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전세 시장도 하락 속도를 키우고 있다. 이 가운데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도 많아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 일대 빌라와 오피스텔 등을 1,100채 넘게 가지고 있던 '빌라왕' 김모 씨가 갑자기 숨지면서 해당 주택 전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김모씨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방식으로 여러 빌라를 사들였고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오다 사망했다.
또한, 지난 12일에는 빌라와 오피스텔 수십 채를 보유하던 송모씨까지 사망하면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더 많아졌다.
이처럼 전세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사례는 지난 9월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임대차시장 사이렌 자료를 보면, 지난달 전국 기준 전세 보증 사고 금액(아파트·연립·다세대)은 1862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1098억원 수준이었던 보증 사고 금액은 10월 1526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사고율도 9월 2.9%에서 10월 4.9%, 11월 5.2%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세 보증금 보호를 위해 전세보증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많은 상황이다. 빌라왕 김모씨의 사례에서도 빌라 1139채 중 HUG 보증보험에 가입된 건은 614건으로 약 절반 수준이었다.
배소현 빌라왕 피해자 단체 대표는 "HUG 반환보증보험 가입자는 진척이 있었지만 그외 다른 피해자들은 여전히 앞길이 막막한 상황"이라며 법 테두리 바깥 피해자들의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보증보험에 안 들어 있는 경우 모든 것을 국가나 하늘이 도와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현행법상 지원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유사한 사례가 있었음에도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대인 정모(43) 씨는 주택 240여 채를 사들인 뒤 세를 놓다가 지난해 7월 30일 사망했다. 정씨는 사망하기 몇 달 전인 지난해 4∼7월 집중적으로 보유 주택을 임대했으며, 심지어 사망 하루 전에도 계약을 맺었다.
정모씨 사망 후 유족 측은 변호사를 고용해 빠르게 4순위 상속자까지 전원 상속 포기를 했고, 세입자들은 상속포기 절차가 마무리된 작년 10월에야 임대인 사망 소식을 세입자들에게 전했다.
피해자 김모씨는 “변호사, 법무사, 법률공단, 전세피해지원(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전세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토부는 내년 1월 24일까지 범정부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진행한다. 이후에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되는 피해사례에 대한 조사·분석을 거쳐 2개월마다 수사의뢰하고 경찰청과의 공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세사기 단속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건을 중심으로 한 단속뿐만 아니라 전문연구 시행을 통해 사기 위험 조짐이 보이는 거래지역 등에 대해서는 상시 모니터링을 하고 그 결과를 경찰청과 공유하는 등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회는 지난 23일 전세 임차인이 집주인 동의를 받지 않아도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는 국세징수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법이 시행되면 임대차 계약을 한 세입자가 임차 개시일까지 임대인의 동의 없이 밀린 세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빌라왕’ 전세사기가 임차인들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지 못해 피해가 불어났다는 지적에 따라 임차인이 직접 집주인의 세금 체납 내역을 확인하고 전세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약 과정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최선의 예방법은 선순위로 받는 채권과 전세금의 합산액이 집값의 70%를 초과하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다. 세입자가 전세금보증보험에 가입해 집주인과 계약을 해지한 뒤 전세금을 받는 방법도 있다.
또한, 주변 시세를 꼼꼼히 분석하여 지나치게 비싸거나 저렴한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집주인에 관한 자세한 정보도 세입자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집주인 신분증 등 각종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고 등기부등본의 소유자가 계약하러 온 집주인과 동일 인물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 체결과 동시에 대출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전입신고를 빨리 서두르고 확정일자까지 받아야 보증금을 지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