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의 정치공세를 약화시키고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공법으로 '특검제' 수용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성급한 결정이라는 내부 비판도 제기돼 주목된다. 또한 '특검제'에서 의혹이 해소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특검제' 수용을 전격 지시함으로써 여야 총무회담을 열어 '특검제' 실시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28일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 실시 후 구체적인 일정과 실시 방법 등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이용호 게이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연일 여권 실세 및 DJ 친인척 관련설을 제기하고 있고, 언론도 쉬지 않고 새로운 이용호씨 특혜·로비 의혹 및 리스트를 보도하면서 '이용호 게이트'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가운데 나온 여권의 정공법이라 그 결과가 주목된다.
DJ, 벼랑 끝 선택 '특검제'-야당의 정치공세 차단 의도
여권은 '이용호 게이트'가 '제2의 옷로비 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해 왔다. 지난 99년 '옷로비 사건' 의혹이 확대되면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와대에서는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이용호 게이트'가 터지자 여권 내부에서도 '특검제' 도입을 강력하게 제기해 왔었다. 김근태 최고위원과 조순형 의원은 '이용호 게이트'가 터지자 정권적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 "'특검제'를 통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할 것"을 촉구해왔고, 김최고는 '거국정부론'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한화갑 최고위원도 "청와대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꼬집었고, 청와대 일각에서도 "정면돌파 밖에 길이 없음"을 DJ에게 주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특검제'를 거부할 수만은 없는 정치구조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2야가 '특검제'를 통과시킬 경우 여론 때문에 DJ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이왕지사 2야에 밀려서 '특검제'를 도입하느니보다 먼저 '특검제' 도입을 전격 받아들임으로써 2야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의혹 해소에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분별하게 다가가고 있는 각종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이용호 게이트'에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권 실세나 대통령 친인척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자체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치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각도로 특검제를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이용호 게이트'를 '국정감사'에 이은 '청문회' 및 '특검제'를 통해 장기전으로 가져가 10.25 재보선을 유리하게 이용하면서 여권에 치명상을 입히겠다는 계산이고, 이를 자민련이 동조할 경우 여권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2야의 공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검찰 감찰본부의 수사와 '특검제'를 통해 정치권의 개입을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정치적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즉, 야당으로서는 '국정조사'에 이은 청문회가 대여 공세를 극대화시킬 수 있으나, '특검제'를 도입할 경우 수사진척 정도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한발 물러서 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DJ정부 들어 연이어 굴욕감 맛보는 검찰-DJ가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도
한편, 여권이 '특검제'를 수용하게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검찰수사로서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검찰총장 및 고위 간부가 연루된 것을 확인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전례 없이 특별감찰본부를 설치해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 검찰을 향한 국민적 의혹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자체 판단이다.
이로써 검찰의 위상과 신뢰성은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됐다. DJ정부 들어 '옷로비 사건' 과 '조폐공사 파업유동 사건'에 이어 벌써 3번째 '특검제'를 도입함으로써 정관계가 연루된 대형 비리사건 수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 증폭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특검제' 도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한 중견 검사는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특감본부가 설치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결과도 보지 않고 '특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를 반영하듯 신승남 검찰총장은 지난 25일 대검 국감에서 "'특검제'가 필요 없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더불어 DJ의 '특검제' 수용을 두고 "임명권자가 스스로 검찰을 무력화했다는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 됐다"는 시각도 제기돼 주목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공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특검제'를 고려할 수 있으나 검찰수사가 끝난 후 협의해야할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DJ의 '특검제' 수용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 일각에서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특검제' 수용의사를 밝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특검제' 운영 방안에 대한 이견 차 커, 구체적 합의에는 '산 넘어 산'
이렇듯 여권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의혹 해소를 위해 '특검제'라는 정공법을 채택, 여야가 '특검제' 실시를 합의했지만, 최종적인 합의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나라당은 '先 국정감사 後 특검제 실시'를 주장하고 있는데다가 '특검제'의 위상, 수사범위, 수사기간, 특별검사 임명 방법 등 여야의 견해가 크기 때문이다.
이재오 한나라당 총무는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해 가닥을 잡은 뒤 특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상수 민주당 총무는 "국정조사 요구는 정치공세다. 특검제로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국정조사 여부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도 특별검사 추천 주체, 수사기간, 특별검사의 권한 등에 대한 여야 이견도 선명해 보인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강력한 특검제를 원하고 있다. 국회에서 특별검사를 추천하고 충분한 시간과 추가로 드러난 범죄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는 강한 권한도 줘야한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특검제' 상설화도 추진하는 한편, '이용호 게이트'뿐만 아니라 '정현준 게이트'와 관련해 5천만원을 받은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도 수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제'에 대해서는 '옷로비 사건' 때와 같은 수준인 대한변협에서 특별검사를 추천하고 60일 내외의 한시적 활동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특검제 상설화의 경우 검찰조직 자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많아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놓고 있다.
여야가 '특검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하긴 했지만 여야간 이해득실과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견해차가 크다. 또한 '특검제' 구체적인 내용까지 합의한다고 해도 '특검제'관련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야는 '특검제'로 국민적 의혹 푸는데 주력해야
그러나 여권이 '특검제'를 수용한 이상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도 철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여당이 '특검제'를 수용한 이상 국정조사를 고집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상시 특검제'도 법 제정을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이용호 게이트'를 이슈화시키려는 한나라당의 의도와는 크게 빗나간다는 점에서 이를 강하게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용호 게이트'에 대한 실체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의혹만 난무할 경우 여야 정치권 모두에 비난 여론이 쏟아질 가능성도 높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특검제' 운영 방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누구를 막론하고 차별 없이 수사하라, 이번 기회가 부정부패의 마지막 척결기회라는 각오로 처리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특검제'가 아무리 빨리 추진된다고 해도 10월 중순에 가서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 그 사이 검찰 특감본부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검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특검'은 이를 확인하고 국민적 의혹을 풀어주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