도부의 입장도 별반 다른 게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구성돼 있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부분 보수적 인사로 구성돼 있는 것을 뜻한다.
현재 이총재의 보수화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최병렬 부총재, 김만제 정책위의장, 김기배 사무총장, 정형근 의원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보수적 인사들은 대체로 "영남지역·반DJ정서에 따른 보수적 노선에 입각해 DJ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대선 승리의 길'로 인식"하고 있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서민·중산층 위한 '대승적 정치'" 공식 주문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총재와 당지도부의 보수노선 강화와 이념, 지역적 갈등 유발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인사들이 늘어가고 있고, 정세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핵심부서인 기획위원회와 국가혁신위에서도 공개적으로 이총재의 지역 및 이념적 편향을 지적하고 나서서 주목된다.
일부 기자들이 한나라당 권오을 기획위원장 책상 서랍에서 빼내 보도 됐던 '여론분석 및 대응방향'라는 기획위원회 보고서에서 "중산층·서민에 대한 친화성과 미래지향성을 확보하는 것이 긴요하다"면서 이총재에게"새로운 정치행태를 몸소 실천하고 경제와 민생을 적극 챙기는 지도자 상을 가꿔나가야 한다"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이 보고서에서는 "'대통령 탄핵론' 제기는 무리수" 였고,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과정상의 문제점을 지적해야지 '색깔론식' 정치공세는 오히려 반통일세력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기획위원회에서는 이총재에게 "대승적 정치", "상생의 정치", "중산층·서민을 염두에 둔 경제와 민생을 적극 챙기는 지도자상"을 지속적으로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파에 이어 중도파도 "이총재 변화해야 한다"
이총재의 정치 행태에 대한 지적은 이미 이부영 부총재, 김덕룡 의원 등 한나라당 내 개혁세력은 "이총재가 변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비판해 왔었고, 박근혜 부총재도 "이총재가 변해야 한다"고 말해왔었다.
더욱이 남경필 총재비서실 부실장도 『e윈컴 정치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총재가 반DJ정서 및 영남지역에 기반한 보수적 노선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며 "현재 DJ로부터 이탈하거나 부동층인 20∼30대, 수도권 유권자를 의식한 개혁적 측면이 더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혁신위에서도 "이총재가 기득권 정당, 수구·영남정당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공식 제기됐다. 이병석 의원은 지난 26일 국가혁신위 회의에서 "당의 이미지는 기득권 정당, 수구·영남정당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이런 이미지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민주적 국민정당으로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총재나 한나라당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적 노선을 강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면서 "집토끼를 잡으려 헛심 쓰지 말고 산토끼를 잡으려 노력하는 게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이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총재의 휴가구상-8.15 및 10.25 재보선 공천에서 구체화 될 듯
이렇듯 한나라당의 정체성 및 이총재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이총재가 보수야당의 총재로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지도부가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총재가 기획위원회의 지적처럼 "대승적 정치", "상생의 정치". "중산층·서민의 정치"를 풀어 나갈지, 아니면 보수 강화를 통한 "보수정당"의 이미지, "투쟁적인 야당 총재"의 이미지를 유지해 나갈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다른 관계자는 "현재 지도부 개개인이 미묘한 정치적 발언을 돌출적으로 제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면서, "당 지도부에서 당 정체성 및 대선전략을 놓고 긴밀하게 논의 중에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이총재에 의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 휴가를 끝낸 이총재의 정치적 행보 및 8.15를 전후한 '국민통합선언', 10.25 재보선에서의 공천 내용에서 이총재의 고민이 현실화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