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도 ‘독주

이회창 프리미엄은 특히 ‘당선 가능성' 항목에서 막강 위력을 발휘했다. ‘당신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전화와 인터넷 응답자 모두 압도적으로 ‘이회창'을 꼽은 것이다. 전화 조사에서는 이총재가 48% 지지를 얻어 2위인 이인제 위원(14.4%)을 3배 넘게 앞질렀고, 인터넷 조사에서는 이회창 55.6%, 이인제 12.1%로 간격이 더 벌어졌다. 최근 당·정 쇄신을 둘러싼 여권내 갈등, DJ의 부적절한 인사, 각종 스캔들 등 여권에서 악재가 잇달아 나오면서 다시 한번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가의 관측이 지표로 확인된 셈이다.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는 ‘이회창 독주'와 함께 두 정치인의 희비 쌍곡선이 눈길을 끈다. 바로 노무현 고문과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다. 노고문은 그동안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단순 지지도보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취약성을 드러냈다. 노고문을 지지하는 사람조차 그가 정말 대통령이 되리라는 데는 회의적이라는 의미다. 이런 ‘노무현 징크스'는 이번 ‘쌍끌이' 여론조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단순 지지도에서는 3위(전화 조사)와 2위(인터넷 조사)를 해놓고, 당선 가능성에서는 각각 5위와 3위로 밀린 것이다. 노고문의 한 참모는 이런 현상이 "노고문이 과연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겠느냐는 의구심에서 출발한다"라고 진단했다. 막상 노고문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오히려 파죽지세로 지지율 상승을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고문에게는 본선보다 예선 통과가 더 관건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김종필 명예총재는 단순 지지도에서는 7, 8위에 머무르더니 당선 가능성에서는 각각 3, 4위로 뛰어올랐다. 유권자들이 차기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3김의 영향력이 작용하리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DJP 공조가 깨진 후 절치부심하던 JP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회창 총재 등과 접촉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도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단순 지지도나 당선 가능성으로만 보면 ‘이회창 대통령'이 거의 굳어진 듯하다. 하지만 1 대 1 대결 구도로 들어가면 양상은 사뭇 달라진다.




이회창 대 이인제 대결의 경우, 전화 조사에서는 45% 대 41.9%, 인터넷 조사에서는 36.2% 대 35.6%로 두 사람이 오차 범위 내에서 혼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회창 대 노무현 대결에서는 1, 2위가 뒤바뀌는 이변이 발생했다. 전화 조사에서는 50.4% 대 35%로 이총재가 15% 이상 앞섰지만, 인터넷 조사에서는 34.2% 대 41.3%로 오히려 노고문이 7% 가량 앞지른 것이다




이런 1 대 1 대결의 결과는 정당 지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화 조사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정당 중 조금이라도 지지하는 정당은 어디냐?'는 질문에 한나라당 29.6%, 민주당 26.5%라고 대답했다. 이회창 대 이인제 가상 대결 구도에서 이들이 보인 반응과 대동소이하다. 똑같은 질문에 대해 인터넷 조사 응답자들은 19.3% 대 21.2%로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20∼30대 응답층이 많았기 때문이다.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이회창 대 노무현 가상 대결에서 노고문이 이총재를 앞지를 수 있었던 것도 정당 지지도와 네티즌에 강한 노고문의 특성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덕분이다.




이번 추석 특집 여론조사에서는 인물이나 정당 지지도와 별개로 차기 대선에서 표심을 가르게 될 네 가지 핵심 쟁점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참고로 네티즌 조사에서는 설문조사 문항이 5개가 넘으면 회수율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어, 쟁점에 관한 조사는 전화 여론조사에서만 실시했다.




