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교환사채 논란·금감원 제동까지
석유화학·섬유 기반의 전통 제조사에서 '복합 사업군'으로 전환

태광산업이 오랜 기간 이어온 석유화학과 섬유 위주의 사업 구조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태광산업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약 1조 5000억원을 투입하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확정했으며, 이 중 1조원은 올해 안에 먼저 집행할 계획이다. 전통 산업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현실에서 단순한 자구책만으로는 더 이상 회복이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이미 석유화학 2공장과 저융점섬유(LMF)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일부 나일론 생산라인과 중국 스판덱스 공장도 운영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공장 철거와 보수, 인력 재배치 등 구조조정 비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있다. 여기에 업황 악화에 대비해 약 3.5개월치 예비 운영자금 5,600억원을 비축해야 하다 보니, 보유한 현금성 자산 1조 9000억원 가운데 실제로 신규 투자에 쓸 수 있는 돈은 1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기존 사업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태광산업이 꺼내 든 해법은 제조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회사는 사업 목적을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 개발, 숙박시설 운영, 리츠와 PFV 투자, 블록체인 기반 금융 산업 등으로 크게 넓히기로 했다. 이미 화장품 분야에서는 투자 자회사를 통해 인수를 검토하는 등 본격적인 실행에 들어갔고, 모 계열사가 한 인수전에서 본입찰 후보로 선정되면서 가시적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자금'이다. 태광산업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다음 달 3,2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 중이다. 특히 전량 자사주, 즉 전체 지분의 24.41%에 해당하는 주식을 교환 권리에 포함시키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만약 교환권이 행사되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크게 희석되고,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이 공시 내용에 발행 대상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조달 자금의 목적도 분명치 않다며 정정 명령을 내렸다. 주주 반발도 거세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이사들의 위법행위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결국 회사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교환사채 발행 대상자를 한국투자증권으로 확정하면서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태광산업은 이런 논란에도 "교환사채 발행은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사업 재편과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정부 정책 움직임을 고려해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대규모 투자가 더 급하다는 입장이다. 기존 산업의 침체가 계속되는 만큼, 더 이상 비용 절감이나 구조조정만으로는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결국 태광산업의 이번 결정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석유화학과 섬유라는 굳건한 틀을 벗어난 과감한 시도이며, 투자 업계에서는 "성공하면 회사 체질이 바뀌는 전환점이 되겠지만, 실패할 경우 부담이 고스란히 재무 위험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31일 열릴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이 의결된다면 태광산업은 명실상부한 복합 사업군 기업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대형 투자와 교환사채 논란, 구조조정 비용, 낯선 분야로의 사업 확장 등 여러 변수들이 얽혀 있는 만큼, 올해와 내년이 태광산업의 미래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