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구파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야당과 언론은 각종 의혹의 화살을 동교동계로 향하고 있고, 한화갑 최고는 "동교동계와의 분리"를 선언하면서 김근태 최고의 "동교동 해체론"에 손을 들어줬다. 9.7개각으로 전면에 포진한 동교동과 DJ가 위태롭다.

게다가 각 종 권력형비리 의혹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방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일부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과 함께 의혹해소와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으며, 동교동 신파의 수장인 한화갑 최고위원은 "동교동계 임무 종결론"을 들고나와 여권 핵심을 이루고 있는 동교동계 구파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동교동계 해체론"을 주장해온 김근태 최고위원 및 소장파 의원들은 이번 권력형비리
에 동교동계 구파의 연루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당정쇄신 및 동교동계 해체에 힘이 실릴 가능성도 많아 예의주시하고 있다.
9.7 개각으로 당·정·청을 장악한 동교동 구파가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추진하기도 전에 당 안팎에서 불어오는 난관에 부닥쳐 휘청거리고 있어, DJ정부의 조기 레임덕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
커지는 권력핵심부의 비리 의혹
권력형비리 의혹은 날이 갈수록 확대될 조짐이다. "이용호씨로부터 친동생에게 로비가 들어왔으나 즉각 중단시켰다"는 신승남 검찰총장의 발언이 하루만에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용호 게이트'는 더욱 의혹의 미로에 빠지고 말았다.
신 총장이 하루 전날 발언한 내용을 스스로 뒤집으면서 이씨가 다른 검사들에게도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로비가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야당 및 여권 일각에서도 책임론이 커지자 신 총장은 "10년전부터 동생과 얘기도 안했다"며 궁색한 변명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지난해 "정현준 게이트" 사건 수사과정에서 김형윤 국정원 경제단장(현 국정원 산하 정보학교 교수)의 5천만원 금품수수 사실을 확인하고도 검찰과 국정원이 이를 덮어두기에 급급했던 사실이 밝혀졌는데, 김형윤씨가 여권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운 관계라고 전해진다.
한나라당이 안정남 건교부장관 동생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건설공사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권력형비리 의혹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안 건교부장관은 국세청장 시절 '이용호 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과 함께 동생에 대한 특혜 의혹을 동시에 받는 처지가 됐다. 안 장관도 여권 핵심실세와의 친분이 두텁고 초고속 승진으로 주목되던 인물이다.
더욱이 야당과 언론은 오래 전부터 증권가에 나돌던 "여권 핵심부가 벤처기업을 통해 대선 자금을 모았다"는 설을 직접 거론하면서 화살의 표적을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어, 여권 핵심부를 향한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야당과 여론의 의혹이 여권 핵심실세인 동교동계로 모아지고 있는 것은 '이용호 게이트'가 검찰, 금감원, 국세청, 조직폭력을 잇는 호남인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상 연루된 인사들의 출신고를 보면 광주상고, 광주일고, 광주고, 목포고, 전주고 등 DJ정부의 핵심라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용호 게이트' 예의 주시하는 민주당 개혁·소장파
이렇듯 여권 실세와 연루된 권력기관 핵심 인사들이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비리 연루자뿐만 아니라 여권 핵심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감장에서 권력형비리 의혹에 대한 여당 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가 예전과는 판이하다. 조순형, 함승희, 송영길 의원은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야당의 정치 공세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권이 한목소리로 비난하면서 방어했던 과거 국감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이를 두고 "여당 의원들이 더 이상 방어해줄 수 없는 사건으로 동교동계가 정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대두되고 있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도 '이용호 게이트'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검찰총장이 간접적으로 연루된 게 확인되고, 김태정 전 검찰총장까지 개입되는 등 이씨의 로비 범위가 상상외로 광범위하게 진행됐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만약 여권실세가 개입됐을 경우 정치권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교동 해체론"를 주장하고 있는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용호 게이트'로 "동교동 해체론"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관측하고 있다. 한 측근이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듯이, 김 최고도 '이용호 게이트' 문제로 정치권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개혁·소장파 의원들이 주장해온 정풍운동, 당정쇄신의 중심에는 "동교동계 2선 후퇴"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9.7개각으로 당정쇄신 목소리가 완전히 무시된 바 있어, 김 최고를 비롯한 개혁·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화갑 최고, "동교동계와의 분리" 선언
'이용호 게이트' 파문과 관련해 여권 핵심실세인 동교동계의 개입 의혹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한화갑 최고위원이 '신동아' 10월호와의 인터뷰에서 "민주화와 정권교체로 동교동(계)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으며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 한 최고가 동교동계 구파와의 '분가'를 선언하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많은데, 왜 이 미묘한 시점에 동교동계와의 분리를 주장했는지 의문이다"면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그동안 시중에 떠돌던 동교동계와 관련한 각종 루머가 사실로 드러날 기미를 보이자 '분리'를 선언한 것 같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더욱이 한 최고의 "동교동계 역사적 임무 종결론"은 김 최고의 "동교동 해체론"과 결부돼 민주당이 동교동계와 비동교동계로 급격히 분화되고 이 과정에서 '이용호 게이트'가 매개 역할을 할 경우 여권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위기 맞는 '동교동 구파'-다시 '쇄신론' 커지나
여권 핵심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한나라당이 '이용호 게이트', '안정남 건교부장관 동생 특혜설', '국정원 간부 거액수수설' 등 3대 의혹사건을 가지고 여권에 대해 파상적 공세를 취하고 있고, 한화갑 최고 및 김근태 최고는 "동교동 무용론"을 주장하는 등 여권 핵심실세는 안팎에서 거센 공격을 당하고 있는 처지다.
동교동계 비리문제가 터지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호하고 방어하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옥두 의원도 "야당의 정치공세를 비난하며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정도의 발언만 했을 뿐인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지점이다.
당·정·청에 대한 개편으로 동교동계가 국정운영의 전면에 포진됨으로써 "동교동 정치"의 실현을 예고했다. 그러나 '동교동 정치'가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여권 핵심실세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권력형비리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한화갑 최고의 "동교동계와의 분리"를 선언했고, 김근태 최고는 "동교동계 해체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렇듯 권력형비리 의혹이 동교동계에 화살이 맞춰져 있고, 당내에서는 반동교동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용호 게이트' 등 3대 의혹 사건에 대한 진실 여부를 떠나 동교동계의 위치는 심각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어서 DJ의 레임덕 현상도 불을 보듯 뻔한 실정이다.
'제2선 퇴진', '비선조직 해체', '인적쇄신', '당정쇄신' 등 민주당 개혁·소장파 의원들의 동교동계에 대한 견제 목소리가 다시 불거져 나와 힘을 얻을지, 아니면 DJ의 '마이웨이' 선언으로 '동교동 정치'를 계속 이어갈지 더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