우선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유권자들은 ‘경제 식견'과 ‘도덕성'을 꼽았다. 중복 응답을 요구한 이 질문에서 ‘경제 식견'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61.5%나 되었고, ‘도덕성'을 꼽은 응답자도 45.2%에 달했다. 그 다음은 뚝 떨어져 ‘안정감'(18.9%), ‘민주적 리더십‘(17%) 순이다. 최초 응답에서는 ‘도덕성'이 34.1%로 ‘경제 식견' 33.9%보다 약간 더 높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초 응답률이 높은 항목은 그만큼 ‘요구 강도'가 세다는 것이고, 중복 응답률이 높은 항목은 ‘대중성'이 높다는 의미다. 즉 한국 사람은 지도자의 도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경제 식견을 요구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이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지를 아는 것은 선거 전략을 짜는 데 매우 중요하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캠프는 여러 차례 차기 지도자의 자질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IMF 외환 위기의 여파였는지 ‘지도자의 경륜'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 때부터 DJ 진영은 ‘정권 교체'니 ‘개혁'이니 하는 구호를 버리고, ‘준비된 대통령' ‘든든해요 DJ'라는 슬로건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 식견'과 ‘도덕성'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데는 국내외 경제 사정이 어렵다는 점과, 이 정권 들어 끊이지 않은 비리 의혹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차기 대통령의 나이'에 대해서는 ‘50대가 적당하다'는 응답이 48.5%나 되었다. 유권자 2명 중 1명꼴로 50대 대통령을 원하는 셈이다. ‘상관없다'는 25.3%, ‘60대 이상'은 14.6%였으며, ‘40대'를 꼽은 응답자는 11.6%에 그쳐 ‘40대 기수론'은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무를 것임을 예고했다. 유권자 가운데서도 특히 30대(54.3%)와 40대(53.3%), 가정주부(55.1%)가 50대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 변화' 여론이 ‘보수 안정' 여론 압도




50대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대목이다. 대선이 치러지는 내년에 이총재의 나이가 68세여서, 이총재가 당선될 경우 70대 대통령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JP 대망론'을 지피고 있는 김종필 명예총재에게도 달갑지 않은 결과다. 이에 반해 대권 예비 주자들의 나이가 대부분 50∼60대인 민주당은 젊은 대통령을 원하는 유권자의 욕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태세다. 지난 대선 때 활약한 민주당의 한 선거전략가는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는 현정권의 문제가 DJ의 고령에서 말미암는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면서, 이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는 후보 나이가 예상보다 더 큰 변수로 작용하리라고 전망했다. "핵심 전략은 세대 교체다. 하지만 세대 교체라는 표현을 직접 쓰면 장년층이 거부감을 가지므로, 패기·역동성·순발력 등을 담아내는 새로운 구호가 필요하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 번째 쟁점 조사는 ‘차기 대선에서 보·혁 구도가 형성될 경우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지난 8월 평양축전 파문과 이에 따른 임동원 장관 해임 파동, 그리고 DJP 결별 등을 겪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이른 바 ‘남남 갈등'으로 한바탕 요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보수 안정을 지향하는 후보와 개혁 변화를 지향하는 후보가 출마할 경우 어느 쪽을 더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개혁 변화' 63.6%, ‘보수 안정' 35%. 일반적으로 ‘보수 안정 희구 세력'이 훨씬 많으리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차장은 "유권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보수'보다 ‘개혁'이라는 단어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가 작용했으리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막상 선거전에서 보·혁 대결이 펼쳐질 때도 유권자들이 이런 선택을 할지는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반DJ 정서가 약해질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DJ 정권의 실정이 거듭되면서 정권 재창출에 대한 비관론이 일자 민주당 수뇌부가 ‘차기 주자가 결정되면 반DJ 정서가 희석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여권의 기대가 실현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여권의 차기 주자가 결정되더라도 반DJ 정서가 여전하리라고 보는 의견이 58.5%로, 약해지리라고 보는 의견(34.8%) 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언론계 최초로 일반 유권자 천명과 네티즌 3만6천여명을 조사한 이번 〈시사저널〉의 온라인-오프라인 동시 여론조사는 차기 대선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여론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바로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추석이 꼽힌다. 전국 각지의 민심이 ‘헤쳐 모여' 하는 과정에서 기존 여론이 강화되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 때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산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급락한 것도 바로 추석 직후다. 이 때문에 여야 정치권은 소속 의원들을 고향으로 보내는 등 추석 민심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차기 정권은 결국 올해와 내년 추석 민심에서 나온다는 초조감에서다.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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